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거짓말
눈이 왔다
아이들은 세상이 하얘지자 밑도 끝도 없이 들떴다
눈을 뭉쳐 던져주기만 해도 까르르 무해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신나는 음악의 음표가 통통 거리며 눈과 함께 춤을 추는 듯했다.
내리는 눈발사이로
어머니가
"일어나라 밖에 눈 온다" 했던
초등시절 어느 날이 스쳤다
이불을 제치고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갔는데
세상은 어제처럼 맨땅이었다
거짓이었다
어머니는 목적 달성을 위해
거짓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해댔다
나는 잠깐쯤 실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을 배웠다
시무룩 해하는 나를 보고도 어머니는 당당했다.
빨리빨리 일어나면 이런 말 안 할 거 아니냐.
어머니의 거짓말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없을 때도 빈번했다.
아주 사사로운 책임 소재에 발을 뺄 때에도
흔히 거짓말을 일삼았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동생 집이 궁금하여 방문한다 치면
나와 통화할 때 동생이 오라고 오라고 하도 매달려서
방문했다는 식이다.
결론은 같았지만 그 의도에서
어떤 때에는 동생과 나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키키에 충분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약간의 오해를 갖고
굳이 해명할 이유도 물어봐야지 마음도 먹지 못한 채로 있다가
어느 날 다른 이야기를 하다 얼핏
서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자주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거짓말에 자녀를 동참시켰다.
어머니는 술을 좋아했다.
술을 좋아하고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와 함께 하는 술자리는 더욱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머니는 자주 술에 거나하게 취해 귀가하였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못마땅해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야근으로 늦는 아버지에게 밖에 빵 사러 갔다고 전해라고
시켰다.
나는 그런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기가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다.
반복되는 거짓말이 싫어져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어차피 내가 아니라도 들통날 거짓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두 분은 크게 싸웠다.
다음날 어머니는 내게
차가운 눈길로
설거지하는 그릇 소리를 달그락달그락 일부러 시끄럽게 내며
그것 한마디 도와주지 않은 나쁜 딸년이라고
욕했다.
아버지는 아이 키우느라 고생한 마누라가
잠깐씩 바람 쏘이러 나가는 일을 방해하는
답답하고 꽉 막힌 사람이라며
허공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내가 너무 원칙주의자고 융통성이 없었던 건가
그래서 괜히 집에 분란을 일으킨 건 아닌가
죄책감을 느꼈다.
원칙과 융통성 사이에서 어디쯤에 서야 할지
불안해지면서
어디에 서도 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래도록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내 발밑의 칼날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