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마다 축제다. 대학로, 송현열린광장, 광화문광장에서 금천구 구청 광장까지.
프로그램을 들여다보았다. 비슷한 프로그램인데 시민들의 반응이 저마다 다르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예를 들어 같은 서커스 작업이어도 기기묘묘 서커스 자체만을 보여주는 것은 ‘와’ 감탄하고 ‘ 짝짝짝 ’ 박수로 끝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작품이 있다.
서커스 작업에 스토리를 입히고, 보는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참여를 직접 이끌어내고 역할을 부여해주는 경우이다.
지난 5월 종로 열린 송현녹지광장에서 있었던 서울서커스페스미벌의 다모클레스(Damocles)란 작품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인엑스트리미스트(Inextremiste) 라는 단체의 작품인데 컨셉 자체를 스펙타클 파르티시파티프(Le spetacle participatif) 즉, 참여쇼로 잡고 있다.
발상은 단순하다. 잔디밭 위에 길다란 송판 십 수개가 쌓여있다. 그 송판을 어깨에 이고 지고 포퍼머가 등장한다. 송판을 세우기도 하고 눕히기도 하는 놀이로 시작하는데 포퍼머는 혼자서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관객을 불러낸다. 대상도 어린이부터 청년, 청소년, 아버지, 직장인 등등 다양하다. 그들 앞에서 그는 따라하도록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눈짓으로 행동을 주문하기도 한다.
지난 번 경우엔 여러 아이들이 떼로 몰려 나와 서로 송판을 나르겠다고 하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자 통역사를 불러내어 짓궂은 대화를 전달하는 등 단체가 지향하는 실랄한 유머를 쏟아내며 이끌어간다.
예전과 다른 관객들의 참여열기도 달라진 점이다.
머슥해 하거나 쑥스러워하기는커녕 서로 나가려는 분위기다. 거리예술의 역사가 십수년이 되다보니 그만큼 관객들의 수용도가 넓어진 경향도 보인다.
결국엔 잔디밭 위로 송판을 십자 모양으로 깔고 그 위로 어슷어슷하게 송판을 세우고 그 위로 여러 사람들이 평형대에 오르듯이 올라간다.
상상해 보라.
평평한 평형대가 아니라 기울기가 죄다 다른 입체적 평형대에 성인부터 아이들까지 일곱 여덟 명이 올라간다면 그 느낌이 어떨까? 과연 그 송판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의 균형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아슬아슬 쓰러질 듯한 위험에 처했다가 다시 균형을 찾아가며 편해졌다가 다시 불편해지는 순간을 참가자들은 수시로 경험한다. 마치 하나의 시소가 아니라 여러 대의 시소가 대각선으로 놓여져 그것을 받치는 물질적인 받침대 대신에 사람들의 상호작용으로 흔들거림과 위태로움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모험심 발휘대회 같기도 하다. 이제 축제를 만끽하기 위해선 노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평소엔 내지 못했던 용기를 선뜻 낼 수 있는 축제의 묘미가 짜릿할 지경이다.
퍼포머는 다모클레스(Damocles)라는 작품 속에서 실연자라기 보다 관객들에게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이런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 용기를 내도록 동기부여해주는 퍼실리테이터와 비슷해 보인다. 모두가 예술가라는 문화민주주의 시대의 축제는 예술가가 시연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상황마다 저마다 참여하여 새로운 경험을 갖는 것이 축제의 새로운 경향이다.
요즘은 해외 작가뿐 아니라 국내 아티스트도 관객참여를 고려한다. 혼자서 공연하는
서남재 경우도 폴로세움이란 작품에서 3명의 아버지와 1명의 어린이를 호명한다. 그가 요청하는 역할은 폴을 안전하게 세우는데 필수적이다.
지지대를 사방으로 팽팽하게 펼쳐 이어진 끈을 배 둘레에 두르고 각각 지탱하도록 주문하고, 호명된 세 명의 관객들은 복잡하게 얽혀진 줄을 하나 둘씩 풀어내느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땀을 찔찔 흘리기도 한다. 그 풍경은 마치 노동을 부리는 가진 자의 상황이자 꼬이고 꼬여 쉬 풀리지 않는 인생사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관객들은 아슬아슬하게 폴 꼭대기에 오르고, 뚝 떨어지는 순간의 기술을 넘어 포퍼머와 하나가 되면서 그가 두려움 없이 폴 위에 우뚝 서는 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그 때 우리가 보고 느끼는 건, 대단한 서커스보다도 두려움 없이 시도하고 좌절하더라도 또 용기를 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거리예술센터에 방문했던 프랑스의 한 아티스트가 ‘저글링이나 서커스에서 내 자신이 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또 상대방이 나를 받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두려움을 떨치고 행동할 수 있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서남재 아티스트나 프랑스의 다모클레스팀이 관객을 무대로 초대하는 것 또한 관객이 역할을 잘 해 낼 거라는 믿음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아울러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한 역할을 주문받을 때, 관객들은 동기부여를 받아 선뜻 응하게 된다.
금천하모니축제에서 있었던 ‘모두의 금천탈춤- 탈춤추는 날’에서도 참가자들과의 관계 형성이 시도되었다. 금천구에서는 지난 4월 초부터 5월초까지 6회 동안 가산동 독산동 시흥동 등 여러 동네의 6개 공간에서 청년을 비롯, 장애인, 어르신 등 다양한 계층의 구민들이 탈춤을 배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장기 창작지원사업 및 장애예술 활성화지원사업에 선정된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지역 파트너로서 협업해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천탈(천하제일탈공작소)은 6명의 리더들이 제 각각 은율, 고성오광대, 양주별산대, 봉산탈춤에 이어 새로운 탈춤인 저절로 추는 춤까지 배우고 연습하여 축제 장에서 만나 서로의 움직임으로 탈춤마당을 펼쳤다. 여기에 제각각 배운 이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일 수 있도록 한삼이 나눠지고 누구나 출 수 있는 단순한 탈춤 동작과 함께 다함께 마음을 모으는 노랫말이 전달됐다
당신을 당신을 당신을 당신을
파도처럼 파도처럼
사랑해요 더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당신에게 고맙습니다
행복해요 행복해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행복해요
건강이 최고 건강이 최고
튼튼 씩씩 건강이 최고
춤을 춰요 춤을 춰요
너와 내가 너와 내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보통 땐 자동차가 다니던 길가가 축제 광장이 된 개방감 때문인지, 그동안 배워온 천탈의 리더들과 워크숍 수강생들이 다 같이 모이고, 음악까지 현장에서 라이브로 함께 해서 그런지 흥이 넘치고 신명이 무르익었다. 그동안 탈춤을 배운 사람이건 아니건 축제에 모인 사람들은 다 같이 한삼을 손목에 끼고, 혹은 장식처럼 달고 펄럭펄럭
팔을 휘두르고 발을 움직이며 각자의 몸짓으로 탈춤을 췄다.
찬탈의 리더들은 목이 쉬어라, 노랫말을 선창하고,
남들 추는 걸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도 하나 둘씩 일어나 탈춤 일행들 뒤로 한 두 명이 붙기 시작하자 긴 행렬이 만들어 졌다.
나도 인도에서 구경만 하고 있다가 ‘에이 이건 안되겠다 ’ 싶어 어울렸다.
음악소리에, 5월의 싱그런 바람에, 부딪치는 한삼 촉감에, 얼마나 기분이 싱그럽고
좋던지?
그냥 바라보며 구경할 때 보다 직접 참여하면 얼마나 신명나는지 그건 해 본 사람만이 안다. 바야흐로 축제도 이제 구경하는 게 아니라 참여하는 시대,
믿음을 바탕으로 한 자기 주도적 삶의 시대가 자기 주도적 축제의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