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일곱 살, 나는 공개적으로 웃음거리가 되었다.

벌은 끝났지만 수치심은 남았다.

by 이제 봄

일곱 살 때 일이다.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이 중요한 공지를 하겠다고 했다.

긴 설명 끝에

지정한 날까지 무엇인가를 꼭 제출해야 된다고 했다.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것을 잊으면 모든 친구들이 있는 앞에서

바지와 팬티를 내려 엉덩이를 보여줘야 한다고

정말이지 꼭 가져오라고 했다.


긴장이 조금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안 잊으면. 되지 뭐 , 여태 숙제나 과제 같은 거 한 번도 잊은 적 없잖아. 괜찮아 '라고 생각했다.


집에 가 어머니에게 말하니

"꼭 가져가면 되겠네, 뭘. 잊지 마라 "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잊었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아침에 등원하자 선생님은 당연히 가져왔을 그것을 제출하라 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날따라 모두 실수 없이 다 가져온 모양이었다.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가져오지 않는 친구를 호명해서 앞으로 불러 세웠다.


나는 너무도 긴장했다.

설마 그렇게 까지 할까 했다.

'여태 다른 벌들은 공지하고도 용서해 주신 적이 많잖아

에이, 용서해 주시겠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난 여태 아무런 말썽도 일으키지 않았잖아.

난 처음 걸리는 벌칙이잖아'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주춤주춤 앞으로 나갔다.

나를 포함하여 세명의 아이들이 친구들 앞에 섰다.

어째선지 기억은 안 나지만 두 명은 다른 반으로 불려 갔다.

그러나

내 엉덩이는 그렇게 노출되었다.


그 순간은 잠깐이었지만

반 아이들은 내 엉덩이를 보고 한꺼번에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극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다른 반으로 불려 간 아이 둘은 그쪽 선생님의 판단으로

그런 무자비한 벌은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옆반으로 가셨던 선생님이 다시 오셔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 어머 진짜 했어요?"라고 물었다.

유치원 전체에서 내 엉덩이만 벌을 받은 것이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 머릿속에 엉덩이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가서도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러게 잘 챙기라고 했잖아라고 대꾸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한번 더 혼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울지도 않고 이 창피함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에 몰두했다.

엉덩이는 누구에게나 다 있어. 손도 다 내놓고 살고 엉덩이도 다 있어. 다 비슷하게 생겼지. 이미 지나간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리 읊조려도 아무것도 아니어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치원 졸업 앨범을 받아 들었을 때

나에게 벌을 줬던 선생님이 너무 미워서

선생님 얼굴에 연필로 가위표를 쳤다.

하지만 곧 어머니에게 들키면 어쩌나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서 침을 묻혀 문질렀다. 앨범의 종이가 지우개같이 벗겨지며 연필 자국이 옅어졌다.

가위표가 희미해지자 부아가 치밀었다.

그렇게 가위표와 문지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구멍이 뚫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구멍은 점점 넓어져서 머리까지 먹어버렸다.

그러다 퍼뜩 이러다 진짜로 어머니가 알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한 일을 어머니와 도저히 공유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더 나쁜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왠지 그러면 더 큰 화를 당할 거 같았다.

나는 구멍을 흰 종이로 메우고 그 위를 오빠의 화이트로 덧칠했다. 그래도 불안했다.

어머니만 아니라면 그 사진은 난도질해서 불에 태우고 싶었다.


나는 이 일을 입밖에 내어 본 적 없었다.

세션 진행하며 선생님께 이야기했더니. 처절하네요.라고 대답해 주셨다.

당한 일보다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 끔찍하다고 하셨다.

말할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끔찍한 것인가??

내가 말할 사람은 늘 없었다.

나는 중년이 되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서야 그 사건이 처절했다고 명명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 통증의 씨는 그때부터 뿌려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겪은 일들의 함정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절대 해석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나는 일곱 살에 이미 준비물은 알아서 챙겨야 했고

어머니는 내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어머니는 나를 보호해주지 않은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또한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19. 나는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