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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Aug 30. 2022

82년생 김지영처럼.

그렇게 지냈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두 아이에 정신없는 육아를 하는 엄마였던 나는 젠더이슈를 일으킨 소설이 영화화되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는 것도 몰랐고, 소설도 읽은 적이 없다.


내가  그 영화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전적으로 예고편을 보고 나서였다.


잠깐의 예고편에서 주인공 김지영의 눈빛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위로받지 못했던 그 당시 나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었다고나 할까.

 

벼르고 벼르며 영화를 예매 한 날은 딸아이의 유치원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2년 전쯤.


아이의 유치원 후보로 생각했던 유치원 설명회에 갔다가 영화 상영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설명회장을 나와 서둘러 택시를 탔다.


아이 둘을 남편에게 맡기고 나온 게 오래간만이었고, 홀로 영화관에 간 것은 출산 이후 처음이었다.

거의 5년만 이려나? 헤아려지지도 기억나지도 않은 혼자만의 영화라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택시를 탄 이유도 그래서 였다. 5년 만에 얻은 휴식과 여유를 마음이 힘들었던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서둘러 좋아하는 캐러멜 팝콘과 콜라를 사서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관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가서 내 자리에 찾아 앉았다.


토요일 낮 시간 치고는 영화관은 꽤 한산했다. 영화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내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는 것도 맘에 들었다. 나는 슬픈 영화에도 눈물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유독 이 영화는 감정이입이 될지 모를 것 같다는 생각에 휴지까지 따로 챙겨갔다.


광고 시간이 마침 끝나간다.

상영시간에 늦지 않아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82년생 김지영] 영화가 시작됐다.

 나의 마음은 위로를 받을 준비를 하고, 나의 눈은 주인공 김지영의 시선을 쫓아갔다.


김지영의 일상이 나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영화 일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영화 중반부까지는 그랬다. 나의 하루와 비슷한 패턴이었고, 젊은시절 빛나던 커리어는 잊혀진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여자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내가 둘째가 태어난 이후부터 엄마라는 생활에 치여 살림과 육아를 버거워하며 지냈었고, 그렇게  베란다를 쳐다보고 땅이 꺼지는 듯한 한숨을 내쉬며 마음의 공허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나의 시선은 김지영을 향하지 않았다.


정작 내가 눈물이 나기 시작한 건 김지영의 남편, 대현의 시선을 따라가는 카메라부터였다.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내가 우울함에 깊게 박혀있을 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있다.

그러는 동시에 스스로가 못나고 비참한 생각에 잠겨 모든 사람이 내 인생의 방해꾼이고 나의 적인 거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주변인들의 사소한 말 하나가 나에게 가시가 되어 박힌다.


내가 빠져나 갈 수 없는 감정의 동굴에는 빛이 없어 한 발짝 내딛는 것만으로도 온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하고, 도무지 한 발짝이 움직여지지 않아 마음으로 애만 쓰다가 지쳐 버리는 날이 더 많다.


우울함기저에는 무기력이 있다. 그 무기력은 최소한의 아이들을 위한 행동만 한다.

나를 위한 행동은 생활에서 소거된다.


한없이 무기력의 끝을 달려 집안이 엉망인 채로 두거나, 모든 게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이어서 감정의 기복이 극과 극을 찍고 의지를 내어 보려고 해도 내어지지 않는 그럴 때가 많다.


그래도 영화를 본 시기에는 그 마음이 조금은 밝아졌을 때였다.

세상은 나름 희망적이고 내 편은 어디 한 명 정도 있다고 머리로 생각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겨우 생각해 낸 내편은 아이들 뿐이었지만...


영화를 보며 지영의 병을 알고, 가족들이 지영을 바라보고 각자의 방식대로 지영을 위로한다. 무뚝뚝한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이 개개인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지영에게 표현된다.


아꼈던 만년필에 지영의 이름을 새겨 선물한 동생도, 가부장적인 아빠가 한의원에 지영의 한약을 부탁하는 전화 한 통에도, 그리고 지영의 엄마가 지영이를 말없이 안아 주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소리를 질러대며 통곡하는 장면에도  나에겐  그 각각의 다른 감정이 아주 잘 느껴졌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일지도 모르겠고 내가 영화에 몰입해서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영화를 보며  함께 느꼈다.


내가 지영이 처럼 마음이 아팠을 때 지영의 남편 대현처럼

나의 남편은 불안함과 내가 예전처럼 밝아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나를 바라봤겠구나...


나의 어두운 마음에 가려졌던 남편의 마음이 그제야 대현을 통해 보이기 시작했다.


대화 상대라도 되려고 왔다며 예고도 없이 잠시 다녀간 둘째 언니는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을 때 신랑 눈치 보지 말고 시켜먹으라고 돌아가는 길에 내손에 오만 원짜리 지폐를 쥐어주며 언니는 나를 응원했줬던 거구나.


내가 식욕도 없고, 먹을 힘도 없다고 했을 때 무거운 요리 재료들을 다 싸들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와서 요리를 해서 같이 밥만 먹고 간 셋째 언니는 그 한 끼를 위해 온전히 나만 걱정하고 생각했던 거였겠구나.


내가 힘들다고, 왜 사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 없이 푸념한 그 메시지 하나에도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온 넷째 언니는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었을까.


그리고. 우리 엄마...

친정엄마에겐 우울증이 왔을 때 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엄마가 알게 된 날 이후부터 매일 아침에 습관처럼 하는 전화에 엄마의 한마디가 추가됐었다.


오늘 기분은 어떠냐~


힘없는 목소리로 그냥 그렇지..라고 말하는 나의 기계이고 건조한 대답을 듣끊는 그 짧은 30초의 통화에도,


아마도 엄마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막내딸의 우울이 마음에서 어서 내쳐지기를, 그렇게 나의 건강한 마음을 빌었겠구나...


영화를 눈으로 보지만 마음으로는 그동안의 나의 일상의 기록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눈물로 스크린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가져온 휴지는 이미 진작에 다 써버렸다.

그렇게 내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한동안 쏟아져 나왔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힘든 거라고 생각했다. 내편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감정이 더 버겁고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살기만 했는데 이렇게 인생의 촛불이 꺼지는 것 같은 감정을 감당하는 게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모르고 있던 한 명 한 명의 그 마음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우울하고 괴로워 못 봤던 것뿐일지 모른.


인생 어차피 혼자라고 생각한 나의 인생의 가설은 완전한 오답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냥 그렇게 원래부사랑받고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살면서 생전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지하게 해 보게 되었다.


영화가 끝날 무렵, 가족 안에서 치료를 시작한 지영처럼 나도 남편과 내 가족들, 그리고 주변인들의 따뜻한 마음 안에서 우울증이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는 비슷한 연령대라서 그런지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감정이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제각각 평은 달랐다. 영화는 그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 따라 다른 평을 받는 것 같다.  


어떤 친구는 남편이 울면서 그동안 힘들었겠다고 몰라봐줘서 미안했다고 사과를 했다고 했고, 또 다른 친구는 김지영이 너무 답답해서 왜 그러고 사는지 고구마 먹은 느낌이라 답답하고 침울한 영화의 분위기가 싫었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느낀 김지영은 아픈 자신을 수용하고 한 발짝 나아가려는 방법을 찾는 의지 있는 여자였다.


확실히 내가 겪어본 우울증은 마음이 심하게 아픈 게 맞다. 인생의 의미를 가족에게서도 애써 찾는 것도 귀찮고 의미 없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주변에는 내가 보면 괴로운 사람도 있고, 마음이 그냥 싫어지는 관계도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또 다른 곳에는 분명 내가 좋아하고 애정 하는 사람도 있고,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응원할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게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어제 만났던 가까운 옆집 언니일 수도 있.


우울감을 자주 느끼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누군가가 한 명쯤은 반드시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의 생각하는 수심이 깊고 끝없이 어둡기만 한 그 우울의 바다라는 곳은 알고 보니,

다리만 잠길 정도의 강물에 당신이 주저앉아 있어서 코끝까지 물이 차있을 뿐, 고개만 숙이지 않으면 죽지 않을 거라고.


당신이 당신의 다리에 힘을 줘서 일어나기만 하면, 걸어서 나 갈 수 있는, 수심이 얕은 강물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어서 일어나길 바란다. 당신 자신을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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