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털을 밀린 강아지 같은 발걸음으로

머리카락 이야기 1

by 이제 봄

내 머리카락은 원래부터 숱이 많았다.
그저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친구더러
"나 저 아이처럼 많아? 저 아이도 굉장히 머리숱이 많은 것 같아."
라고 물어보면
친구는 헛웃음을 지으며 어이없다는 듯
"야, 네가 훨씬 많아. "그랬다.


양갈래를 해서 한쪽만 잡아도 손 한가득이었고
반묶음을 하듯이 위쪽만 잡아도 남들 포니테일보다 많았다.


어머니는
청소기로 바닥을 밀면서
순 딸 머리카락이라며

질타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을 자주 하셨다.
그리고 애써 먹인 영양물질이 키로 안 가고 죄다 머리카락으로 간다고
농담인 듯 푸념인듯한 애매한 말도 종종 하셨다.

이 머리카락은 어머니와 할머니가 번갈아 가면서 관리를 해주셨는데
어쩐지 어머니가 관리하면 어머니가 머리를 자르자고 했고

할머니가 관리해 주시면 할머니가 머리를 자르자고 했다.

별다른 설명이 없었으므로

내 머리카락이 좀 귀찮은 물건 같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대게는 머리가 묶일 정 도로 잘랐으므로

그것도 나쁘지 않았으므로 순순히 미용실을 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단발로 잘라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싫었다.
정말로 싫었다.
머리숱이 많아 너무 길면 불편한 건 있었지만

그렇다고 단발머리는 생각만 해도 어색했다.
남자애 같이 보일 것 같기도 했다.
싫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억지로 어머니에게 손에 잡혀 미용실에 가야 했다.

그리고

끝내

머리를 잘렸다.

미용실에서 나오자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아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울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가 거울을 보며

너무 이상하고 싫다고 오만상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머리카락은 금방 자란다고 그깟 머리카락 길어 뭐 하냐고 하고 그뿐이었다.


다음날 유치원 등원 하러 집을 나서자

길가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온몸의 털을 밀린 강아지 같은 발걸음으로
어색해하며 유치원으로 향했다.
유치원 대문에 원장 선생님이 나와계셨다.

평소에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시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참았는지도 몰랐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 얼굴은 아마 진짜로

다정했던 선생님도 못 알아 볼만큼

아무도 못 알아 볼만큼 못생겨진 것이 틀림없었다.

선생님은 아니라고 너무 예쁜데 달라져서 못 알아본 것이라고

토닥이며 달래주셨지만

나는 오랫동안 유치원 대문 앞에서 소리 높여 울었다.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게 분명했다.

내 못생김을 확인해 놓고는

내가 울자 무마하기 위해 하는 빈말 같은 것은

나도 구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머리를 하고 유치원 생일잔치 사진을 찍었다.
고깔모자 아래 양쪽으로 삼각김밥처럼 튀어나온 머리가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잘린 머리였고 별수 없었다.
나는 일부러 입이 퉁퉁 불어 사진을 찍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었다.

문 선생님은 내 머리카락이 가족을 위해 바쳐졌다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는 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았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자주 멈칫해야 했다.

내 아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것들을

나는 그것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다는 사실 앞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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