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 Jul 01. 2021

연결의 근육

연대와 협력을 틔우는 연결의 근육 키우기

  나는 비영리섹터에서 일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역에 있는 시민사회가 지속가능하고 활성화되도록 지원사업을 기획, 운영하는 중간조직에서 일한다. 때문에 직접 현장에서 공익 활동을 하기 보다는 커-다란 그림 속에서 시민사회에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지원사업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작년부터 나의 주된 업무는 코로나19 이후 시민사회가 필요로 하는 무엇을 찾아내고 이를 사업화 하는 일이다. 모두에게 그렇듯 코로나19는 시민사회에도 어려움을 가져왔다. 시민모임이나 공익활동에서는 모임이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로 모임이 제한되면서 당장 활동 방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또 K-방역이란 이름 아래 국가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 시민사회 단체는 국가 감시라는 제 역할을 해 내기가 쉽지 않은 조건이 되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생존을 챙겨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 여기서 ‘시민사회’란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조직화된 시민단체와 공익을 위해 행동하는 개인 시민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후자의 시민사회가 아직은 낯선 이들도 있겠지만, 요즘 시민사회는 꼭 조직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 자유로운 모임이나 프로젝트 형태로 공익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글에서 시민사회는 포괄적이고 확장된 의미로 사용된다) 


✊시민사회 그리고 연대와 협력 

  시민사회의 일원이자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작년 한 해를 보냈다. 지난 한 해는 재난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힘을 잃지 않고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장기적 관점에 대책의 필요성을 느끼기에 충분한 한 해였다. 

여기서 ‘장기적 관점에 대책의 필요성’을 좀 더 풀어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잃지 말아야 할 가치를 끊임없이 집어내는 시민사회의 ‘깨어있는 눈’이, 재난과 같은 거대한 힘에 잠식 당하지 않기 위한 장기적 방안을 마련한다는 말이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의 자문을 구했다. 강연회, 집담회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기도 했다. 그 수많은 토론 속에 정답은 없었다.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과 시민단체의 역량 강화, 활동가의 지지망 형성, 공익활동에 대한 보상 등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그 중 또렷한 하나의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한 게 있다면 ‘연대와 협력’이었다. 연대하고 협력해야만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맺음말은 어디에서든 동일했다.  

  연대와 협력을 주요 가치이자 행동 강령(!)으로 삼아온 시민사회에서 코로나 이후 세상에서도 '여전히' 연대와 협력을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던져보았다. ‘연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직도 유효한 해결 방법일까요?’ 답은 가지각색이었다. ‘가능하다’와 ‘아니다’. 


  ‘가능하다’고 말한 이들도, 과거 방식과 같은 연대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한 사람이 주도하면서 하나의 목적에 따라 똘똘 뭉치고 쫀쫀하게 이어지는 기존의 연대 방식은 이제는 어렵다고. ‘아니다’ 라고 말한 이들은 연대와 협력이 피로하다고 말했다. 연대와 협력을 하기 위한 수고가 너무 크고, 재원과 인력은 없고, 결과도 아쉽다고 했다. 

  연대와 협력이 어려운 걸 알면서도 시민사회 안에 많은 지원사업이 여전히 연대와 협력을 말한다. 혼자는 안된다, 최소 3인이 모여야 한다, 2개 단체 이상의 컨소시엄을 만들어라. 지원조건만 보더라도 1인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연결을 통해, 만나서, 모여서, 함께, 컨소시엄으로. 지원사업은 끊임없이 연대와 협력을 지향하라고 말한다.  

모두모두 모여라 


  경험에 비춰봤을 때 그간 지원사업들이 만들어 온 연대와 협력의 결과물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실제 많은 사업의 결과로 생겨난 연대, 연결, 협력의 관계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도 했고, 해당 사업에서는 soso-한 결과를 냈다 하더라도 이후 새로운 경로로 이어져 또다른 성과를 내기도 했으니까.(정작 지원사업 당시에는 그저 그랬지만, 뒷풀이나 네트워킹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쿵짝쿵짝 일을 벌렸던 경험처럼)  정량적으로 딱 떨어지는 성과를 내지는 않더라도 이런 방식의 사업들이 갖고 있는 정성적 성과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지원사업들이 여전히 ‘연대와 협력’이라는 단어를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연대, 연결, 협력 관계의 좋은 결과물 :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시나리오 네트워크 지원사업은 개별단체의 기존 영역과 의제를 넘어서 ‘의제와 의제의 네트워크’ , ‘모임과 모임의 네트워크’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작은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창의적인 사업을 지원해왔다. 그중 2017년 성소수자, HIV/AIDS 감염인, 난민 인권 활동을 해 온 활동가들이 모여  소수자 난민을 실질적으로 지원 하는데 있어 필요로 하는 기반을 다지기 위한 활동이 있었는데, 기존에 교차점이 없는 활동가들이 만나 새로운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다. �사례보기   


�연대와 협력은 어디서 꽃 피울까?  

  하지만 이런 방식의 지원사업을 보며 '연대 이전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지 궁금해졌다. 일단 지원을 하려면 적어도 3인은 모아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미 모여있는걸까? 마치 유치원에 갔는데 모두가 한글을 떼고 온 것처럼, 연결하라고 만든 사업 안에 이미 연결된 사람들만 들어와 있다. 지원사업에 함께 도전할만큼 의기투합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찾는 걸까? 지원사업을 통해 뭐라도 해보고 싶어도 동료가 없는 사람은 시작도 못하겠는걸?

  이를 해결하고자 공론장이나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다. 이미 구축된 관계에 상관없이 너르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 한번이라도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엄청난 오지라퍼가 아닌 이상 처음 본, 혹은 스크린 뒤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져 의기투합까지 나아가는 건 쉽지 않다. 공론장이나 플랫폼이 관계 구축이라는 제 역할을 하려면 참여자가 열린 공간을 활용할 마음가짐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만 있다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관에서 마련했던 사적인 자리던 상관없이 연결의 스파크가 파바박! 하고 일어난다. 그렇게 연결의 기운이 도사리는 곳에서 사람들은 보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면서 좀 더 의기투합에 가까운 관계로 가기 쉬운 상태로 진화할 수 있다. 


�연결의 근육 만들기 

  정리하자면 이렇다. 코로나19 이후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시민사회. 그리고 연대와 협력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지원사업들. 지원사업의 자격조건으로서 이미 연결된(연대된) 관계들. 이를 마련하기 위한 장으로서 제공되는 공론장과 온라인 플랫폼. 이런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된 마음가짐.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나는 ‘연결의 근육’이라 부른다. 어떤 공간에서도 연결할 준비가 된 연결의 근육은 일상에서 만들어지고 또 단련될 수 있는 기능(!)이다. 


연결의 근육만 잘 갖추고 있다면, 굳이 공론장이나 플랫폼, 지원사업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연대와 협력의 관계를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을테다. 굳이 힘주어 ‘연대합시다, 협력합시다!’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연결되고, 필요에 따라 협력하고 또 연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연결의 근육은 어디서 키우나.(개인 PT가능합니까?) 타고나기를 연결의 근육이 많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성향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MBTI가 I라서, 또는 E라서 연결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연결의 기운이 충만했던 순간들을 떠올렸을 때, 나는 ‘끊임없는 질문들’이 생각난다.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해 ‘나’의 관심사와 생각을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관심사와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질문이 많이 오고가는 것이다. 좋은 질문이 선행되어야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 받고 그 안에서 일어난 클릭이 이후 연결이 되어 연대와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양질의 질문이 풍부한 대화에서 연결도, 연대도, 협력도 꽃 피울 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코로나19 이후 시민사회가 필요로 하는 무엇’에 대해 나는 ‘질문하기’를 답으로 제시한다. 시민사회 안에서 충분한 질문이 오고 간다면, 질문과 답 사이에 연결의 지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결의 고리들은 연대와 협력이 가능한 토양을 만들고, 그 땅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혜안이 자라날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이 완벽한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질문이 연결의 고리로 맺히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지고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던져진 질문은 어딘가에 흔적을 남길테고, 언젠가 누군가는 그 질문에 호응할 것이다. 거기서 피어날 무언가를 상상해 본다면, 질문이 던지는 일이 아예 의미없는 것은 아닐테다. 




�워크보트에서 던진 질문 

  워크보트에서 약속한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연대와 협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것저것 많은 생각과 질문을 떠올렸다. 쓰잘데기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는 더 깊게 파고들고픈 질문도 많았다. (가령, 연대와 협력에는 유통기한이 있을까? 연대와 협력이 수월한 대화 문화가 있을까? 연대와 협력에 최적화된 MBTI는 무엇일까? 등) 질문들 모두 답을 찾지는 못했다. 게다가 첫번째 글에서 던진 질문'왜 우리는 여전히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연대와 협력을 꼽는가?'와 두번째 글의 'Like-minded를 넘어선 연대란 가능할까?'는 모두 ‘느낌적 느낌’의 답만 내어놓고 명쾌하게 마무리 짓지 못했다. 

  연대와 협력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던 그 자체가 오산이었을지 모른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감각을 3개월안에 언어로 정의내리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지도. 이렇게 끝날 것을 아예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렇게 끝내고 나니 좀 더 겸손해진 느낌이다.

  연대와 협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자 마음먹은 3개월의 시간은 끝이 났지만, 그 주제가 나에게서 아예 끝난 건 아니다. 개인으로서 사회에 살아가는 동안 연대와 협력은 어떤 모습으로든 나의 일상에 존재할테니까. 달라질 것이 있다면 앞으로는 연대와 협력에 대한 더듬이가 바짝 세워져 있을 거라는 점. 그 살아있는 감각이 만나게 될 앞으로를 기대하며, 워크보트 3개월 마지막 글을 마무리 한다. 


워크보트 짱잼, 또 타자! 


매거진의 이전글 Part2. 연대하려다 '하이 펑셔닝 소시오패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