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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명희 Jun 29. 2021

Part2. 연대하려다 '하이 펑셔닝 소시오패스'

"연대" 학습노트 제3화 2편 : 어렵다.


“요새 낙은 셜록을 보는 것. 셜록이 좋다.”

 (쓸 말이 없어 오종종 자판을 오간 끝에 써진 문장)


     잘생겨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셜록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셜록 역)가 어벤저스의 닥터스트레인지로 나왔을 땐 없던 감정이다. 셜록은 자신을 ‘하이 펑셔닝 소시오 패스 (고기능 소시오패스, high functioning sociopath)’로 부른다. (정식 정신분석 용어는 아니라는데, 사이코패스와 달리, 감정은 느끼나, 그 감정에 옳고 그름이 없는 상태를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 좋다 나쁘다는 감정보다는, 의뢰받은 난해한 사건에 몰입해 수수께끼 풀듯 일필휘지로 사건을 해결하고, 분란을 종식시킨다.  고마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뿌듯함도, 자신을 오해하거나 음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슬픔이나, 분노도 없다. 사건 해결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며, 사건 해결에 대한 보상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본인이 풀고 싶었던 문제를 본인이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좀 극단적이긴 하나, 셜록은 자기 관심사로 움직이고, 세상의 이런저런 관계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그리고 문제를 푼다. 그의 그러한 개인적 추구는 사건 해결로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은연중 셜록이 좋아진 건, 내 분출되지 못한 자아가 겹쳐서 그런 것 아닐까? 사실 나는 연대와 협력에 힘쓰고 싶다던 그 순간에 셜록의 소시오패스적인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고, 대리만족을 느낀 건 아닐까?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된 현실 속에서 마음을 다해 우리가 서로 연결되고, 연결하여 뭔가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실은 그렇게 하기 어려웠던 것 아닐까? 연대 좋다고 했지만, 어쩌면 연대와 협력을 해야 한다는 - 그러니까 연결되어 있고, 연결해야 한다는 - 강박이 있었던 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깜짝 놀랐다. 띵.


너무 내 생각에 쌓여 있어서도 안되고, 너무 다른 사람 의식해서도 안되고, 그럼 조금 더 자연스럽게 연대와 협력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까지 레이더에 잡힌 연대와 협력으로 갈 방법들을 써본다.   

연결해야 한다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자기 몫으로 된 일을 일단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알게 되면 더 좋다.)  

다른 사람이 맞다고/틀리다고 하는 일에 움직이기 전에,  자신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지 (부화뇌동하는 것은 아닌지,  존재감 때문은 아닌지) 살펴보고 행동하는   

착해야(be kind) 하진 않지만, 사람과 살아 있는 것들을 그대로 존중하고, 나의 어떤 행위가 다른 존재를 피해 입히지 않도록 하는 것  

나의 최선을 내가 인정하는 것, ‘칭찬’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는 것   

연대와 협력을 위해 다른 사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중심에 나를 두는  중요하다는 생각이 갈수록  명징히 든다. 개인이 나로서 단단해질  있고, 그렇게 단단한 나여야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연결로   변화를 꿈꿀  있다. 지난 편에서 연대하는 공동체에서 맞닿뜨리는 어려움은 절절하다고 이야기했다.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은 모르겠고, 다음 글을  때도 아마 모를 거라고 했다.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거였다.


    연대가 타인과의 연결이라면, 당최 납득할 수 없는 사람들과 연결은 어떻게 만드나?   

    연대의 이유로, 나를 다치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사람은 어쩔 건가?   

    누군가 지금껏 이 공동체에서 연대를 만들어 온 나를 부정하면 어쩔 건가?   


                           정답은 없다.  “자신이 찾지 않으면”  


    당최 납득할  없는 사람들과 연결은  만들면 되고, 연대를 이유로 나를 다치게 하는 사람은 안 보면 된다. 누군가 지금껏  공동체에서 연대를 만들어  나를 부정하면 나도 그를 부정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 이래선 연대하는 공동체를 만들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알면서도 안 되는 을 힘들더라도 옆에 두고 참참히 들여다보는 것도 노력이다. 그러다, 내 자신이 단단해진 어느 ,  스스로 마음이 움직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 혹시 컨디션이 괜찮다면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할 일을 떠올려 본다면 금상첨화지만 아니어도 실망할  없다. 여전히 지구 , 여전히 60 인구와 수천억 생명체는  곁에 있다. 그러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나와 같은 주파수를 가진 존재 만나 우리의 전파를 송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게 다른 존재와 연결의 시작점이 될 테고. 


     변화한다는  외에 진실은 없다. 연대하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알고, 연대에 필요한 것을 마음을  헤아려 아야 겠다. 나의 변화를 느낄(sensing)  있도록 자신의 활동에 대해 일정한 간격으로 돌아보면 앞을 내다볼  있는 여유가  글을 함께 읽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좋겠다.


     연대와 협력을 함께 배우는 워크보트는 이제 3개월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정착한다. 배의 닻은 올리는 것은 함께가 필요 하지만, 항해 전에 다음 항해를 꿈꾸고, 채비를 하는 것은  마음이 먼저다.


 

                      20세기는 연대의 이름을 내걸고 협력을 왜곡했다. ( 세넷, 투게더)





(혹시 지난 편에 열독 하신 분들 연대의 어려움 4개 질문 중에서 한 개 빠졌네. 하신다면, 엄지 척!

마지막 문제는 좀 달라서 뺐다. 연대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해를 살아온 나에게 “우리의 연대 이유”가 하늘 아래 진리가 아니고, 변화하는 것이라면 어쩔 건가? 변화하자. 창피해하지 말고. 쉽게 이리저리 변화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해야 될 것 같으면 하라는 이야기다. 다만 변화의 이유는 나중과 다른 사람을 위해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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