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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2. 2021

세 마리 산책의 교훈

쇼핑 욕구 극복 일지 : 12일 차

셋을 해보니 알겠다. 두 마리와의 산책이 얼마나 살랑살랑 봄바람 같은 시간이었는지. 

함께 살게 된 순서로 막내가 된 보더콜리는 얼마 전 우리가 구조한 강아지다. 동네 밭을 떠도는 걸 그냥 보지 못하고 보호소에 연락해 포획했었다. 보호소는 이름처럼 강아지들을 '보호'하지 않지만 주인을 일단 찾아봐야겠기에 그렇게 했다. 예상대로 칩도 없고 열흘의 공고기간 동안 주인에게 연락도 없었다. 품종견이라는 이유로 입양을 가장한 개농장으로 팔려가거나 혹은 그럴듯한 품종견을 마당에서 대충 키우려는 사람들에게 입양될까 봐 일단 우리가 구조해 임보 중이다.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 녀석은 아직도 불안과 공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처음 와서 자리 잡았던 소파 앞 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루에 두세 번 집 밖 공터까지 나가 똥책을 하는데도 밤사이 배변 실수를 하기도 한다.

안쓰러워서 산책을 자주 시켜주려고 했다.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며 산책이 가장 좋은 약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작년에 입양한 둘째 강아지가 집에 적응할 때 산책이 큰 역할을 했다. 아침저녁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마을 길을 돌다 보니 오래가지 않아 경계를 풀고 편안해졌었다. 


동생이 키우던 강아지의 새끼였던 첫째 강아지만 데리고 다니다가 두 마리 산책을 시키려니 처음엔 힘에 부치고 당황스러운 일도 많았다. 둘 다 소형견인데도 그랬다. 손은 두 개인데 양 손에 리드 줄을 하나씩 잡고 꼬인 줄을 풀며 걷는 것도 정신이 없는데 전화라도 오면 참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으로 리드 줄 둘을 꽉 잡고 한 손으로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게 됐지만 처음엔 그랬다. 산책하며 만나는 분들도 두 마리를 어떻게 같이 데리고 다니냐면서 걱정을 해주곤 했다. 보기에도 쉽지 않을 만큼 너무 어렵진 않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세 마리. 게다가 막내는 18kg 중형견. 큰 녀석의 줄은 크로스로 몸에 걸고 양손에 두 마리의 리드 줄을 잡고 산책을 시작했다. 어쩌다 남편이 함께 나가서 큰 녀석과 작은 녀석들을 나눠 맡지만 매번 그렇진 않다. 남편은 식사와 청소 등 대부분의 살림을 한다. 때문에 일찌감치 강아지 산책은 나의 몫이다. 막내가 집에 오고 아침 일찍 공터에 나가 녀석의 배변을 해결해주고 가끔 집안에 실수한 똥오줌까지 치우느라 바쁜 그에게 매번 동행하자는 건 내가 생각해도 못할 짓. 게다가 우리도 생업이 있으니 각자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분배하려면 산책은 내가 맡는 게 맞다. 


포획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낯선 곳은 절대 가려고 하지 않아 몸에 묶은 리드 줄을 있는 힘껏 당기고 겨우 달래 산책을 했다. 어찌나 힘이 좋고 또 고집은 얼마나 센지. 녀석과 승강이하느라 제대로 걷기도 전에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곤 했다. 그러다 사달이 났는데. 첫째가 싼 똥을 치우느라 쭈그려 앉아 한눈을 파는 사이 녀석이 하네스를 빼고 달아난 것이다. 혼비백산.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당장 차를 가지고 나오라고 연락하고 뒤를 쫓았으나 역부족. 다행히 차를 가지고 나온 남편이 발견해 집에 데려왔다. 


이후로 나 혼자 셋을 데리고 나갈 때 긴 산책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하네스를 두 개나 단단히 입혔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워 집 근처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터를 여러 바퀴 돌고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막내 먼저 들여보낸다. 요즘은 딸이 방학이라 같이 나왔다가 막내만 데리고 들어가고 내가 나머지 두 녀석과 더 긴 산책을 하고 돌아온다.


셋을 하다 둘을 데리고 다니면 깃털을 쥐고 걷는 것 같다. 버티는 것 없이 선선히 함께 걷는 것만으로 천국이다. 똥을 두 번 세 번 싸도 아무렇지 않다. 두 마리 다 내가 치울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주니까 그것만으로 편안하다. 


오늘 아침에도 셋을 데리고 나갔다가 하나를 먼저 들여보내고 둘과 더 오래 걸었다. 편안했다. 두 마리를 산책이 만만치 않다고 호들갑 떨던 1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이게 뭐라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막내를 경험하지 않았으면 둘의 편안함을 몰랐겠지. 


능력 이상의 것을 감당하는 것, 해 보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다. 내가 감당할 능력이 3 밖에 안됐는데 5를 견뎌보면 3이 쉬워진다. 다시 7을 견디면 5가 쉬워지고 10을 견디면 7일 쉬워지고 그러다 10까지 쉬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에너지, 음식, 물건 그것이 무엇이든 덜 소비하는 삶은 불편한 삶이 됐다. 지금 당장 모든 걸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그 불편을 조금씩 더 감당하다 보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날이 오겠지. 


* 딸아이에게 두 마리와 세 마리의 산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3차 방정식을 공부하면 2차 방정식이 좀 더 쉬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냐고 했다가 단호히 "그건 아니지. 수학은 절대 쉬워지지 않아."란 대답을 들었다. 어쩌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날이 오지 않을 수도, 불편을 감당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수도 정말 그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감당하고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나. 계속 어렵지만 어쨌든 3차 방정식을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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