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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Nov 15. 2024

마음에 지는 날.

흑과 백

Unsplash의 Priscilla Du Preez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마음이 젖은 듯 축축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내면이 흐릿해져서, 나란 사람이 진정 누구인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나다운 게 뭘까? 그 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머릿속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고, 원인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혹시 어릴 적 결핍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트라우마가 다시 떠오른 걸까?


아니면 최근에 겪은 불편한 상황들이 쌓여서, 이렇게 무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걸까? 피곤함이 쌓이고 육아가 버거웠을까?  내 마음은 끝없이 떠도는 질문들 속에서 맴돌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은 그 어떤 답도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스스로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꾸준히 마음공부와 치유의 책을 읽고, 명상과 여러 가지 도구를 통해 나를 돌보려 애썼지만, 여전히 무거운 고통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될 때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듯한 기분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안다. 세상엔 저마다의 자기 몫의 아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짐했던 [내 마음 하나쯤은 돌보고 살아가자]는 말은 오늘은 실천하기 참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그렇게 오늘은 시간을 믿고 마음을 다독이고 돌보기보다 그저 흐르는 대로 두기로 했다.


고통을 이겨내려 애쓰기보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힘든 마음에 이기려 하지 않고, 그 마음에 진 하루를 보내보기로 말이다.





Unsplash의 Priscilla Du Preez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오늘은 그래도 어제 보다 나은 마음이었다. 힘들 땐 진짜 시간이 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올라온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어제를 돌아보니, 내가 그토록 힘들고 고립된 감정 속에만 갇혀 있던 하루 동안 내 주변은 사실,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다.


어제 오랜만에 연락을 준 친구가 있었다. 그동안 육아와 공부, 프리랜서까지 한다며 나를 향해 아낌없이 보내준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둥둥 울리게 해 주었다.


또, 나와 함께 비슷한 터울의 아이 둘을 키우며,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공감해 준 육아동지, 영란이가 있었다. 그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통화하는 동안 안심이 되는 마음이 올라왔었다.


그리고, 내 트라우마에 대해 진지하게 조언해 주었던 타라 코치님의 따뜻한 진심은 또 어땠던가! 그동안 회피했던 조각조각의 퍼즐들이 맞춰지며 가족체적 역동을 이해하고, 나로 살아가는데 무겁고 힘든 마음이 가뿐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늘 열정적으로 임하는 코치님이, 같은 코치로서 정말 멋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 하원길에 문 앞에서 만난 앞집 할머니는, 김장한 날이라고 김장김치 한 포기를 내 손에 쥐여주며 맛은 어떨지 모르겠다며 미소 지으며, 정겨운 인사로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온 아이가 달려와서 나를 보고 싶었다며  말해주는 그 작은 고백은 또 얼마나 귀여웠는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며칠간 아이들과 함께 잠들어 어제도 퇴근 후에야 내 얼굴을 보고 웃는 남편은, 나를 반가워하며 안아줬다. 남편은 그렇게 나름의 방식대로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이 모든 순간들이 모여 마음에 진 어제의 나를 치유해주고 있었다. 고통의 중심을 조금 벗어나 돌아보니,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그 마음들이 보였다. 나는 그렇게 내 주변 좋은 이웃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이번에도 진하게 위로받았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마음속 고통의 크기보다 주변에서 받은 위로와 사랑의 크기가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언젠가 누군가가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을 때, 그 사람에게 작은 위로의 빛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겹고 다정한 말 한마디, 작은 손길 하나로 그 사람의 어두운 마음을 비추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내 마음이 바다같이 넓고, 깊어지길 소망해 본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마음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마음이 흐르는대로 져 보는 것도 나를 위한 방법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하루쯤 지나고 나면, 아마도 분명 좋은 사람들이 당신을 따뜻하게 비춰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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