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심장이 헐도록 울었다.

금상이 아니라도 어머니에게 안길수 있었다면

by 이제 봄

문선생님을 처음 대면한 그날

문 선생님께서 어머니에게 받은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마주했던 장면은

처음 상장을 받았던 날이었다.


때는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이었다.

입학 후 첫 시험을 봤다.

그때 내가 다닌 학교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었는데

절대평가로 1~2개 틀리면 금상

3~4개까지 은상

5~6개까지가 동상이었다.

정확한 상장의 기준은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 있으나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로 상을 주었다는 것은 또렷하게 기억났다.


점수가 나오자

선생님께서 금상부터 이름을 불러 상장을 나누어주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호명되는 이름을 들었다.

내가 혹시 상장을 받을 수도 있으려나?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싶었다.

선생님은 금상부터 발표를 하셨다.

호명된 아이는 앞으로 선생님께 나가 두 손으로 상장을 받아 들었다.

아이들의 우와 하는 소리가 박수소리와 함께 교실을 가득 메웠다. 5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박수 소리였다.

금상을 받은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너무 부러웠다.


이윽고 은상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나 잘했다니.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가 상장을 받아 들었다.

박수소리가 들리자 기분이 한껏 들떴다. 뿌듯한 마음이 내 작은 가슴을 가득 메웠다.

처음 받아본 상장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동상도 아니고 은상이었다.

상장 안에 쓰여있는 내 이름을 자꾸 읽어 보았다.

익숙한 내 이름인데 읽을때마다 자꾸 기분이 좋아졌다.

구겨지면 안 되므로 가방에 넣지도 않고 조심스럽게 상장 모서리를 잡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마음이 바빴다. 어머니께 얼른 자랑하고 싶었다.

상장은 마음만큼 손가락 끝에서 펄럭였다. 상장을 타고 하늘로 날 것 같았다.


현관을 열자 어머니가 식탁에서 무엇인가 먹을 것을 만들고 계셨다.

나는 목소리 우렁차게

'나 은상 받았어!' 하며 어머니 눈앞에 상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상장을 흘낏 보더니

'겨우 은상이냐?'

했다.

나는 당황했고, 놀랐고, 어안이 벙벙했다.


어머니는 이어

그것밖에 못했으니 집에 들어오지 말고 나가서 반성해라고 모질게 말했다.

눈도 마주 치치 않았다.

가방을 책상에 던져두고 집 앞 계단에 앉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작은 나는 고뇌에 빠졌다.

울지도 않았다.

그저 머리가 복잡했다.


은상은 우리 반에 딱 두 명이고 금상은 한 명인데

그렇다면 나머지 친구들은 집에서 다 쫓겨나는 것인가.

내 친구들은 집에서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건가.

50명에서 2등이면 되게 잘한 거 같은데 그게 아닌가.

내 생각이 잘못된 건가.

금상이면 안 쫓겨날 수 있는 것인가.

은상은 기분이 좋을 일이 아닌 것인가.

내 기분은 어디가 고장난 것인가.

음식을 하느라 현관문을 나서는 어머니는

그렇게 앉아있는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거기 있냐? 그러고 나를 스쳐 가셨다.


그리고 내 자랑스러웠던 은상은 겨우 은상이 되어

식탁 위에 그렇게 한동안 던져져 있었다.


그 상장을 아버지가 어떻게 대해주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줄기차게 받았던 상장들이

그다지 소중하지 않게 되었다.

상장은 당연한 일이 되고

상장을 받지 못했을 때의 후폭풍이 두려워졌다.

상장을 받아도 이런 상황인데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집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더한 상황은 뭘까.


나는 어머니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어머니가 오빠의 상장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사실 나도 꽤나 공부에 재능이 있었지만

오빠는 고등학교 때 전국의 등수를 논하던 비교불가의 공부 영재였다.

나는 학교에서나 알아주는 성적이었고 오빠는 광역시 단위에서 이름 올려지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고 내가 뭔가 해낼 때마다 응?? 내가 이걸 해냈네?? 이상하네?라는 마음이 따라다녔다.

어머니는 망설이지도 않고 오빠와 내 성적을 비교하곤 했다.



이 기억은 그리고 기억 너머로 20년이 넘게 묻혀 있다가

문 선생님의 한마디로 의식에 올라오게 되었다.

첫 번째 치료를 끝내고 집에 와

곰곰히 지난날을 뒤적이다

자취하던 빈방에 홀로 앉아

일주일을 미어지게 울었다.

열살도 안된 꼬마였던 내가 울지 못했던 울음까지 우느라

심장이 헐 것 같았다.

마음에 마취라도 잠시 할수 있다면

마음을 수술해서 도려낼 수 있다면

이러다 아파서 죽을수도 있을것 같았다.

내가 가졌던 어머니에 대한 환상이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다.


훗날 어머니에게 그 일에 대해 물었을 때

기억이 안 난다, 네가 자만할까 봐 그랬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더 문제였던 것은

심지어 내가 금상을 받았대도

나는 어머니에게 안길수 없었다는 사실에 있었다는 것을

중년이 되어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카우치 치료를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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