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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Sep 05. 2022

위로하고 위로받는다는 것

독서모임의 시작

쓰다 만 다이어리가 많다. 매년 데일리의 칸이 넓고 조금은 큼지막한 다이어리를 탐내는 편이다.

그 욕심에 반하게 늘 12월까지 쓰지 못하고 5월이나 6월쯤 머물러 있는 게 여러 권이라는 게 문제지만.


버릴 까 생각하다가도, 펼쳐보면  그해의 몇 개월 동안의 내 생각과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버리기 아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결국 버리지 못하게 되면서 나 같은 사람은 미니멀 라이프는 못하겠다 생각한다.


그 다이어리중 하나를 뽑아 읽어본 적이 있다.


육아가 너무 힘들다. 육아를 하며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

잘하고 있는 건지 불안하다.

육아서 독서모임이라도 해야 하나.


딸아이가 3살 때, 둘째를 갖기 전에 적었던 일기다.


연고가 없는 경기도, 이곳으로 이사를 온 뒤로 서울에서 낳은 첫 아이의 조리원 동기와 만남도 끊기고 거리도 멀어져 친언니들의 방문도 거의 없다. 게다가 놀이터에서 만날 한 명의 아이 친구 엄마조차 전무했던 그때였다.


퇴근하고 오는 남편이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어른 친구였던 그 시절.

아이와 나와 둘만의 시간으로 하루가 채워졌던 그 시간들의 마음이 몇 개 적혀 있었다.


나는 그때도 육아를 버거워하고 있었다.


지금 막상 두 아이의 육아를 하다 보니 아이가 하나일 때는 정말 편했던 것이라는 것을 매우, 많이, 현실적으로 실감을 하고 있다지만 그때는 첫 아이를 영혼까지 끌어와 정성으로 육아를 하던 때라, 최선을 다해 육아에 몰입해 있었다. 그러다 육퇴 후에 지친 마음을 일기로 적어 둔 것이겠지.


일기를 읽다 그때의 초보 엄마로 맘고생했던 내가 떠올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의 끝은, 그때의 나처럼 마음이 힘든 엄마들을 위한 독서모임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것.


비용 부담 없이 무료로, 책과 마음을 준비만 하고 가볍게 오는 독서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어차피 인원 모집이 되지 않으면 하지 못할 거지만 시도나 해보지 뭐.


가볍게 맘 카페를 통해 모임 공지를 올리고 모집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빨리 모집이 마감되어 순조롭게 독서모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엄마들을 위한 독서모임[ 모임명 : 완전한 퇴근]


엄마들이 가장 공감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지금 엄마로 살아가는 이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육아 퇴근을 하고도 아직도 마음은 퇴근하지 못한 엄마들을 위한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렇기에 오늘의 마음의 속상함을, 화남을, 무기력함을, 그리고 내일의 다짐을 함께 이야기하고 들으며 마음에서 올라오는 어떤 생각도 같이 나눌 수 있는, 엄마들이 마음 따뜻해지는 독서모임이 되기를 희망했다.


기존에 읽었던 육아서 중 하나를 독서모임 책으로 골랐다. 부모의 태도와 양육의 기본을 알려준 많은 책 중에서 내 마음이 위로받았던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서천석/창비] 책을 선택했다.


책의 구성이 짧은 문단들로 엮어져 가볍게 어디를 펼쳐 봐도 쉽게 읽히면서 그래도 당신, 잘하고 있다고 어깨를 살포시 토닥여 주는 것 같은 책이었다.


여전히 두 아이의 육아를 하면서 매일이 고난의 연속이고 나의 성질머리의 저 밑바닥을 드러내는 일상이지만, 다이어리의 내 마음처럼 그렇게 힘들어하는 엄마들에게 힘을 주고 싶은 마음 하나로 시작한 독서모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아이의 육아로 나의 정신도 매일 너덜너덜한 내가 그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지금도 의문이긴 하다.)




수요일 밤, 독서모임 예정시간 10시가 되기 30분 전. 아이들을 후다닥 재우고 엄마들을 만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도 하고 상담도 많이 해봤던 터라 타인과 말을 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낯선 사람들과 대면도 아닌 화상으로 만나는 모임에 어색한 긴장감으로 손에 땀이 나기도 했다.


10시가 되니 하나, 둘 독서모임 멤버가 입장을 하고 어색한 웃음과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엄마들을 위한 독서모임이 시작됐다.


오리엔테이션을 지나 육아서의 인상 깊었던 내용을 서로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었다. 내용과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다 보니 엄마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밝아졌다. 어색함이 돌던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책 이야기를 발췌해서 읽고 나누는 것, 아마 거기까지가 예상했던 독서모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마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모임 시간이 15분 정도 남았을 때, 나는 엄마들의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오늘은 어떤 마음 때문에 힘들었는지 한 사람씩 물어봤다.


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그날의 나의 마음을 함께 나누는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필요할 때가 있다.)


마음을 묻는 질문에, 엄마들은 생각보다 쉽게 대답하지 못한. 들여다본 적이 없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감히 추측해 본다.


아마, 아이의 마음을 물어보는 질문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예상해 보고, 상황을 되짚어가면서 하루를 재생시켜 봤을 것이다. 아이의 표정과  말, 사소한 행동까지 모든 게 엄마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육아를 하며 엄마들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볼 새가 없다.


그 이유는 엄마의 하루가 대략 이렇기 때문일 거다.


아침에 눈뜨면 쳇바퀴처럼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기관을 보내고(아이가 더 어린 경우는 이마저도 없겠고), 틈날 때 대충 밥을 먹고 밀린 빨래와 청소 등 집안일을 하다가 아이가 오면 또다시 아이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을 먼저 챙기고 실랑이하다 보면 올라오는 내 마음쯤은 가볍게 제쳐두고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나의 시간을 꿈꾸며 아이를 재우지만 아이와 함께 잠들어 버리는 게 태반이다.


이렇게 매일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사치처럼 느껴진다. 몸과 마음이 지쳐 그저 시간이 나면 드러눕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 정도로 엄마들은 몸도 마음도 바쁜 하루가 많다.)


엄마로 살고 있는 삶에서 내 마음을 먼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엄마들은, 나에게 질문이 어렵다고 했다.


나의 질문이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만큼 스스로 마음을 돌아볼 여유를 가져 본적도, 혹은 누가 그 마음을 알아봐 준  적이 없어서, 스스로 그런 마음을 되돌아본 경험이 없기에 어렵다고 느낄 뿐이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질문에 모든 엄마들 자신의 마음을 찾아내서 이야기했다.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이야기하며 엄마들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질문을 받을 때와는 다른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찾으려고 하면 내 마음 하나쯤을 찾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엄마들도 느꼈을 것이다.


밤 11시 30분. 예상시간보다 30분이 더 지나서 독서모임을 마무리했다. 엄마들의 첫 모임 후기는 대단했다.

 

참여하는 엄마 모두 아이 말고,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선택한 독서모임이었다고 했다. 오늘의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공감받고 위로받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했다. 몇 년 동안  남편에게도 말해보지 못한 마음을 꺼내 봤다고 했다. 몰랐는데 이런 시간이 자신에게 너무 필요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나는 그저 마음을 묻는 질문 한 개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엄마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 있지만 '엄마'로 살아가는 공감대 하나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처음 보는 엄마들에게  힘을 주고, 마음의 친구가 되어주길 마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처럼 진지하게 듣고, 따뜻하게 위로했다.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이해받고 공감받은 엄마들의 얼굴은 빛이 났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대한 기대도 잊지 않았다.


독서모임 첫날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마들이 훨씬 더 독서모임에 만족하는 것에 기쁘기도 했지만, 여전히 엄마들은(나 포함) 자신의 마음을 제쳐두고 사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습관적으로 덮어 뒀던 그 소중하고 귀한, 엄마 자신의 마음을 독서모임에서라도 조금 더 알아가 보고 위로받는 시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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