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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May 29. 2022

남편학개론_2

2. 남자의 침묵

남편은 자주 침묵한다.


결혼 한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그렇듯 우리 부부에게도 [처가]와 [시가]라는 새로운 가족관계가 생겼다. 그러면서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 나가는 게 결혼 생활의 또 다른 일상인 것 같다.


남편의 잦은 침묵으로 서로의 대화 시간이 적어지는 것에 불만이 생길 때쯤, 시가 어른들과 오해가 생겨 그게 부부싸움으로 이어진 적이 있었다. 어른과의 마찰로 가뜩이나 마음이 불편한데 남편과의 팽팽한 긴장감을 갖는 부부싸움까지 겹치는 건 나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 갈등 상황에서 나는 말로 풀어야 한다는 쪽이지만 남편은 침묵한다. 가족들이 나를 오해하고 있는데 침묵을 선택한 남편이 내 보기엔 비겁한 배신자 같았다. 그 침묵은 나만 두고 도망가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 이런 게 진정 듣기만 했던 [남의 편]이라는 남편의 현 위치인가.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남편의 [침묵]은 어쩌면 자신의 상황에서 조금 물러나 보고 싶고 간이 필요로 하는 음의 [방편]이었생각을 지금은 한다. 하지만 그땐  마음에 힘을 실어 주거나, 남편의 가족들과의 갈등에서 나의 보호막이 되어 주지 못하는 모습이 나는 속상하고 화가 났다. 어른들과 오해가 풀려 일이 해결이 된 이후에도 나는 남편에게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아니, 오히려 화의 크기가 더 커졌다고 하는 게 맞겠다.


비단 우리 남편만의 특성은 아닌 것 같다. 가까운 동창이나 선, 후배 남자들도 갈등 상황에서 자기 마음을 말로 전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말해서 좋을게 하나 없다고 싸움만 더 커진다고, 남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남편의 입장에 서서 대변해주었다. 그렇게 사는 게 남자들이 세상 사는 방법이라고, 사소한 감정을 얘기해서 긁어 부스럼 만든다고 내가 예민하다고 지적했다.

주변의 남자들이(그리고 남편들이) 적절하게 갈등을 중단하고 그 상황을 끝내는 방법 중 하나로 [침묵]의 택하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약이라고 그게 부부싸움의 진리인 냥 말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현타가 오면서 [이러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라는 결혼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다.


사람의 입은 말하라고 있고 귀는 들으라고 있는 거 아닌가. 가지고 있는 신체 기관들을 왜 사용하지 않고 부부 관계에서 그런 불편한 감정을 시간에 맡겨 묵히고 숙성시키면서 살아야 하지? 감정과 마음은 묵은 김치도, 오래될수록 맛 좋은 된장 아닌데 말이다.


관계를 깊게 맺고 싶지 않은 관계에서 침묵은 오히려 신을 지키는 건강한 표현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이나 부부 관계. 그러니까, 내가 애정을 갖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침묵]을 하는 건 그 상황에서 발을 빼고 뒷짐 지고 지켜보는 것 같은 치사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부부싸움의 여파로 분위기가 싸늘한  안에서 며칠을 보내보면 남편과 나는 둘 다 병이 난다. 나는 남편의 [침묵의 의미]를 이해해보려고 안간힘을 써서 두통과 소화 장애가 생기고, 남편은 나와 그런 긴장상태의 분위기를 며칠 동안 마음에 품은 스트레스로 몸살이 난다.

그렇게 아프고 나서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은 대부분 나였다. 내가 더 성숙한 어른이라서 그런 건 당연히 아니다. 그 시간을 남편에 비해 더 못 버티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내를 버리고 마음을 파는 중장비 기사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의 침묵이라는 마음 파기 시작한다.

"당신이 그때 그 상황에서, 침묵하는 게 어떤 마음이었던 거야?"

며칠이 지난 뒤라 나는 담담하게 물어보는 게 가능했다. 그는 조금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생각을 힘 있게 이야기한다.
그때가 중요하다. 남편의 말을 끊고 따지고 싶은 마음 소리가 슬금슬금 목구멍까지 타고 올라와 입안에서 맴돈다. 그 마음의 소리를 잠시 멈춰야 한다. 입 밖으로 내지 말고 버텨야 한다. 나의 비난 섞인 말 한마디는 그의 입을 다시 닫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용을 쓰며 말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달랜다.


그 시간만 버티고 대화가 이어지면 입에서 맴돌던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남편의 침묵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첫 번째는 그 상황을 모면하고 회피하기 위한 침묵은 아니었다는 남편의 의도, 두 번째는 크게 화내서 관계가 더 나빠질까 두려웠다는 남편의 진심이었다.

 
[침묵]의 의미가 발견되어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나는 중장비 기사에서 아내로 다시 내 자리를 찾아간다.

남편의 침묵은 그것대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내가 가족과 남편이 소중했기 때문에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걸 선택한 것처럼, 남편은 소중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침묵]을 선택했다. 같은 마음이지 방법이 달랐던 것뿐이다.


그런데, 언니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남편의 동생. 그러니까 나의 아가씨는 시가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인데 이것만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되묻는다. 오빠와의 부부싸움의 후기를 나누다 보면, 아가씨는 나에게는 맘씨 좋은 [친동생]처럼 나의 마음을 걱정해주고, 남편에게는 [찐 동생]의 입장에서 오빠에게 나하나 짚어가면 따박따박 준다.


오빠! 너 아직도 20대인 줄 아니? 두 아이의 아빠고 가장이야~정신 차려!

이래서 남편의 역할이 중요한 거야. 그걸 잊고 사는 게 같은데 지금? 언니니까 받아주는 거지 내 남편 같으면 집에도 못 들어와. 요새 세상에 그렇게 하면 안 되지~등등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는 아내 입장을 대변해 주는 그녀의 잔소리 폭격에 내 마음이 슬며시 웃는다. 내가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마치 구마 먹다 목이 딱 막혔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친구가 주는 사이다를 원샷해서 마시는 기분. 갈증이 싹 풀리고 그야말로 속이 뻥 뚫리는 상쾌함이 나의 식도와 위장에 스며드는 기분.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란 게 이런 건가. 이보다 더 든든한 지원군이 없다.


그렇다. 내 안의 꾹꾹 참던 입안의 맴돌던 말들을 누가 대신 말해주는 것만큼 속 시원한 건 없었다. 다행히 나에겐 그런 아가씨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내 입에서 남편의 귀로 전해졌다면 부부싸움에서 후폭풍이 컸을 비난의 말. 동생이 하면 안전하지만 아내인 내가 했다면 안전하지 않았을 거 라는걸 나는 안다. 내가 성격이 좋아서라거나 생각이 없어서 그 말들을 참은 게 아니다. 내가 직접 말했다면 그 순간, 내 속은 시원했겠지만 그 찰나의 시원함이 남편과의 관계를 맞 바꿀 만큼은 아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을 나는 의심한다.


감정이 심하게 요동친 부부싸움은 언제나 상처를 남긴다.(물론 상처를 통해 배울 점도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언제 싸웠냐는 듯 마음에서 없어지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불편한 것들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갈 게 아니라, 잘못한 건 인정하고 미안한 건 사과하며 마음을 표현하는 마일리지를  쌓아가는게 부부 사이에 필요해 보였다. 마일리지가 쌓인 만큼 마음에도 신뢰가 쌓여 건강한 부부관계가 될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남편의 침묵의 마음을 파는 것은 이 결혼 생활을 잘 해내고 싶은 자기만족일지도, 마음을 이야기하고 나누는 부부로 살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의 마음을 돌보며 [우리 가족, 잘 살아보자]하는 나의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계속 파다 보면 언젠가는 남편의 침묵 시간이 점점 짧아질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당신사랑하는 사람이 침묵하고 있다면 그 [침묵]의 마음을 알기 위해 기꺼이 중장비 기사가 되어보길 바란다.


단, 자가진단 필수.
목구멍까지 비난의 말이 차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다, 라면  당신은 소중한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아니오, 라면 그 사람보다 당신의 마음을 파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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