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생님과의 만남
문선생님을 찾은 것은 전공의 저년차 겨울이었다.
그 해 봄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집에서 외도를 하다 아버지에게 들켰고 그길로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집의 비번을 바꾸고 어머니가 쓰던 아버지 명의의 카드를 정지시켰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행각을 자녀포함 가족들에게 알렸다.
어머니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아버지의 대응은 너무한 처사라고 항변했다.
어머니는 이 모든것이 아버지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일탈이 비단 이번 뿐만 아니라는 것을 피력했다.
할머니는 너네 아버지 혼자 힘들어서 어쩌냐고 우는 소리로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그 세분 아니라도, 이미 숨만 쉬기도 벅찬 전공의 였다.
오전 회진이 끝나면 준비된 컨퍼런스를 마치고 바로 정기 수술에 참여해 어시를 서야 했다. 수술실에서 나오면 숨 돌릴 새도 없이 위에서 내려오는 일을 처리하며 병동환자 콜을 받았다. 그러다보면 신환이 입원했고 모두 보호자 면담을 통해 내일 있을 수술 과정이나 향후 치료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동시에 응급 콜이 있으면 응급환자도 처치해야했다. 그러다보면 오후 회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진 후 필요한 처방을 하면 일과가 겨우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당직이면 밤새 병동과 응급실 환자 처치도 했다. 당직일 때의 환자수나 수술여부와 상관없이 그 다음날 오전 회진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정기적으로 있는 컨퍼런스를 준비해야했고 그러려면 책도 봐야했다. 하루 하루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일주일이 긴 하루 같았다.
멀쩡한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거기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일을 할때 이가 빠지고 기억이 휘발 되는 증상이 예고도 없이 들락 날락 하여 불안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누가 알아챌까 내 행동을 점검하고 자책하느라 날이 설 대로 서있었다.
여기까지도 이미 한계치를 훌쩍 넘겨 있었다.
여기에 집에서 오는 세 어른의 전화를 얹으니
나는 칼끝에 서있다 못해 발가락으로 칼끝은 꽉 부여잡느라 뼈가 갈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자 죽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죽지 않을 이유를 찾을수가 없었다.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고통 같았다.
이미 의과대학 공부도 죽을 기운이 없어 그저 견디면서 지나왔다. 일을 하게 되면 좀 나으려나 했는데 그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다른 나라에 도피도 해봤지만 내 마음을 피할곳은 지구 상에 없었다. 이제와서 다른 일을 할 기운도 없었으며 사람이 죽느냐 마느냐에 서서 지식을 머리속에 넣고 손의 기술을 습득해야 했다. 어차피 더 견뎌봤자 뻔한 결말일것이었다. 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는것이 지옥이었다.
그래, 일단 다 그만두고도 똑같으면 죽자 싶었다.
생을 놓을 사람이 직장을 그만 두는 일은 쉬웠다.
부모조모 모두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나는 이제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서운해하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죄책감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어차피 죽으면 끊어질 인연이었다.
어른들 문제는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
윗년차 선생님께 힘들어서 그만 두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끝내기 전까지 주어진 일은 성실하게 마무리 지어야 마음이 편할것 같았다. 그들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병원 사람들이 내 부재를 준비 할수 있게 해야했다.
윗년차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웃는 낯으로 열심히 일하는 전공의였기 때문이었다.
윗년차 선생님은 스텝 선생님에게 내 상태를 공유하고 좀더 배려해주자고 말씀을 드렸다고 하셨다.
그리고 일을 좀 줄여주는쪽으로 편의를 봐 주셨다.
그렇지만 내 문제는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신변을 정리하다 문득
그즈음 어디선가 눈에 스쳤던 정신분석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그걸 하면 내 자신을 더 알게 된다고 본것 같았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죽을때 죽더라도 한번 알아나 보자 싶었다.
매체에 노출이 많이 되었던 선생님의 클리닉은
앞으로 1년동안 예약이 꽉차있었고 대기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절대 안되냐고 재차 묻자
전화를 받은 병원 직원이 정신분석학회에 들어가면 정신분석을 하는 병원리스트가 있으니
거기서 다른 병원을 찾아보라고 안내해주었다.
바로 온라인으로 정신분석학회를 찾았다. 그 직원 말대로 병원 목록이 기재가 되어있었다.
현재 일하는 병원과 접근성이 좋은곳, 퇴근 시간 후 가도 기다려 줄수 있는곳, 수일 내에 바로 상담이 가능한곳. 이 세가지 조건을 다 만족하는 병원을 추려보았다. 몇군데 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분석치료를 지속 하게된다면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병원을 그만둘수 없었다. 비용을 감당해야했고 내가 할줄 아는 일은 의사일 밖에 없었다.
여러군데 전화를 돌린 끝에 다행히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그곳이 바로 문선생님 병원이었다.
문선생님 병원은 낡은 이층 건물의 이층에 위치해 있었다.
오래된 나무 문에 세월의 흔적이 뭍어있었다. 문을 열려고 하자 삐그덕 거렸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인사를 받는 선생님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깊이 나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어른, 낯설었다. 그러나 그 낯설음 안에서도 희미하게 따스함을 느낄수 있었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문선생님과의 첫 상담을 마치고 나와
다시.삐그덕 거리는 문을 열고
낡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아, 이것이구나 .했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첫번째 기적이었음을
꽤 오랜 시간이 지난후에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