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나는 삼켰고, 아이는 말한다.

머리카락 이야기 2

by 이제 봄

어렸을 적 어머니는 할머니가 기르는 고양이를 종종 발로 찼다.

고양이는 할머니에게는 애교를 부리며 다가왔으나

어머니에게는 앙심을 품고 쓰레기 같은 것들을 집안에 흩뜨려놓기도 했다.

나는 그저 어머니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구나,

고양이도 그런 것쯤은 잘 아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쯤

어머니는 당시 운영했던 농장에서 개를 길렀다.

어머니는 손자를 보기 위해 보름씩 농장을 비울 때에도

개를 이웃에 맡기거나 데리고 나오지 않고

큰 바가지에 밥을 한가득 퍼놓고 왔다고 했다.

개는 목줄에 메어 있는 채였다.

나는 그 개가 물도 밥도 떨어져 기약도 모르고 기다릴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스트레스받았다.


어머니는 살아있는 생명이 느낄 고통이나 감정을 교감하는데

결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가 과하게 교감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것과

정 반대였다.


나를 닮은 아이는 모든 것이 예민했다.

3살이 넘자 이미 나는 아이의 머리를 허락 없이 만질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5살이 되자 아이는 옷의 이음새가 걸리적거린다고 모든 옷을 거부했다.

6살이 되자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머리 모양을 요구했다.

당시 아이는 대게 양갈래의 머리를 하고 싶어 했는데

양쪽의 머리 숱양, 머리가 묶인 위치의 높이와 솟은 각도의 대칭성과

두피에서 머리방울까지 이어지는 머리의 균일함을 따졌다.

그것을 만족하지 못하면

출근 시간이 임박해진 나와 부딪혀

한바탕의 소동을 치러야 했다.


나는 아이의 머리 관리를 도와주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머리는 등 한가운데를 훌쩍 지날 만큼 길어있었다.

몇 달 전부터 자르자고 고지하고 설득했고

겨우 동의를 받아

2주 전부터 길이를 합의를 봤고

가고 싶은 미용실을 같이 골랐고

그리고 드디어 잘랐다.


충분히 아이 의견을 존중해서 했던 머리 손질이었는데

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잘린 모양인지

아니면 단지 머리를 자른 모습이 어색해서인지

제 방 벽에 낙서를 하고 나를 불렀다.

'엄마 똥 엄마 나빴어. 엄마도 머리를 나처럼 잘라야 해. 흥 칫 뿡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날 저녁 시간 내내 짧아진 머리에 대한 속상함에 대해서 토로했다.


벽에 쓰인 삐뚤삐뚤한 낙서를 보며

나는 유치원 앞에서 목놓아 울던 나를 보았다.

지금 내 아이가 하는 말들은

내가 원장님 의 토닥임을 느끼며 쏟아낸 눈물대신

내가 어머니에게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저렇게 많은 말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속으로 다 삼켰겠구나. 싶었다.


나는 머리손질에 대한 돌봄을 받는 대신

강제로 머리를 잘렸다.

더구나 이렇다 할 설명도 없었다.


저런 장면이 그때뿐이었을까.

어린아이 속에서 올라오는

수만 가지 욕구들을

나는 죄다 말로 해본 적도 없었던 것이었다.

말해서 뭐 해.라는 내 오래된 신념은

이미 일곱 살도 전에 완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보다 몇 년은 더 큰 내 아이는 여전히

내가 묶어준 머리의 뒤통수가 완벽히 반반하지 않다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화를 내곤 한다.

아무도 모르니 괜찮아라고 해줘도

다 몰라도 내가 알아 하고 응수하고

이어

내 머리는 내 거야 엄마 맘대로 하지 마, 하고

그럼 네가 직접 하는 게 좋겠어, 엄마는 이제 힘들다. 하면

아직 나는 배울 수 있지가 않아 손이 작아.

어린이가 못하면 어른이 도와줘야지.

내 말이 맞잖아?

여기까지 한다.


내 머리카락은 내 것이다.

어린이가 어려우면 어른이 돕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 내 느낌이 중요하다.

내 말이 대체로 맞다.


내가 중년이 돼서야

비용을 치르고 시간을 들여 만난 선생님을 통해

겨우 하나씩 배워가는 말들을

내 아이는 숨 쉬듯 스스럼없이 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내가 지금 어떻게 해도

내 아이는 나처럼은 살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것은 아이를 양육하는 내내 나를 옭아 맺던 불안에서의 해방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받아보지 못한 돌봄을

내 아이에게는 어떻게든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어딘가 비어 있을 것 같아 늘 불안했다.


공감이 없어 가끔은 잔인해 보이기도 하는 어머니와

공감이 넘쳐 가끔은 아프기까지 하는 나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 커다란 간극을 선생님 도움 없었다면 끝내 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러한 사소하지만

엄청난 차이는

내 아이와 나의 세상을 갈라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스러워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을

원동력이기도 했다.


내가 살았던 세상은

내 아이가 꿈이서라도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아마 사랑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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