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사라지는 우리동네
대학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사귄 친구를 동네에 데려온 적이 있다. 골목, 골목을 돌면서 집집마다 무슨 나무가 있는지 무슨 꽃이 피는지 설명했다. 친구는 서울에 아직도 이런 동네가 있냐, 시골 같다 했는데 난 그 말이 참 좋았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무로 만든 주택들이 있는 동네, 집마다 나무와 꽃이 있는 동네, 집 나무에 과일이 영글면 이웃이랑 나눠먹는 동네,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리고 밤이면 별이 보이는 동네, 아이들이 바닥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 땅따먹기를 하는 동네, 어르신들이 골목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계시는 동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우리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마당 안 텃밭의 채소들과 목단, 장미, 감나무, 목련나무를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집엔 이런 게 있다고 자랑한 적도 많았다.
누군가에게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나 이렇게 굉장한 동네에서 살아,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나눠 주던, 집에서 딴 야채나 과일은 내가 널 좋아해, 잘 지내자, 하는 뜻을 담은 뇌물이었다.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가장 독특하고 귀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행운아였던 게, 그 뇌물들은 늘 잘 먹혔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집에서 딴 대봉시를 ‘마트에서 파는 감보다 이게 훨씬 맛있어. 우리 집에는 이거 엄청 많아’ 하며 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동백꽃 점순이가 이런 마음이었나 하고 혼자 웃었다. 다행히 동백꽃 주인공과는 다르게 그 사람은 대봉시를 정말 맛있게 먹어줬다.
오랜만에 동네를 걸었다. 골목 여기저기서 사진도 찍었다. 텅 빈 우리 집도 둘러보고 벽지에 안녕, 집, 편지도 썼다. 마당에 나와서는 여기저기 꽃봉오리가 올라온 장미 덩굴을 사진 찍었다. 며칠만 있으면 꽃이 활짝 필 것 같았다. 다음 주엔 장미를 보러 이 동네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가족은 얼마 전에 이사했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재건축 구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났다. 원래가 한적한 동네였는데, 대부분이 빈 집이라고 생각하니까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골목 여기저기엔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하나같이 손때가 참 많이 묻었더라. 그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서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있으려나. 봄이라고 동네 나무들은 하나같이 푸르렀다.
무슨 마음으로 내 마을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는지. 몇 번이나 뭔가를 주저리주저리 썼다가 이건 잡지에 못 싣겠다 하고 새로운 걸 썼다. 글을 쓰면 쓸수록 이사 가기가 싫었고 풀들이 나무들이 집들이 골목들이 점점 더 아까워졌다.
안 팔리는 집이 넘친다는데 왜 이 동네에 아파트를 짓는 건지 그냥 뭔가가 자꾸만 야속했다.
그러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 겨우 생각해낸 것이 ‘이 예쁜 동네에 더 많은 사람이 살면 좋으니까!’이다. 유치하기도 하고 무슨 하이틴의 결말 같긴 한데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곧 내가 살았던 동네는 내가 아끼던 모습의 동네는 아니지만 누군가 좋아할 모습의 동네가 되겠지. 어쩌면 멋진 일이다.
하. 부디 바뀐 동네가 근사하기를. 욕심을 조금 부리자면 올해 가을까지 동네가 그대로 남아서 우리 집 대봉시를 따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제 뇌물이 필요할 때 난 무엇을 준비하나.
글 이경진
사진 최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