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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8. 2021

누구의 시간이든 애가 타겠지

쇼핑 욕구 극복 일지 : 18일 차

(사흘을 훌쩍 건너뛰었다. 예정되어 있던 일이 좀 부대끼기도 했고, 보름 정도 매일 다짐을 했으니 이제 좀 여유 있게 조망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일지를 쓰지 않았던 사흘 동안 잘 참아냈다.)


총 균 쇠를 읽고 있다. 대충 주워 들어 내용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읽고 싶어 시작. 책이 두꺼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친절하신 제러드 다이아몬드 박사께서 아주 상세하고 세밀하게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쳤던 동식물에 대해 설명해주시기 때문이다. 식량 생산민과 수렵채집민이 어떤 흥망성쇠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각 대륙마다 왜 다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는지 작은 사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고 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박사가 이야기하려는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작물화하는데 적합한 식물의 종류, 가축화하는데 적합한 동물의 종류와 이유에 대해서도 다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책은 두껍고 내용은 길고 진도는 잘 안 나간다. 


그래도 내용은 재미있고 제러드 다이아몬드 박사의 통찰은 훌륭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수렵채집과 식량생산에 대한 시선이었다.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수렵 채집민의 삶이 있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고달프게 움직여야 하는 삶, 안정적이지 못해 결국 수명이 단축되는 삶. 제러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식량 생산이 곧 육체노동 감소, 안락 증대,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 평균 수명 증가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자기는 직접 먹거리를 기르지 않으면서도 풍요롭게 살고 있는 제1세계의 사람들뿐이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현재의 우리 역시 하루하루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고달프게 움직여야 하는 삶과 다르지 않다. 그 노동의 모습이 조금 다를 뿐. 


책 속 인류의 시간은 뭉텅뭉텅 지나간다. 어느 부족은 수렵채집민에서 식량생산민으로 400년 간 살다가 다시 300년 동안 수렵채집민으로 살았다고 한다. 사흘, 나흘도 아니고 삼사백 년이 훌쩍 지나간다. 기원전 2500년, 1500년... 어제오늘 사는 고민을 하다가 몇 천년 전의 몇 백 년 이야기를 들으니 작은 불만 불안 따위 다 부질없는 기분이다. 


하지만 삶의 형태가 바뀐 삼사백 년 사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몇십 년을 애타게 살아나갔을 것이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리도 휩쓸렸다가, 저리로 휩쓸렸다가, 풍족했다가, 부족했다가, 편안했다가 불안하기도 하면서.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그 시절 인류는 '친환경적'이었겠지. 어쨌든 오늘도 쇼핑 안 하기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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