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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Sep 10. 2022

남편학개론_7

7. 맙소사! 원형탈모라니.

한 달 만에 미용실에 들렀다 온 남편이 뒤통수를 만지며 말했다.


"용사가 머리에 땜통이 있다는데? 한번 봐줘봐."


남편은 어렸을 때 뒤통수가 다쳐서 그 상처로 새끼손톱만 한 땜통이 있다.

당연히 그걸 잘못 보고 얘기한 거겠지 싶어서 예능프로를 보고 있던 나는 건성으로 남편의 뒤통수를 들췄다.


그런데,


"으힉!!!! 어머, 이게 뭐야???"


세상에나 만상에나 이게 무슨 일인가. 남편의 뒤통수를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놀라 소리쳤다.


"왜? 진짜 땜통이 있어?" 소리치는 나를 보고 놀란 남편이 진짜냐며 묻는다.


얼추 그 크기가 백 원짜리보다는 크고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는 작다. 자세한 뒤통수의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남편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어봤다.


우와, 아이폰 카메라 기술력 보소.

뭐 그렇게 정확하고 세밀하게 나올 일인지..


남편의 아이폰으로 찍은 그라미 모양의 원형탈모.


그 동그란 모양 안에 있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몽땅 빠져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두피가 반질반질해져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원형 바깥쪽 머리카락은 얇아진 게 사진으로도 확연히 보인다. 


아이폰의 카메라 기술을 실감하면서 남편 뒤통수의 원형탈모를 보고 놀란 마음이 슬슬 걱정 해갔다.

 

사진을 본 당사자 남편 역시 놀라긴 했으나 그 반응은 나보다 훨씬 약했다.


머리숱 걱정을 하고 산 적이 없는 남편이지만 어쩐지 요즘 샤워할 때 머리카락 두께가 많이 얇아진 거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나이 들어서 머리카락도 힘이 없어진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며 내 옆에 앉더니 내가 보던 예능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 예능이 눈에 들어온다고? 웃음이 나온다고?


나는 더 이상 예능프로를 보고 웃고 있을 수 없었다.


같은 미용실에서 저번 달에는 듣지 못한 말이었다.

한 달 동안 이 만큼 머리카락이 힘을 잃고 이 정도까지 빠지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한 달 동안 남편 마음의 어떤 스트레스로  인해 이렇게 뒤통수가 반짝이는 두피를 뽐내고 있는 것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밤 10시 30분.

조금 늦게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낮부터 기다렸던 '반짝이는 뒤통수 동그라미'에 대해 편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드디어 다.


궁금한 점을 속사포처럼 말하지 말자고 아이들을 재우면서 다짐했다. 남편이 취조당하는 기분을 느껴서도 안된다.


나의 여유롭고 느긋한 마음이 먼저다. 성격 급한 내가 꼭 장착해야 할 대화의 기술이다.


"당신 머리 빠진 거, 괜찮아?"

생전 처음 보는 반질반질한 두피를 본 남편의 진짜 마음 궁금했다.


남편은 나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몸으로 반응이 오는 것 같다고 했다.


30대의 끄트머리에서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인생의 재미도 예전 같지 않은데 이제 머리카락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게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듯 조금은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다 보니 해소가 안된 스트레스가 탈모로 나온 거라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게 탈모가 아니라 몸안의 속병으로 왔다면 그게 위궤양이 되었을지, 역류성 식도염이 되었을지 아니면 그것보다 무서운 어떤 병으로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황이다.


혹시나 회사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남편에게 어봤다.


선임인 부장과 갈등이 심한 적은 없었는지, 아니면 다른 동료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다.


갑자기 생긴 원형탈모에 남편도 자신의 한 달을 돌이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기존하고 비슷한 일들이었고. 부장과 같이 일하는 동료와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트레스가 특별한 수준은 아니다고 다.


그렇다면 나의 그다음 질문은. 정해져 있다.


회사에 문제가 없다면 남편 요즘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그 마음을 들어볼 차례다.


내가 남편에게 정서적 홀로서기를 하겠다고  뒤, 거의 1년 반쯤 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어느 정도 편안한 관계로 서로가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고 있었고 나름 만족하고 있는 건강한 부부관계로 안정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일 뿐 남편은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이 세상엔 내 맘 같지 않은 사람이 많다. 가까운 남편이라도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일상에 대해 힘든 점이 있는지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생각하는 시간이 회사 일을 물어봤던 아까와 다르게 길다.


침묵은 남편의 또 다른 의사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할 말이 있지만 조심스럽고, 하고 싶지만 나의 반응이 걱정되어 말을 못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는 침묵이라는 것을 안다.


"어떤 게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말하기를 망설이는 것 같은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내 눈을 피했다. 그런 남편을 보고 여자의 촉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남편의 탈모에는 무겁고도,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남편이 말을 하기까지 잠시 기다려보기로 한다. (마음수련이 별게 아니다;)


잠시 후, 남편이 말했다.

"당신.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가끔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때나  하루가 힘들었다고  말할 때 내가 날 생각이 나서 힘든 것 같아."


내가 물었다.

"옛날 생각? 내가 예전처럼 우울증 올까 봐?"


남편은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나에게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왔을 때,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기억한다고 했다.


나에게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고 했다. 다 놓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고 했다.


그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은 것 같다고 했다.


잘 지내다가 한 번씩 그때의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른다고 했다.


내가 다시 그때처럼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요즘 좀 심해졌다고...

 

남편은 온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남편에게 물어보기 전까지는 탈모의 원인이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반짝이는  드러난 원형탈모는  그동안 게 말 못한 안한 마음의 결과물 같았다.




타인의 불안은 내 몫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남편이라고 해도 내가 그 불안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과거로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남편의 기억을 머리에서 삭제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남편 마음의 불안이 다른 통로로 흘러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반짝이는 두피와 얇아진 머리카락 뒤에 숨겨온 남편의 불안한 마음에 CPR이 필요할 때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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