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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Aug 26. 2022

남편학개론_5

5. 육 남매의 막내사위

" 최서방, 아랫집에서 키우는 생오리고기를 받았는, 어떻게 먹으면 맛있게 된당가~ 자네가 요리를 해볼 수 있으면 해볼랑가~?"


다섯 명의 사위를 둔 우리 엄마는 막내사위가 가장 좋고 편하다며 우리가 친정에 가면, 른 사위들은 얼씬도 못하는 당신의 살림으로 즐비한 주방을 남편에게 맡긴.


장모의 살림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골 노인의 온갖 살림살이로 조금은  잡다 하기까지 한 주방에 남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다.


그리고 장모인 우리 엄마는 다른 네 명의 사위들과는 다르게 막내사위에게 어려운 마음 없이 맛있게 해 주라고 주문을 하며 편안하게 대접을 받고는 한다.




6년 전, 첫 아이가 6개월이 되기 전에 친정 엄마는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닳을 대로 닳은 무릎에수술만은 받지 않겠다던 엄마는 침대에서 화장실을 이동하는 몇 발자국이 고통스러울 때까지 참고 참는 고집을 웠다.


서울 큰 병원으로 와서 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제야 체념을 다.


수술을 한 후 6개월의 재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은 2주의 한 번씩 경과를 보러 서울 강남의 병원으로 가야 했다.


라도 시골에서 서울까지 무릎 수술한 채로 오가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였다.


엄마의 재활 기간과 병원과의 거리와 여건우리 집이 엄마와 함께하기에 위치가 가장 적절해 보였다.


엄마는 넷째 언니를 가장 편한 딸로 대하긴 하지만 집과 병원의 거리가 우리 집보다 훨씬 멀었다.


또 다른 언니들은 맞벌이에 오빠는 아직 독신이라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엄마의 재활 기간에는 우리 집이 원과의 리도 환경도 가장 나아 보였다.


전라도 정읍의 아주 구석의 시골마을이 온 세상이었던 우리 엄마는 그렇게 막내사위와 막내딸, 그리고 그 막내딸이 낳은 6개월 된 손녀 함께 3개월을 함께 했다.


엄마의 재활을 위해 친오빠가 함께 옆에서 자고 재활운동을 함께 하는 노력을 더 해 주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기어 다니기 시작한 딸아이를 친오빠에게 놀아달라 맡기고 엄마와 아빠가 살아계셨던 과거와 지금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시간 갖었다.


작은 시골에서 평생을 산 나이 든 노인이 된 엄마는 딸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편치 못했다.


 당시 77세의 고령의 이만큼 날사람에, 생각이 앞뒤로 꽉 막힌 보수적인 엄마는 큰딸 집도 아니고, 아들 집도 아니고, 자식이 여섯이나 있는데도 어리디 어린(내 나이 33살이었지만  엄마 기준으로는) 막내 집에서 자기가 아파서 신세를 지게 될 것이라고는 살면서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했다.


사위에게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며 시가의 어른들에게까지 엄마의 미안함이 뻗어나갔다.


퇴근하고 오는 남편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인사말처럼 했다.


신세.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이 엄마와 나와의 거리처럼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신세를 지는 게 아니라 막내딸이 못해본 효도할 기회를 이렇게 준거라고. 그리 생각하지 말고 잘 먹고 재활해서 어서 당신 내키는 대로 걸어 다니시라고. 


귀가 닳도록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웃기만 하는, 밥 한 끼를 대접받는 것에 늘 미안하고 고맙다고 입버릇 처럼 말하던 엄마였다.




내가 딸 노릇을 하며 편하게 엄마와 친오빠와 함께 지낼 수 있었던 1등 공신은 남편이었다.


내가 엄마 재활 장소로 우리 집을 고민했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


우리 집으로 모셔요!


라고 흔쾌히 허락해준 남편.


의 여덟 글자의 대답에 혹시나 반대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내 마이 안심했다.


그리고 행동파 남편은 바로 자신의 작업에 착수했다.


1. 목수


허리가 좋지 않아 바닥 생활이 어려운 엄마는 푹신한 우리 침대를 내줘도 엄마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딱딱한 1인용 돌침대를 사야 하나 고민하는데 남편은 그때 기관지가 좋지 않은 엄마의 상황까지 고려해 절단도를 그려 원판을 재단한 편백나무를 주문했다.


공방도 아닌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한여름에 편백나무 사포질을 하고 먼지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최대한 해가면서 평상형 편백침대를  엄마 퇴원 전까지 만들어냈다.


적당히 걸터앉을 수 있는 작은 키의 친정 엄마를 고려한 침대의 높이와 편백나무의 향, 원목의 견고함에 엄마는 마음에 쏙 든다고 하셨다.


2. 요리사


매주 주말.

나보다 요리실력이 훨씬 좋은 남편은 침에 일어나면


장모님. 오늘 뭐 드시고 싶으세요?

라며 매번 엄마에게 물었다.


뭐든 고맙다고 말하는 장모의 뻔한 그 대답을 들으면서도 뭐가 좋을지, 어떤 게 더 입에 맞을지 이것저것 고했다.


친정 엄마의 음식을 딸인 나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해주는 사위인 그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월요일 출근 전날이면 다음날 장모님 드실 국까지 고민하며 끓여주곤 했다.


어느 주말엔 시골 사는 노인 접하기 어려웠을 양식 코스를 해주는가 하면, 오후에 입이 궁금해 하면 간식거리를 뚝딱 해서 대령하기도 했다. 형제들이 엄마를 보러 온 주말에는  강원도에서 공수해 온 대게 대게 파티를 하기도 했다.


온 식구가 즐겁게 놀고 먹은 그날을 엄마는 지금도 곱씹으며 이야기하신다.


참말로 그때 온 식구  최서방 덕에 잘 먹고

재미진 날이었지~

그게 사람 사는 거여~ 별게 행복이 아니여 그게 행복이지~


나는 우리 엄마가 매운 닭발을 그렇게 잘 드시는지.

새우는 익힌 것만 고 생새우는 비려 안 드시는지.

스테이크와 돈가스를 그렇게 좋아하는지도 정말 하나도 모르고 살았던 못난 딸이었다.


외벌이인 남편은 매주 얼굴에 구김 하나 없이 즐겁게 마트에서 카드를 긁었다.


우리 집 계실 동안 맛있는걸 많이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사위의 도리라고 남편은 당연하다고 했지만, 마음이 남편처럼 당연하지 않은 사위도 이 세상에 많다는 걸 나는 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남편의 마음 씀씀이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결혼 이후 가장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남편은 3개월 동안 친정 엄마에게 나보다도  싹싹하고 살가웠다.


엄마가 혹여 불편해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었다.


엄마가 시골집으로 가는 날 아침.

출근 전 장모의 손을 거리낌 없이 잡고 마의 굽은 허리에 키를 낮춰 조심히 가시라고 푸근하게 아드렸다.


남편의 마음의 따뜻함이 시골의 꽉 막힌 친정엄마에게도 아주 잘 통했던 것 같다.


그 훈훈했던 3개월로 남편은 지금 우리 집 사위 5명 중 엄마의 마음에서 1등 사위로  몇 년째 엄마의 주방에 겁 없이 설 수 있는 사위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편은 남들이 다 받는다는 처갓집 씨암탉을 못 받아봐서 서운해할진 모르겠다. 


암탉은 못받아봤어도 장모의 사랑은 넘치도록 받고 있는 막내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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