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위에 죽어있던 나
나의 자살에 대한 생각은
그 역사가 생각보다 상당히 깊었다.
카우치를 쓰는 치료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내 자살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것은 초등학교 4학년에서 5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무차별한 폭언을 들었거나
아버지의 비아냥거림
아무리 이야기해도 젼혀 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느낌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나는 방으로 가서
빈천장을 한참을 보았다.
그 천장에는 누운 채로 죽어있는
내가 보였다.
이렇게 죽게 된다면
아마 방문을 연 가족들이
소스라 치게 놀라겠지.
놀란 다음에 내게 어떤 짓을 했는지
후회하겠지.
차가워진 내 몸을 가운데 두고
슬퍼하고 후회할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상상은 꽤나 도움이 되었다.
어쩐지 그런 상상을 하면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거봐 있을 때 잘하지 이제 너무 늦었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어.
이 집의 딸은 이제 죽었어.
알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그 기분에 중독되었던 것인지
그 후로 종종 속상한 마음이 생기면
방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누워있으면 하루가 짧았다.
하지만 그 상상에는 최대의 맹점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는 후회를
살아있는 내가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후회하는 것을 생각하면 속이 다 후련했지만
나는 이미 그 복수를 하기 위해 죽었어야 했다.
내 계획은 그것만 빼면 너무나 완벽했는데
거봐 내 말 맞지? 그러게 잘하라고 했잖아.라고 응수하는
통쾌한 복수극은
내가 생명이 없음으로써 완성되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이들의 사과를 받을 방법은 과연 이것밖에 없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상상이 통쾌할지 몰라도
나는 그때
그저 면도칼에 베인 손가락의 피만 봐도
자지러지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상상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영혼이 죽은 뒤에도
이 장면을 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사후세계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영혼이 있어 서로 소통한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나는 이미 사람이 아닌 것을.
내 가족들은 처음에는 슬퍼할지 몰라도
어쩌면 만져지지도 않은 나를
이내 잊을 터였다.
선생님은 이것을
소아 우울로 보인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어른이란 작자들이
뭐 하러 아이를 낳아서
이렇게 고생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늘 인생은 전쟁이라면서
무슨 애를 셋이나 낳아서 이 고생을 하냐고 매일 푸념인데
고통뿐인 인생을 뭐 하러 살게 아이를 낳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고통이라면 왜 이 세상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종종, 나를 왜 낳았어?라고 어머니에게 여쭈어보면
애는 낳아야지,라는 이해 할 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어차피 남자는 여자의 편의를 봐주기는커녕
여자에게 빌붙어서 괴롭히는 존재라는 것을
아버지에 대한 푸념이나 한탄, 원망으로
어머니가 매일 내게 보여주었다.
그 생각은 의심할 여지없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나는 절대 아이 같은 건 낳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