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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May 25. 2022

남편학개론_1

1. 남편의 돌파구

연애기간 4년 결혼생활 8년. 남편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했지만 나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그도 그런 게 살아온 환경도 경험도 다른 누군가 였던 그 사람이 같이 사는 남편이 된 건데 나와 모든 게 다른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연애 때는 그런 나와 다른 점이 더 끌려 아했다.
28살의 나의 남편. 그러니까 그때의 남자 친구는 자기의 생각을 행동으로 바로바로 해나가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탭댄스를 배우다가 만났. 나는 취미로만 하는데, 남편은 그게 재밌어서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탭댄스 공연팀 연습을 하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가 하면, 가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생각날 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생각도, 태도도 나와 다르게 주저 없이 [재밌고, 하고 싶은걸] 해 나가는 그 사람의 선택과 경험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고 결과가 잘못됐더라도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후회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참  건강해 보여서 좋았다. 나의 기준에서 '저렇게 자유롭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이런 신기함과 신선함 그 중간 어디쯤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금의 남편 모습은.....


불혹을 코 앞에 둔, 39살의 그 남자는 외벌이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가장.

어깨에는 늘 곰 백 마리 정도 있는 피곤에 찌든 회사 생활과 스트레스 속에 사는 그분.


맞다. 내 남편이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탄생과 육아 함께 진행중인 가장은 반짝이던 젊은 시절의 태도와 도전적인 마음은 진작에 가슴에 묻고 산지 오래다.


가장이라는 무게가 아마 그렇게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남편의 많은 시도를 발목 잡았을 거라 생각한다.


나보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남편(대한민국의 많은 남편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선택은 욕심 같고 늘 언제나 가족의 뒷전이었겠지.


즉흥적이고 밝고 에너지 넘치는 젊은 나의 남자 친구의 모습보다, 지금의 삶에 순응적이고 생각이 보수적으로 변한 남편을 보고 있자니 가끔은 애잔하기도 하고 이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 아쉽기도 할 때도 있다


그렇게 나의 남편도 그냥 우리 가족의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밤,

우리 부부는 나름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에 속하는데 대화가 적어지면 어김없이 서로를 오해하고 언쟁이 오가는 게 잦은 게 특징이었다.


그날도 서로의 지침에 대화가 없어진 며칠이 지난날의 이야기다.

육아에 치여 내 시간이 너무 없다고 삶이 먹구름 속이라고, 재밌는 게 하나도 없다고 부정적인 나의 생각을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덤덤히 내 마음을 받아줬던 남편은 특유의 흥분된 얼굴을 하고( 이건 아직도 가끔 신기한 부분인데, 남편은 흥분하면 눈이 작아지고 입술이 두꺼워지는 모습을 보인다)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흥분며 말했다.

"나는 뭐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 나도 회사생활에 스트레스 쌓이고 내 시간 없는 건 똑같아. 집에 오면 당신 눈치 보고 애들 봐야 하고, 당신하고 처지가 다른 거 하나 없어. 그래도 나는 받아들이려고 해. 내 가족이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생각해. 내가 선택한 삶이고 그래서 되도록 도와주고 당신을 이해해 보려 했어.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계속 힘들다고만 하는 말들, 이제 이해 못 하겠어!!"  


남편이 분노했다. 
더 이상 나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는 신호. 이런 격한 반응이 처음이라 놀랐고 무섭기도 했다.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걸까.


나와 남편은 감정을 경험한 스펙트럼이 달랐다.
남편은 살아오면서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보고 자란 적이 없다고 했다. 살면서 감정 기복과 마음의 힘듦을 크게 겪은 경험이 없는 그는 나의 세세하고 자잘한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것과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그 감정에 공감해주지 못했다.


그와 반대로,
나는 바람 잘날 없는 가족관계를 가지고 부모님의 잦은 불화와 많은 형제간의 갈등과 결핍, 그 안에 사소한 감정들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나의 삶에서의 아주 밑바닥의 감정을 가감 없이 감당하라고 하기에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도화지가 너무 하얗다고 느껴졌다. 애초에 바탕색이 다른 두 사람이었다.

남편은 날 사랑하니까 다 받아줘야 한다고, 당신이 내 남편이니까 나를 인정해주고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본인이 알지도 못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자신에게 자괴감으로 스스로가 지친다고 말했다.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도 쌓여 가고 있는 시점에서 모든 일들이 자신에게 힘들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시대의 가장으로, 가족을 위해 살아온 남편에게 [번 아웃]이 왔다.

결혼 전과 다른 성격으로 살아져 온 나의 남편에게 쉼이 필요해 보였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는 남편에게 과도한 감정을 의존하지 않는 [정서적 홀로서기] 시작하겠다고, 나의 모든 감정을 남편에게 인정받기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은 흐뭇하게 웃으며 그런 나를 지지해 주었다.

의존하지 않는 [정서적 홀로서기]를 하면서 누구에게 받는 공감보다 내가 나에게 공감하는 게 무엇보다 더 깊게 나를 인정하는 길이고 얼마나 자신을 위로하는 힘이 큰지 알 수 있었다. 그 감정이 소화되어 남편의 당위적 공감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남편의 안색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의 혼자만의 시간을 허락했다.

남편은 매주 금요일 밤  풋살동호회를 시작했다. 처음엔 진짜 나가도 되는지 확인을 하면서 눈치를 보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운동은 남편의 활력소가 되었다.


매일 늦었던 퇴근시간도 금요일에는 어쩜 그렇게 운동 갈 시간에 칼처럼 맞춰오는지, 와서 운동복을 어떻게 그렇게 빛의 속도로 갈아입고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풋살을 마치고 11시 반쯤 귀가하는 남편의 얼굴이 달라졌다.

남편의 얼굴에서 28살 남자 친구의 웃음을 보았다. 남편이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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