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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Jul 08. 2022

우리들의 약속.

마음의 안정제

내가 말한다

"오늘도!"


아이들이 말한다.

"행복하게 지내기로 파이팅!"


(하이파이브)


유치원 등원 길, 나와 아이들의 헤어짐 인사는 4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시작은 첫 아이인 딸의 3살 무렵, 어린이집 적응을 할 때였다.

초보 엄마인 나는 그때까지 육아를 책으로 배울 때라, 식판식 영양 식단이며 영상 노출이 거의 없이 아이를 키웠었고, 젤리나 사탕은 입에 댈 수 없는 절대 금지 식품이었을 정도로 아이에게 나를 갈아 넣고 좋은 것만 육아에 올인했었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의 첫 기관 생활에서 가장 걱정되는 건 아이의 분리불안이라고 책과 숱한 포털 검색으로 예상은 했지만 분리불안은 아이에게만 오는 건 아니었다. 아이가 겪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린이집 적응기간은 아이보다 엄마인 내가 아이와 떨어지는 시간과 아이의 정서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심리적 적응기간이 먼저 필요했던 것 같다. 책과 내가 본 수많은 블로그에서는 왜 이런 말은 없었을까.


눈물로 그렁그렁한 눈으로 어린이집 문 앞에서 나를 쳐다보는 아이, 온 힘을 다해 어린이집 문밖으로 벗어나려고 하는 아이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이 작은 아이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전업주부인 내가 나 편하려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내는 건 아닐까?

아이가 정말 기관 생활이 필요한 게 맞을까?


온갖 물음표를 단 말들이 나의 죄책감의 마음을 쿡쿡 찔러댄다.


 아이와 나와의 둘만의 시간보다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고, 더 즐겁게 놀 수 있는 환경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렸다가 심사숙고를 하고 정한 기관 생활 이건만, 아이의 정서적 거부 반응에 내가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고 싶어서 자꾸 코 앞에 몇 걸음 안 되는 아파트 관리동 어린이집 근처를 괜히 뱅뱅 돌며 이미 지나버린 등원 시간을 뒤로하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대한 거부감을 말하면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마음을 아이의 눈높이로 이야기해주며 엄마 대신 선생님이 함께 하는 거라는 것을 여러 번 말해주었다.


그렇게 등원 시간이 한참 지나 아이를 달래 어린이집 문안으로 들여보내고, 주춤주춤 문 앞에서 발걸음 떼는걸 힘들어할 때면, (아마 모든 어린이집 원장님들이 그렇겠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니, 아이 눈물 보는 게 힘드시죠~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가장 잘 느끼고 알 거예요. 주춤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면 새로운 적응을 더 피하려고 하고 익숙한 것만 하려고 할 거예요. 엄마의 마음과 발걸음이 아이에게 가볍고 즐거운 일처럼 보여야 아이가 커가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즐겁다는 느낌을 갖는 아이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머님, 내일부터는 제시간에 등원하고 약속한 시간에 하원하는 것을 꼭 지켜주세요. 어린이집 안에서 하는 일은 저희가 잘할게요.


머리로는 끄덕인다.


하지만 역시 이론과 실전은 천지차이다.


그렇게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고, 아이가 혹시 마음이 힘들진 않을지,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시트지가 붙여진 어린이집 창문 틈새로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혀 내 아이의 얼굴이 보이는지 찾아보고 살펴본다. 어떤 날은 그 많은 아이들의 목소리에서 우리 아이의 울음소리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나의 청력에 놀랍기도 하다. 아이의 울음이 멈추고 우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을 때까지 돌덩이처럼 굳어 밖에서 있는 시간이 한참이다. 아이의 불안과 모든 감정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 초보 엄마는, 아이가 오기 전까지 마음이 불편한 채로 시간을 고통으로 채우고 있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아이가 거부감이 아닌 어린이집의 생활을 즐기도록 하고 싶었고,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아니, 사실 아이의 안심보다 불안한 나의 마음의 안심과 안녕이 더 중요했고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마음이 훨씬 더 많았음을 고백한다.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말했다.


" 다온아, 어린이집 가면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게 힘들고, 엄마가 보고 싶지? "


"응.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어~."


"엄마도 그래~ 그래서 엄마가 마법의 주문을 하나 만들었거든. 그 주문을 외우면 엄마가 보고 싶어도 잘 놀 수 있고, 엄마도 다온이 보고 싶어도 집에서 다온이 줄 간식도 만들고 반찬도 만들고 잘 지낼 수 있대~. 우리 그거 내일부터 해볼까?"


"그래, 좋아!"  (웃음)


그렇게 시작된 마법의 주문.


오늘도, 행복하게 지내기로 파이팅!(하이파이브)


그 하나의 행위가 반복되면서 아이는 어린이집 적응기를 잘 마쳤고, 나의 마음의 불안은 안심으로 조금씩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둘째인 아들의 기관 생활도 자연스럽게 같은 방법으로 시작했고, 적응을 잘 마칠 수 있었다.


특별한 것도 아닌 그 사소한 행위에서 그날그날 다른 의미의 나와 아이들의 마음을 만난다. 아침에 신발과 옷이 맘에 안 든다고 실랑이하고 짜증을 잔뜩 냈지만 등원 차에 올라타기 전 먼저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손을 올리는 딸아이를 보면서, 엄마와의 화해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과 만난다. 가기 싫고 쉬고 싶은 날이라고 투정하는 아들에게, 엄마의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하이파이브로 전달한다.


분명한 건 서로 헤어질 땐, 아무리 짜증 나고, 모나 있는 불편한 마음이 있어도 그것만은 꼭 지키는 우리만의 약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육아 7년 차. 엄마 나이 7세.

사실,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약속이 되어 버린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수시로 폭발하고 미안한 마음에 사로 잡히는 아직도 마음의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엄마는 매일 사과의 의미로, 그런 엄마라도 좋아해 주는 아이들에게 때로는 고마움의 의미로, 다양한 마음을 표현하며  안심을 주는 안정제 같은 약속이 되었다.


나를 위한 일이었던 이 약속이 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욕심을 조금 내 보자면, 아이들의 입으로 매일의 행복을 다짐하는 말이 습관이 되고 태도가 된다면,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조금 더 행복하게 오늘을 보낼 수 있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진 않을까. 적어도 나보다는 더 성숙하고 마음 그릇이 넓은 어른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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