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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협력의 진화,
성과에서 존중으로

    

 지난 3월 말  페이스북에서 4, 5, 6월 석 달 동안 ‘연대와 협력’을 테마로 워크보트를 운영한다는 흥미로운 포스팅을 보았다.  ‘워크보트’ 라는 단어부터 생소했다.   

사전적인 설명은 업무용의 소형 배였다. 젊은 친구들이 일하는 새로운 방식인가보다 싶으면서 호기심이 들었다. 도대체 뭐지? 정년퇴임한 신분이었지만 용기를 냈다. 

승선을 위해선 몇 가지 질문에 답을 보내야했다.      

 지금껏 일 해오면서 어떤 상황에서 연대가 이뤄졌고 협력이 가능했던가? 

공통점이랄지 요인이랄지 뭔가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들기도 했다. 

사람 마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 어떻게 움직이는가? 

다행히 승선하는 기회를 얻었다. 함께 승선한 다섯 명 중  오프라인으로 아는 이라곤 예전에 함께일하는재단에서 일했던 마리팀장밖에 없었다.


낯설음도 잠시, 우리는 ‘연대와 협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마다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글을 써보자는 취지에 공감하여 함께 하는 연대의 모양을 갖추고 

저마다의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역할을 찾기 위해 어느새 협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다섯 명은 도대체 어떤 힘으로 뜻을 모으고, 시간과 생각을 나누는 연대와 협력이란 이름의 워크보트에 승선하게 됐을까?     

 

 첫째, 동시대적인 테마에 대한 공감대라고 여겨진다. 평소 혼자서도 과연 사람은 어떻게 ‘연대’하고 어젠 의기투합했던 사람이 오늘은 왜 분열되며 어떨 때 협력하고 어떨 때 혐오하는지 그 상황과 차이를 알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같은 테마를 가지고 한다면  생각만 하다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 또는 적확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배경을 살펴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들었다.          

둘째, 함께 승선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다섯 명 중 일면식이라도 있는 사람은 마리팀장 한 명이었지만 상징성이 있었다. 

알고 지낸 몇 년 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그는 사익보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을 했다. 그동안 읽은 책 요약 내용의 포스팅을 근거로 글 속에서 그의 고민과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어 마리가 시작하는 일이라면 해 봄 직 하겠다는 믿음이 들었다. 

그와 함께 워크보트를 설계한 유영의 자기소개를 읽어보니 조직의 존재가치를 발견하거나 자기다움을 발현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걸 좋아한다는 점에서 예술의 존재가치를 발견하거나 예술을 통한 잠재력의 발현을 좋아하는 나와 유사하기도 했다.

셋째, 나의 관심도 한몫했다. 과연 내 삶을 통해 그동안 어떤 연대활동을 해왔으며 어떤 협력 관계를 가져왔는지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있다. 내 경우 시대적으로 유신, 민주화를 겪긴 했으나 난 운동권이 아니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필독서였던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란 책은 내게 연대보다는 독야청청에 가치를 두게 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실존을 고민했던 난 혼자, 혹은 몇몇의 친구들하고만 어울렸다. 그 몇몇이 연대하는 경우는 좋아하는 음악에 몰입하거나 다른 이들은 몰랐던 작가, 아티스트를 우리끼리만 공유한다는 즐거움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과 비평을 비롯한 계간지나 제3세계 음악이나 실험극장, 창고극장 등에서 하는 연극을 통해 다른 세계에 접하고 의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위와 같은 배경에서 삶이란 결국 자기 자신의 문화를 가꿔나가는 것이고 고유한 자신만의 문화를 이뤄나가기 위해 매일 매일, 순간순간을 ‘문화 가꿈’ 해야 한다는  

‘문화가 꿈, 문화 가꿈’을 서울문화재단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여러 대표이사를 거치면서도 슬로건엔 공감해줘서 2004년부터 주철환 대표이사가 취임한 2016년까지 12년간 생명을 이어갔다.

 그런 와중에 보선으로 최근에 다시 서울시장직을 맡은 오세훈이 시장이 재직했던 2007년 서울시 문화정책 중 하나로 서울문화재단에서 제안한  ‘서울시민 문화충전 프로젝트’가 채택됐다. 재단 경영2기였던 안호상 대표이사 시절, 서울문화팀이 처음으로 생기고 서울의 문화 정체성을 찾는 작업과 동시에 시민들이 서울의 문화자원 경험을 통해 삶의 부족한 2%를 문화로 충전하는 캠페인성 정책사업이 전개되었다. 

입사 초기 문화네트워크 부장을 거쳐 전략기획팀장으로 일하던 나는 서울문화팀장으로 보직을 받아 서울시 정책으로 선정된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2004년 본격화된 주5일 근무제 이후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여가 문화와 문화예술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 절실했고 연평균 문화 공간 및 프로그램 체험률 0.3회에서 3회 이상으로 늘려 누구나 쉽게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서울시민 고유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보자는데 참여하는 단체들과 의기투합했다.            

사업은 아래와 같이 기획되었다.

○ 캠페인 명 : “문화는 내 친구” 

○ 슬 로 건 : “‘네(번째)일(요일)’이 내일(Tomorrow)을 만듭니다!”

             : “행복한 문화충전, 네 번째 일요일에 채우세요!”

○ 내     용 : 언제 _ 3월~10월 매월 네 번째 일요일

              어디서 _ 서울시내 곳곳의 문화예술 공간 ‘문화친구’ 

                       or 전문가 자원봉사자 ‘문화천사’가 직접 방문

              무엇을 _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체험 프로그램 


  당시엔 거버넌스 라는 개념이 화두가 아니라 사업조직의 유형은 드러나지 않은 채

시민 3,350명이 83종의 문화자원을 경험하는 문화충전 성과로만 기록되었다.

연대와 협력을 테마로 한 사업 사례로 해묵은 2007년의 ‘문화는 내친구’ 사례를 불러와 본다. 

윈스턴 처칠이 삶을 돌아보는 것은 죽을 때 하는 일이고 살아있을 땐 앞을 보고 살아 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초기 사업을 할 때는 조직이나 구조 등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헌데 연대와 협력을 테마로 한 워크보트에 타보니 내 경험 중 가장 인상적인 연대와 협력의 경험은 ‘문화는 내친구’ 라는 캠페인성 사업이었다. 

이 사업이야말로 거버넌스 체제의 기본적인 모델로 여겨진다. 서울시민의 문화충전을 위해 공공과 민간이 연대하여 저마다 할 수 있는 역량과 자원을 적은 예산으로도 즐겁게 협력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럼, 왜 건축가협회, 박물관협회, 프로듀서협회 등등 민간에서 공공문화재단인 서울문화재단과 연대했을까?     

 기존엔 공공에서 기획을 총괄하고 민간 파트너를 섭외 혹은 공모하여 위탁형식의 진행이 대세였지만 ‘문화는 내친구’는 플랫폼이 되어 협력실행주체와 홍보주체를 직접 찾아가 모셨다.

‘모셨다’ 라는 태도가 중요하다. 

각 장르를 대표하는 주체들은 사업의 주인공이 되어 사업을 추진했고, 재단은 실행주체가 직접 하기에 어렵고 번거로운 홍보물 만들기부터 보도자료 작성, 시민참여 독려, 그리고 촬영 및 아카이빙 작업 등을 맡아 거들었다.

지원금은 각 단체마다 500만원씩 제공하되 부수적인 작업을 재단에 거들고 주체들은 본질에 충실한 프로그램만 하면 되니 동기부여가 되었다.

특히 여성건축가협회와의 협업으로 여성 참가자만으로로 구성된 투어팀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단체들은 공공에서 하는 사업대상으로서 부속품이 아니라 한 단체의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단체의 대표 프로그램이 되는 보람을 경험했다. 

결과를 공유하고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동안 사진을 찍는 전문봉사자, 프로그램 지원을 하는 문화는 내친구 천사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우리 모두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그 자발성이 고마워 서로 믿고 애정하게 되었으며 그런 마음이 모여서 연말 사업의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마련해 자연스럽게 봄부터 가을까지 다녀온 문화는 내친구 프로그램 영상과 사진을 보며 서로 다른 프로그램도 간접 경험하고 퀴즈도 맞추며 스태프들간의 감사의 밤을 가졌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처음으로 갖는 이해관계자들, 스태프들이 모인 피드백 미팅이었다.

사업 성과는 예측가능해야 한다고 하지만, 경험을 통한 감정의 변화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 

마치 재즈처럼.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협업은 저마다 자신의 연주를 하면서 그 흥에 겨워 잼으로 몰입하는,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공공미술투어의 파트너였던 김준기큐레이터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돼있고 건축투어의 파트너였던 강권정예님은 R부동산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정예씨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는 내친구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를 꾸리던 친구는 지방 모 재단으로 취업을 하더니 최근엔 또 다른 재단의 팀장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워크보트의 첫 번째 글감으로 문화는 내친구 사례를 선택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무려 122page의 결과보고서가 나왔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였을 때 유대와 협력도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뤼히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 글머리에 쓴 정재승의 추천사 중 호모사피엔스는 

서로 가르쳐주고 서로 모방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공동학습을 통해 더 똑똑해졌고 우정과 친절, 협력, 그리고 연민은 전염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산울림극장 건물 1층에서 15년 동안 일본가정식 음식점인 수카라를 운영해 온 수향상이 최근에 가게를 접었다고 한다. 평소 절친한 지인이 그간의 소회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제 흙 속에 뿌리를 박고 한 곳에서 오래 머무는 흙의 시대에서 씨앗이 바람에 흩날리듯 생각이든 뭐든 다 바람처럼 가볍게 만나고 흩어지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어쩌면 요즘 강조하는 유대와 협력도 단어는 같지만 과거의 전체주의적이고 몰개성적으로 끈끈하기만 한 유대와 협력이 아니라 각각의 특성을 존중하면서 ‘바람처럼 가볍게 만나고 흩어지는’ 시대정신을 갖춘 유대와 협력으로 진화해야 하지 않을지?

워크보트 온라인 미팅 중 연대와 협력의 조건은 ‘여유’라는 마리의 말이 오래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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