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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Sep 06. 2022

엄마, 나의 엄마

1년 만에 친정에 갔다.

"할머니~저기 저 수건 좀 주세요"


초등학교 운동회 날,  친구가 수건을 달라고 말한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고 우리 엄마였다.


"할머니 아니고 우리 엄마거든~!"


붙이며 친구의 수건을 집어던지는 나를 보고 엄마는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괜찮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게 우리 엄마는 이미 43살 노산으로 여섯째인 나를 출산했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엄마 나이는 이미 쉰이 넘었고 늘 머리를 곱게 올린 쪽진 머리(뒤통수에 땋아서 틀어 올려 비녀를 꽂은 머리)를 하고 다녔기에, 아마 친구들이 보기엔 조금은 더 나이 들어 보였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의 엄마에게 할머니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의 고향 동네는 슈퍼나 약국 하나가 없다. 구석진 시골 마을이라, 어릴 때부터 먹고 싶은걸 바로 사서 먹어본 적도 없고 아파도 바로 병원에 간 적이 없다.


그런 시골 깡촌. 그곳이 나의 고향이다.


친정에 내려가는 길, 제일 먼저 시골집에 들어가기 전 장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나로 마트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전화로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카트에 담는다. 그 외에도 소고기 국거리와 돼지고기, 양념 소고기 등을 다양하게 산다. 일부러 장에 나오지 않으면 당신이 직접 사서 드시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김치냉장고에 넉넉히 두고 먹을 양을 사 간다.


오랜만에 들릴 아빠 산소에 가지고 갈 막걸리와 새우깡도 잊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아빠 산소에 다녀오면 내가 그동안 아이들에게 못한 일들과 내 안의 못된 감정들이 조금씩 버려지는 느낌이 들어 가벼운 마음이 되고는 한다.


장본 물건들을 잔뜩 트렁크 안에 싣고,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한다. 엄마가 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제 출발해요~"


도착하려면 15분은 있어야 하는 걸 알고도 고작 몇 초가 안 되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엄마는 문 앞에서 동네 언저리를 살펴보셨을 거다. 어릴 때 언니들이 서울에서 형부랑 내려온다고 할 때에도 엄마는 도착 시간쯤이 되면 가만히 있질 않고 미리 나와 지대가 높은 우리 집에서 동네 어귀를 내려다는 습관이 있었다.


언니들과 나이 터울이 컸던 어린 나는 오랜만에 오는 언니와 형부가 '어떤 맛있는 것을 가지고 올까' 기대에 부풀어 기다렸지만, 엄마는 딸과 사위, 손주들의 얼굴을 더 빨리 보고 싶은 반가운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자식을 만나는 기다림이 엄마에게는 그런 방식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라고 이제야 엄마의 그 마음에 닿아본다.


코로나 이후로, 친정집의 모든 행사가 취소됐었다. 혹시나 오는 길에 들리는 휴게소에서라도 아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라도 옮겨올라 무섭다고 차일피일 당신의 생일이든 명절이든 오지 말라고 전화기 너머로 한참을 신신당부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위드 코로나니까.라는 명목 하나로 엄마에게 들이대긴 했지만 사실 나는 그동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시골 엄마 냄새라고는 조금 꿉꿉한 땀 냄새가 다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냄새가 그리웠다.


집에 오르는 오르막길, 차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을 먼저 만났다.


텃밭일을 얼마나 하신 건지 까맣게 시골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더 늘어난 깊은 주름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인공관절 수술을 한 무릎은 내 몸 같이 않고 말썽인지 지팡이 하나에 체중을 나눠 싣고 웃고 있는 나의 엄마가 저 앞에 서 있다.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굽은 허리와 한 손에 잡혀있는 지팡이를 보니 마음 한 곳이 무너지며 저린다.


1년 만에 마주한 엄마를 보고 내 코가 시큰거렸다.

'에휴, 우리 엄마. 언제 이렇게 늙어버린 거야..'


하지만 눈물이 떨어지기 전 속상한 마음을 거두어야 한다. 오자마자 눈물 흘리는 막내딸을 엄마는 기대하지 않았을 테니.


시큰거리는 코를 몇 번이고 비비며 눈물을 삼켰다.


엄마는 올해로 82세. 이제는 누가 할머니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많은 세월이 엄마의 얼굴에 주름으로 남았다.


차에서 내려, 어느샌가 왜소해져 버린 엄마를 안고 그리운 엄마의 냄새를 만났다.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정말 우연이었다.


넷째 언니와 3년 전쯤, 우리 집에서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맥주를 가볍게 마실 때였다. 가족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언니가 말했다.


그날은 유독 아빠와 엄마의 부부싸움이 심한 날이었다고 했다. 다른 식구들은 집에 없었고, 어린 넷째 언니는 싸움을 피해 더 어린 나를 데리고 작은 방에 들어와 있었다고 했다. 3살쯤 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 상태였고, 지금의 내 딸과 나이가 같은 7살이었던 언니는 너무 무서워서 싸움을 말리러 나갈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한참이 고성으로 시끄러웠고 잠시 조용하다고 생각한 그때, 엄마가 우리가 있는 방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장롱을 열고 언제 싸놓은 건지 모르는 작은 가방 하나를 엄마가 손에 들었다고 했다. 언니는 그때 직감했다고 했다. 엄마가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갈 것이라는 것을.


그런 엄마를 말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몸이 그대로 얼음이 되어 입을 뗄 수 없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아빠랑 싸우는 엄마가 편하게 나가길 바랬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 몇 초의 찰나가 있었고 엄마가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는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놀던 내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웃으며 잡았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야무지게, 꽉! 잡았다고 한다.


그게 놀아달라고 잡은 건지, 뭔가 알고 잡은 건지 언니는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내가 치마를 놔주지 않아 엄마는 작은 내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가방을 다시 장롱에 넣었다고 했다. 그제야 언니는 엄마가 집을 나가지 않을 것을 알고 안심했다고 했다.


언니는 담담하면서도 7살의 어린아이의 기억 치고는 선명하게 그때를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자신에게 충격적인 사건은 초 단위로 세세하게 기억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7살의 어린 언니도 그때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는 얘기다.


아마 그때, 엄마가 나갔다면 우리의 운명이 바뀌었을 거라고, 엄마 없는 삶을 살며 오늘처럼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엄마와 통화하며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언니는 말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유년시절, 엄마가 바보처럼 산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보면 답답함이 올라와서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우리에겐 좋은 아빠였지만 엄마에겐 좋은 남편이 아니었던 아빠와 왜 그렇게 사는지 이유를 모르겠던 적이 많았는데, 언니의 이야기로 엄마는 아빠보다 자식을 보고 산 것이라는 것을 증명받은 기분이었다.


20살까지 끊이지 않는 부모의 불화를 보고 산 나를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적이 있다. 막내라서 사랑받기보다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더 많이 보고 겪은 가정의 불화, 그 아픔과 결핍이 내 성격으로 만들어져 더 잘 살 수도 있었을 나의 인생을 부모가 막았다고 느낀 적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내가 지금 그나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건 내 힘으로 잘 살아왔고, 그 암울한 나의 인생 시기를 잘  버텼기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기특하게 생각했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나는 열심히 살았고, 스스로 위기를 잘 극복한 어린아이였으니까.


하지만 내 인생 뒤에 가려져 있던 엄마의 인생을 보지 못했던 시절, 얼마나 오만하고 거만한 생각으로 엄마를 생각하고 바라봤는지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엄마는 당신의 삶에서 얼마나 여러 번 가방을 들었다 자식들을 보며 다시 내려놨을까...

그 무겁고도 슬픈  엄마의 마음을, 철없는 막내딸은 엄마가 되고도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6남매를 키워 낸 엄마의 위대한 사랑을, 이제 고작 엄마 인생 7년 차인 내가 발톱의 때만큼도 알 리가 없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고생과 고통을 감내해 낸 우리 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로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


그것은 분명한 진실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매일 오전 습관처럼 통화하는 엄마와의 30초의 짧은 안부전화를 언젠간 할 수없을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생각만으로도 먹먹한 그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날이 오면 최대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 엄마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을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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