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유난히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날,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부스스한 나를 발견했다.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한 번도 이런 사람인 적이 없었다. 분단위로 약속을 만들어 사람을 만나러 다녔고, 그게 좋았다. 이토록 날 좋은 날이면 하루를 더 많은 사람들과의 들뜬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채우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달라졌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간절하고 달콤해졌다. 오랜 독박 육아는 넘치던 에너지를 바닥나게 했고, 집 밖의 사람을 만나 힘을 빼는 게 힘들어졌다. 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만혼에 노산이었던, 나이 많은 엄마였던 나는 인터넷 정보만으로는 불안했다. 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 문화센터 친구 엄마, 동네엄마들 까지 아이를 통해서 새로운 인간관계가 넓혀져 가기 시작했다. 아이의 유치원, 초등학교 친구 엄마를 모르면 뒤처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모임이 있으면 되도록이면 나가려고 했다. 사실 그렇게 만난 인연은 나와의 공통점이라곤 같은 연령대의 아이를 둔 것뿐이다. 그렇지만 네트워크에 끼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 결이 맞지 않아도 꾸역꾸역 나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도 여러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은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간혹 첫 만남에 결례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언니, 남편은 무슨 일 해요? “ “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첫 만남에 배우자의 직업은 무엇인지, 고등학교, 대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대체 그런 질문은 왜 한단 말인가? 나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지 않고 그런 질문들은 굉장히 사적인 부분이라 여겼기에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 당시 남편은 이직 준비 중이라 실질적으로 백수였고, 학벌 콤플렉스가 있던 나에게는 가장 싫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인연을 끊지 못하고 만나고 있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대개 화통하고 시원시원해서 만나면 재미는 있었지만 마음의 에너지는 바닥을 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사실 만나면 하는 얘기가 늘 비슷하다. 시댁얘기, 남편얘기(대부분 흉보는 것) 누구 애는 뭘 한다더라, 걔가 이랬다던데 알고 있냐 등등… 만남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다른 아이가 하는 걸 안 하면 안 될 것만 같고 다른 능력 있는 시댁이 부럽고 비교지옥에 빠지게 되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중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긴 독박육아 속 그래도 만남이 한 번씩은 환기가 되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더 정리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만남이 잦아지고 오고 가는 대화가 깊어질수록 시댁, 남편 험담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정말 이 만남이 긍정적 기운을 주는 만남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육아에만 온전히 쏟아부어도 모자란 기력을 거기에 쏟기는 너무나 아까웠다. 간단하고 단순한 삶이 필요했다. 인간관계에서도.
한창 미니멀리즘에 빠져 실천하고 있던 그때, 물건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미니멀리즘은 물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물건뿐 아니라 사람도 비워내야 한다는 것을.
어려울 것만 같던 인간관계의 정리는 꽤나 간단했다. 차츰 연락을 줄여가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들의 유효기간은. 연락도 줄이고 모임에 나가지 않고 단톡방에서 나오는 순간 즐겁지 않던 인간관계의 유효기간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