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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Jul 13. 2022

남편학개론_3

 3. 캠핑을 하겠다고?

별일 없이 한가롭게 지냈던 어느 주말, 남편의 표정이 꽁해 있는 게 신경 쓰일 때쯤 남편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나가고 싶다."


"어디를?"


주말에도 나가자고 하면 미세먼지 얘기로, 날씨가 안 좋다는 이유로,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집에서만 지내는 나의 집콕 육아에 대해 불만이라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주말이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마트에 다녀오는 것 말고도 바깥 생활을 하며 움직이며 생기 있고 활기차게 살고 싶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다 나갈 수 있는 날은 미세먼지가 좋고, 아이가 아프지 않아야 하고, 나의 컨디션이 좋아야 하며, 비가 많이 와도, 눈이 많이 와서도 안된다며 결국 우리 가족이 외출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캠핑을 하자고 했다.


불평불만 끝이 캠핑으로 가는 맥락이, 캠핑을 하고 싶어서 꺼낸 밑밥인지, 나가고 싶은데 그 방법을 캠핑으로 하자는 건지, 남편의 말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채 내 머릿속은 남편의 말을 쫓아가다가 멈췄다.


오, 마이. 갓.

캠핑... 이. 라. 고?


나는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도 휴양지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해서 가는 곳이 아니면 어딘가를 활기차게 돌아다니는데 에너지가 소진되는 타입이다. 여행은 자고로 힐링을 위한 것인데 나는 여행에서의 편안함이 주는 몸과 마음의 휴식이 힐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공용 샤워장도 공용 화장실도 불편하다. 아이들이 새벽에라도 깨면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을 가야 하고 밥도 해 먹어야 하고, 내 할 일이 더 많아지고, 마음이 쉴 새 없이 분주함이 예상되는 느낌이 싫었다. 먹고 씻고 자는 의 불편함 뿐만 아니라 텐트를 포함한 캠핑용품에 소비될 예산이 나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들을 접고 남편에게 물었다.


"갑자기 캠핑은 왜?"


언제부터 캠핑을 가고 싶었냐고 물었다. 나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내가 듣질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캠핑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좀 컸으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됐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남편이 캠핑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무리라고 단칼에 자르기도 했지만 우리의 경제적 사정에서 캠핑용품에 돈을 들여서 가계에 추가 부담이 되는 것에 대해 나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계를 책임지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외벌이를 하고 있는 남편이며, 그가 불만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나에게 꼭 좀 생각해봐 줬으면 좋겠다는 적극적 표현이다. 기존의 숱한 경험들과 캠핑에 대해 암암리에 거절을 한 것을 알고 있고 웬만해서 잘 나가질 않을 것 같은 나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그래도 캠핑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는 건, 정말, 매우, 대단히 하고 싶다는 말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그래~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자!


생각보다 가볍게 나의 허락의 말을 들은 남편은 진짜냐며 작은 눈을 더 크게 만들며 믿기지 않는 듯이 되묻는다. 의외라는 눈빛과 동시에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준비 물품을 생각해 보자고 한 다음날 바로, 남편은 캠핑 물건을 파는 중고 샵에 갈 일정을 잡았다. 나름 나보다 평소에 게으르다고 생각한 남편의 성격이 여기엔 대단히도 빠르게 진행이 되는 게 신기한 마음을 가지고 중고샵으로 향했다.


창고형 중고샵에는 정말 아기자기하고 다양하고 감성스러운 것들도 많았지만, 어디다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겠는, 내 기준에 신기한 물건들도 많이 있었다.


나는 딱 봐도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아이들이 같이 구경하다가 이게 뭐냐고 질문 한 개를 하면 신이 나서 백과사전처럼 남편의 입에서 대답들이 술술 나온다.


캠핑용품과 장비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만큼 남편의 마음을 몰라준 나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가고 내 마음이 조금은 더 미안해졌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직접 다뤄보는 이 사람 지금. 눈빛이 반짝이고 있다.


한 없이 즐거워하는 표정이 같이 온 아들, 딸과 매우 닮았다. 남편의 이런 표정을 본지가 얼마만이더라. 한두 시간 구경하고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남편은 한시도 입이 쉬질 않았다.


남편은 그날 자기 전까지 엄청난 수다쟁이가 되었다.


주로 내가 이야기하고 남편이 들어주는 우리 부부의 대화 패턴은 아마도 그렇게 신나는 일이 없어서 남편이 딱히 할 말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신난 수다쟁이가 된 남편을 보니, 이 사람이 더 신나고 생기 있고 활기차게 살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도 느껴졌다.


캠핑의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한 남편과

예상되는 불편함과 불만들을 안고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 내가, 그렇게 첫 캠핑을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한번 다녀올 때마다 캠핑 장비들이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점점 지금의 승용차보다 큰 차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도...


그리고 한 가지, 남편의 새로운 점도 발견했다.


 평소에 느리다고 생각한 남편이 좋아하는 것에서는 엄청나게 빠른 사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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