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라는 용어를 아침 주식방송에서 처음 들었다.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발언이 트리거가 되어 주가가 급락한다느니 여러 상황에서 트리거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사전적 의미는 ‘방아쇠가 발사되다’, ‘폭발하다’ 뜻으로 트라우마 경험을 다시 경험하도록 만드는 자극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기폭제’라 써왔다. 뭔가 적당한 계기를 부여하여 필요한 작동을 일으키는 일로 요약되었다. 그렇다면 ‘연대와 협력’에서의 ‘트리거’는 무엇일까?
지난해 시행된 '협동조합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관련 기사를 옮겨본다. 기사에서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 생협 등 다른 종류의 협동조합 간 연합회를 구성할 수 있게 되는 법안이라며 협동조합 생태계에 전환점을 맞이하리라 기대한다.
이종 협동조합 연합회의 설립 인가가 가능해지면서 협동조합들 사이의 연대가 촉진되고 자금력이 부족한 협동조합들이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이나 신용협동조합과 연합해 하나의 법인으로서 사업을 추진하고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생기면 연합회 역할이 강화되고, 협동조합 간 연대가 촉진된다는 해석인데 여기에서 내 눈길이 머물러 꼼짝을 안 한다. 위의 법률이 생긴다고 데면데면하던 협동조합들 사이에서 과연 연대가 촉진될 수 있을까?
어떤 변화를 만드는 시작점인 ‘트리거’로 제도가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살펴볼 수 있는 사례를 공유해 본다.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요즘 핫한 공간으로 뜨고 있는 곳이 있다. 인사동 승동교회 옆 오래된 멋진 공간이다. 4-5년 전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해오고 있던 터였는데 디자인하우스를 비롯 여러 주체를 거치는 동안에도 내내 썰렁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흥미로운 전시와 워크숍, 공연 등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누가 운영하고 있나 보니 마침 내가 알고 지낸 분이라 덜컥 만났다.
그는 재단에 다닐 때 공간사랑이나 동숭아트센터 매입 등 부동산 자문을 위해 만났던 안주영상무였다. 2013년 인지 그 무렵 처음 볼 때에도 그의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본관에 부설 공간 등 덩치가 큰 인사동 공간을 맡아 경계가 없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KOTE라 명명하고 1년 반 여 년간 운영해 오고 있단다. 그동안 영혼을 갈아 넣은 건 물론이요 개인 자산까지 처분할 지경에 놓였다고 하는데 그런 어려움의 그늘이 짙어진 올 들어서야 예술가와 지역으로부터는 가슴 뜨듯해지는 관계망이 생기고 있어 살 맛 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페 정기휴일에 전시가 열리는 경우, 당연히 카페가 문을 닫았으리라 예상했는데
레지던시에 묵고 있는 아티스트와 근처 인사동 지역의 가겟집 사장님들이 내남없이 알아서 문을 열고 포스 계산기를 켜고 커피를 내리며 손님을 응대하더라는 것이다.
부대 건물 중 아티스트들의 레지던시 공간에서는 몇몇 공간이 비어있었는데, 여기엔 이런 아티스트가 입주해야 해! 라며 스스로 뜻이 맞고 공간에 부합한 아티스트들을 전국적으로, 혹은 전 세계로 알음알음 수배해 창작 이웃들을 들이기도 한다.
운영 초기엔 예술가들로부터 별 반응이 없었는데 그동안 수익적으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전시 공간을 개방하고, 예술가들이 활동을 하는데 뭐든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 KOTE 공간 안에서 서로들 알아서 작동하는 일이 기적처험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핫하게 뜨고 있는 NFT 주제의 전시 경우도마찬가지이다. 주요 기업들이 너나없이 NFT플랫폼을 만들려고 활동할 작가들을 찾고 있는데 이태원과 성수에서 활동해 온 100여명의 젊은 작가들이 대기업의 요청에는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KOTE가 필요로 하는 전시라면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협동조합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같은 법률도 없는데 어따ᅠ갛게 이런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
그 배경은 존중과 환대이다. 기획전시 경우에도 운영진은 작가들에게 기본적인 비전만 공유할 뿐 최대한 작가의 창작세계를 존중하고 창작가를 가장 우선시하는 환대를 하고 있어 이것을 경험해 본 작가들이라면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선의에서 선의로 선의 사슬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올해 백상 예술대상에서 젊은 연극상을 수상한 ‘여기, 당연히 극장’의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 경우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에는 동아 연극상을 수상하고 올해는 백상연극상, 남자연기상 등 2개 부문을 수상했는데 수상소감에서 낯선 풍경이 등장했다. 흔히 수상 소감하면 연출을 중심으로 함께 일한 스태프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경우는 대부분인데 ‘여기 당연히 극장’ 팀은 중간 지원기구인 문화재단 같은 공공기관을 호명했다. 물론 성북문화재단과 공동기획이긴 했지만 흔히 인사치레 정도로 땡스 투 리스트에 끼워놓은 수준에 머무는데 ‘우린 농담이 아니야’ 경우는 달랐다.
‘여기 당연히 극장이 만든 ’우리 농담이 (아니)야‘는 성북구 미아리 예술극장이라는 작은 극장에서 공연이 올려졌다. 다른 지역은 재단 등 공공재단에서 위탁 운영하는 반면 이곳은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성북문화재단과 수평적인 파트너십을 실험하고 있는 극장이다. 그렇다 보니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마다 어떤 작품을 올릴 것인가?
동시대에 어떤 이야기가 가장 필요하고 공감을 얻을 것인가? 고민이 깊었다.
지난해 특히 팬데믹으로 다들 삶의 벼랑 끝에 몰리면서 말로는 위로와 응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혐오와 차별이 극에 다다르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다양한 창작물 결과 발표 현장을 발품 팔아 다녔다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우연히 ‘그 여자 그 남자 ’ 낭독극을 보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 ’라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부족한 예산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그 지난한 과정을 창작진과 극장 스태프, 지원기관 직원들 모두가 온전히 겪으면서 하루는 절망하고 또 다른 하루는 서로를 격려하며 버텨냈으리라.
세상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런 공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그런 공연을 만드는데 다른 이가 아닌 내가 기여하고 있고 사람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는 차별과 혐오의 세상에서 더 이상 사람이 망가지지 않게 버려두지 않겠다는 책임감에 연대의식이 뜨겁게 작동하고 그런 공감대가 있어 저절로 중간지원기관인 공공문화재단을 호명했으리라.
또 다른 사례는 낙산 성곽길에 새로 생긴 카페 ‘책 읽는 고양이’ 경우이다. 이곳은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및 한국 영상자료원 원장을 지낸 조선희 소설가가 운영하는 공간인데 운영방식이 새롭다.
월화수목금토일 7일 동안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7인 7색으로 다 다르고 상시 대타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주말엔 작가 조선희 주인장이 나와 책 읽는 고양이를 찾아오는 손님에게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만들며 술도 제조하고 있다.
나름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여성들이 기꺼이 시급을 받으며 ‘책 읽는 고양이’의 아르바이트생을 자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주인장과의 친분도 친분이지만 베이비부머 여성으로서 기존의 꼰대가 아닌 저마다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라이프 스타일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그 공간이 주인장 한 사람의 공간이거나 돈을 버는 영업 공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못지않은 묘격을 지닌 고양이에 대한 오마주로서의 공간, 그리고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공간 기능을 하는데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사례를 되짚어 보니 ‘연대와 협력’의 트리거란 ‘애정과 신뢰의 신호’ 같다.
KOTE의 안주영 대표는 문화예술 현장과 인사동 지역 인사들에 대한 애정, 디지털 시대에 까막눈이 되어버린 시니어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전달해 주고 싶어 하는 애정으로 복합 문화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예술가와 지역 인사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고, 책 읽는 고양이 카페 또한 고양이와 책에 대한 애정으로 공간이 굴러가고 있다.
‘여기 당연히 극장’의 연출자나 배우 그리고 함께 고생한 성북문화재단 모두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하는 연극 창작에 대한 애정으로 서로들 더 단단해지고 돈독해졌으리라
BTS의 연대체인 아미 또한 BTS에 대한 애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던가
'협동조합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제정으로 협동조합 간 ’ 연대와 협력‘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원들이 몸담고 있는 협동조합에 대한 애정과 조합원간의 우정과 애정, 신뢰가 돈독해져야 ’연대와 협력‘이 쏘옥쏘옥 풀싹처럼 자라난다는 것을 새삼, 다시 확인한다.
물론 제도도 상호보완적이다!
* 조선희의 페이스북에서 공간 성격을 설명한 부분을 일부 따옴
* 위 원고는 2021 월간 춤 7월호 오진이의 문화광장에도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