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시작
문 선생님 덕에 물꼬가 트인 내 기억은
일주일 내내 많은 장면을 머릿속에 터뜨렸다.
은상의 기억 같은 아픈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그것은 때로 세뱃돈이기도 했고 머리카락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선생님과 나누고 나면
나는 다음 일주일을 속절없이 앓아야 했다.
치료실을 멍한 기분으로 나와
집에 와서는 며칠을 오열하는 스케줄을
나는 전공의 수련과 함께 견뎌냈다.
울고 있는 순간은
늘 당시의 내가 아니었다.
8살, 10살, 때로는 5살로 돌아가
꺼내보지 못한 상처와 대면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조금 아픈 추억을 떠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상처에는 그 당시의 아픔과 함께,
그 상처를 낸 사람을 바로보지 못하고 믿고 지냈던
이제까지의 시간에 대한 회한까지 농축되어 있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배신감과 억울함, 허탈함, 자괴감은
내가 여태 견뎌냈던 이해할 수 없는 증상과는
또 차원이 달랐다.
앓을 것을 예견하면서도
나는 목숨줄로 여기고 문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래야지 결심했다기보다는 그래야 다음 일주일을 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저
내 감정을 가만히 따라와 주시는 일이었고
비로소 누군가 내 곁에 서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태어나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슬프지만
나를 낳은 부모는 애초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느낄 고독을 처음부터 아시는 거 같았다.
이해받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숨이 그제야 고르게 쉬어지고 있었다.
치료를 마치고 문을 닫고 나와
낡은 계단 앞에 서면
여태껏 버티느라 고장 나버린 녹슨 심장에서 오래된 녹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치료를 받고 나서
길을 가다 갑자기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몇 살인지 안개가 걷히듯이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늘 지나다니던 길이고 늘 보던 건물이었는데 ,
생경했다.
20대의 시간을 훌쩍 넘어 갑자기 서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여태 내가 살던 세상은 뿌연 안개 속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시공간을 인식할 힘도 없이
모든 것을 닫고 살았다는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내 발아래 날카로운 칼날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 선생님과 대면치료 두 달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앓을 때는 이런 고통이 세상에 또 있나 이걸 꼭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러고 나면
한 겹 씩 한 겹 씩 기름종이 같은 얇은 막이 걷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이 아주 조금씩 환해지고 있었다.
선생님의 일관되고 농축된 관심이
나를 일으키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고 믿었던 어머니가
썩은 줄이었다는
결코 해결할 수 없을 문제라 여겨졌던
나의 오래된 문제가
나를 낳아주신, 내 유일한 편이라 여겼던
지척에 있는 어머니에게서 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기가 막혔다.
날 때부터 믿었던 한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니.
그 믿음으로 여태 살아왔던 사실을 보는 것은
지금껏 내가 산 세상을 깨부수는,
지구의 자전축을 바꾸는 듯한,
세상을 보는 축을 아예 뒤흔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혹시 내가 죽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닌가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희미하게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견디어내자
서서히
녹물대신 마음에 시원하고 맑은 물줄기가 조금씩 흐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