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를 처음 배우게 되면 생소한 개념들이 많이 나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개념은 "우선권 주장 제도"인 것 같다. 다른 개념들은 용어의 의미를 알고 나면 이해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우선권"은 일단 이해되었다 해도 연관되는 개념들도 꽤 있고, 기한이 맞물리면서 다른 제도와 연결되기도 하기 때문에 한 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도 변리사 시험공부를 시작하면서 개념잡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우선권 주장 제도" 부분이었고, 특허 강의를 해보면 가장 호응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우선권"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기술분야와 달리 바이오 분야의 특허를 내려면 우선권 주장 제도를 알고 있어야 한다. 활용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우선권 주장 제도가 특허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제도이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우선권 주장 제도의 배경과 종류
우선권 주장 제도는 신규성/진보성 판단, 선출원주의, 속지주의를 보완하기 위하여 탄생한 제도이다. 특허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발명이 새로운 것이어야 하고 진보한 것이어야 하며, 동일 발명이 출원되었을 때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권리를 주도록 하기 때문에는 발명이 완성되면 가능한 한 빨리 출원을 해야 안전하게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특허제도가 취하는속지주의 때문에 특허권이 필요한 각 나라마다 특허출원을 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외국에 출원하려면 시간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 한국 특허청에 출원할 때 준비기간이 몇 개월이라면, 미국 특허청에 출원하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영어로 번역도 해야 하고 미국 현지에 있는 변리사를 찾아 설명하고 출원을 의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편함은 어떤 나라의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로 겪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들이 조약을 맺었다(파리조약). 즉, 한 나라에서 먼저 출원하고 1년이 지나기 전에 원출원 국가에서 출원한 내용을 가지고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다른 나라에 출원을 하면 신규성/진보성 판단, 선출원주의 적용 시에 먼저 출원한 국가의 출원일을 기준일로 삼아주는 것이다. 이것이 "조약 우선권 제도"이다.
조약 우선권 제도는 원출원된 발명의 내용에서 발명을 추가하여 우선권 주장 출원을 하거나 발명을 병합하거나 분할하여 출원하는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활용상의 장점이 국내에서만 출원되는 특허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형평성 문제가 지적되면서 "국내 우선권 주장"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즉, 한국에서 출원하고 1년 내에 다시 한국 특허청에 출원했을 때 우선권 주장을 하면 먼저 출원한 날짜로 신규성/진보성 판단을 소급해준다.
2. 우선권 주장과 관련된 해외 출원 제도
우선권 주장 제도는 해외 출원 시의 불리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고, 해외 출원 시뿐만 아니라 국내 출원 시에도 활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바이오 분야의 특허는 한번 괜찮은 특허가 나오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주요국에도 특허를 출원해 두어야 후에 글로벌 시장에서 출시되는 제품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 출원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해외 출원을 하겠다고 결정하고 나서도 어느 나라에 출원해야 할지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해외 출원 시의 비용이 국내 출원비용에 비해 고가인 것을 고려하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다.(국내 출원이 200만 원 정도 든다면, 미국이나 중국에 출원하는데 600만 원 이상, 유럽에 출원하는데 800만 원 이상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바이오 분야의 특허는 국내에서 최초로 출원하고 발명의 가치나 사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규성, 진보성, 선출원주의 때문에 발명이 완성되고 바로 국내 출원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해외출원을 결정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PCT 출원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PCT(Patent Cooperation Treaty) 출원은 국내 최초 출원 후 1년 내에 해외 어느 국가에 출원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우선권 주장 기한인 1년 내에 먼저 PCT 출원해 놓으면 PCT 가입국인 150여 개국에 전부 출원한 효과가 일정기간 유지되도록 한 제도이다(최초 출원일로부터 30개월). PCT 출원 비용이 300~400만 원 선인 것을 고려하면 해외의 1개국에 출원하는 비용도 되지 않으므로, 해외 개별 국가에 먼저 출원을 했다가 사업성이 없어 특허도 포기하게 되는 경우의 비용적인 손실이 생기는 기한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
3. 바이오 분야의 특허에서는 우선권 주장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까
바이오 분야의 특허는 다른 분야에 비해 특히 우선권 제도를 잘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좋다. 발명의 속성상 우선권 제도가 필요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실험 데이터의 보완 시 활용
바이오 분야에서 발명의 효과를 일차적으로 확인한 시점에 실험 데이터가 모두 준비되지 않았을 수 있다. 세포 수준에서 확인한 결과를 토대로 발명의 효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서 특허출원을 하고자 하여도 등록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데이터가 준비된 것이 아니라면, 데이터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경쟁자가 먼저 특허출원을 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출원은 가능한 서둘러야 한다.
이러한 경우, 우선권 주장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세포 수준에서의 데이터를 확보한 상태에서 먼저 특허출원을 하고, 우선권 주장 기한인 1년 이내에 동물실험 데이터를 준비하여 우선권 주장 출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신규성, 진보성을 먼저 출원한 날짜로 소급하여 판단받으면서 동물 실험 데이터까지 완비한 특허를 출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해외 출원 전략 수립
실험 데이터를 보완하여 국내 우선권 주장 출원을 하면서, 보완된 내용으로 해외출원을 진행할 수 있다. 바이오 기술 분야의 사업성은 원출원일로부터 1년 이내에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가능하면 PCT 출원을 하여 해외 출원에 관한 권리를 확보해놓는 방향으로 출원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고 나서 원출원일(우선일)로부터 30개월이 되기 전까지 해당 특허의 사업성을 고민하여 어느 국가에 개별 출원을 할지 결정하여 해외 특허에 관한 권리를 확보하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30개월이 지나기 전까지도 어느 나라에서 사업성이 있을지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지만그렇다고하더라도 기한을 놓치면 해외 특허에 관한 권리는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기한 내에 반드시 결정해야 하는데, 결정이 어렵다면 해당 특허의 기술이나 관련되는 분야의 기술이 어느 나라에서 시장성이 있는지 비교하여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신약이나 의료기기에 관한 기술이라면 미국이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을 갖고 있으므로 미국에 출원하는 것으로 우선 결정하고, 다른 나라는 세부 시장 규모 데이터 등을 찾아보고 결정하여 기한 내에 해외 출원에 관한 권리를 적절히 확보하여야 한다.
실질적인 존속기간 연장의 효과
특허를 빨리 출원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이들이 공개한 문헌에 의해 신규성을 상실하지 않고, 진보성 판단에서 불리해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바이오 분야의 특허는 사업화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허가 만료되는 시점(출원일로부터 20년)이 되는 시점에는 한참 수익이 들어오고 있는 경우가 많아 존속기간 만료일을 생각하면 특허는 가능하면 늦게 출원하는 것이 좋은 면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먼저 동일 내용을 특허 출원하거나 발명 내용의 공개로 인해 신규성이 상실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가능한 출원을 빨리 해야 신규성 및 진보성 판단에서 불리할 가능성을 최소화하여 특허를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고려하면,신규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특허 존속기간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우선권 주장 출원을 필수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신규성과 진보성 판단은 우선일을 기준으로 하지만, 존속기간은 출원일(우선권 주장을 하면서 출원한 날)을 기준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출원하고 1년이 되는 시점에 우선권 주장 출원을 하면 신규성/진보성 판단에서는 불리하지 않으면서 존속기간면에서는 1년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우선권 주장 제도의 내용을 연구자나 인하우스 실무자가 모두 정통하여 알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이런 내용들이 있다는 것을 한번 정도 들어두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적어보았다.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는 담당 변리사와 제대로논의를 하여 전략을 세우면 될 것이다.변리사나 특허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바이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특허를 접해야 하는 사람은 알고 있어야 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