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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Aug 09. 2022

남편학개론_4

4. 남자에서 아빠로

서울의 작은 18평 아파트였던 신혼집에서 첫아이를 임신했다.


임신한 후, 나는 태교일기를 쓰면서 기록을 남기곤 했는데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나중에 자기도 아이에게 무언가를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다.


임신 후기를 향해 가던 평온했던 어느 주말, 편의점에 뭘 좀 사러 나갔다 오는 길에 아파트 앞에 버려진 신생아 침대를 보고 남편은 대뜸, 아이 침대를 리폼해서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남편의 손은 야무지다. 소형 아파트의 전세살이로 시작한 신혼 초, 기성품의 가구 사이즈가 아파트 공간과 맞지 않아 결국 화장대 하나도 고르지 못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내 맘에 드는 화장대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가구 만드는게 뭐 쉬운가? 속으로는 별 기대가 없었는데 그 기대와 반하게 남편은 내 맘에 쏙드는 멋진 원목 화장대를 만들어 선물해줬다. 그 뒤로 남편은 신혼살림의 책장과 거실 좌탁을 만들며 가구 만들기의 취미를 새롭게 만들어갔다.


하지만 그만큼 시간도 노력도 많이 할애되는 일이었다. 직접 만들어 돈을 아끼는 만큼 만드는 노동력이 들었다. 막상 남편이 가져온 아기 침대 상태를 보니 손 볼게 많아 보였다. 아기 침대는 대여라는 것도 있고, 가벼운 것들도 많은데 무거운 원목 침대를 리폼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더구나 신혼집인 이곳의 18평의 좁은 공간이다. 공간에 비해 커다란 침대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게 마음이 내키진 않아 처음엔 반대했다. 


남편은 사랑이(큰아이의 태명)에게 꼭 해주고 싶다고 나를 설득했다. 그래서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리폼은 처음이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도 드디어 선물해줄 것이 생겼다며 참 즐거워했다. 


그날 이후로 매주 토요일, 남편은 공방으로 출근했다. 

1월 태어날 예정인 아이를 위해 한 겨울에도 남편은 그곳을 참 열심히 갔었다. 작업이 생각보다 더뎌 11월, 12월에는 공방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기도 하고 주말 이틀을 온통 공방에서 지내기도 했다. 


춥지 않냐고 물었었다.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별 걱정을 안 했고, 괜찮겠지 생각했었다. 공방의 환경과 여건이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침대의 막마지 마무리가 되어 갈 때쯤, 만들어지고 있는 침대도 보고 싶고, 공방이라는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여 신랑이 작업하는 곳에 찾아가 본 적이 있다. 


1층엔 여러 목재들이 쌓아있었고 옆쪽의 좁은 계단으로 연결된 2층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 작업장의 문을 열고 본 작업실 내부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바닥에는 사포질 된 나무가루들이 가득했고 여기저기 나무 먼지들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추웠다. 


장갑을 끼지 않았던 나의 손이 따갑고 코끝이 추위로 얼얼했다. 이런 작업환경인 줄 미처 몰랐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하는 건 줄 몰랐어~."


나의 첫마디가 침대를 보고 감탄하기보다는 속상한 말투의 걱정인 걸 듣고 남편은 작업할 때는 몸을 움직이고 힘을 써야 해서 오히려 더울 때가 많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한껏 들떠서 침대의 완성되는 부분과 자신이 다시 리폼한 부분을 이야기해주고 앞으로 남은 작업과 예상되는 완성시기를 말해주며 디자이너가 작품을 탄생시키는 마지막의 과정을 나에게 침까지 튀기면서 열정적으로 설명해줬다.


남편의 설명은 지금 생각해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말해도 내가 모르는 과정이니 지금껏 기억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공방 특유의 나무 냄새와 열악한 환경에서 느낀 나의 감정은 아직도 명확하다.


이렇게 추운 시간들을 견디면서 만들고 있던 침대였구나. 매주 어느 정도까지 마쳤다고 작업된 사진들을 보여주고, 어떻게 완성될지 기대된다는 말을 참 많이도 했던 남편이다. 


그 얼굴에는 작업실이 춥다는 것도,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는 것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저 재미있나 보다.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라 더 즐거운가 보다 생각했다.


작업환경이 이렇게 열악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동안 추위와 싸우며 작업했을 남편이 그려지니 더 안쓰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임신 중기쯤,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떨 거 같아?"


남편은 전혀 상상이 안된다고 했다. 눈으로 보고 만지고 안아봐야 자기가 아빠인 게 실감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예상할 수 없기에 한편으로는 걱정된다고도 했다. 남편의 대답은 여느 아빠를 준비하는 주변의 남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막연함과 두려움,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공방의 열악한 환경에서 침대를 만드는 남편의 마음은 오직 아이를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아빠이기에 이 추위를 견뎠던 거구나. 아이가 혹시라도 더 다치지 않게 모서리를 사포질하고 아이의 안전을 위한 침대 가드를 만들고, 아이의 옷을 넣을 서랍의 레일을 추가하며 그렇게 아이를 위한 완벽한 선물을 사랑으로 완성하는 시간을 보냈겠구나.


남편이 아닌 아빠의 마음들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뭉클하고 따뜻했다. 

상상이 안 되는 그저 그런 막연한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아이를 생각하는 아빠의 사랑이 더 깊고 위대하게 느껴졌다.


공방을 나와 집으로 가며 생각했다.


'우리 사랑이. 아빠 참 잘 뒀네~멋지다. 내 남편 아니, 사랑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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