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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Sep 13. 2022

남편학개론_8

8. 원형탈모- 두 번째 이야기

탈모 전문 병원에 상담실장으로 일하는 지인이 있다. 그 언니와는 오래전 cs강사과정을 공부할 때 만났다. 그때의 작은 인연을 이어 나가다 보니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걸어보지만 근무시간이라 그런지 전화를 받지 않아 메시지를 남겨두고 아이들과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과 노느라 날 찾지 않았다. 이럴 때 참 맘 편하게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데 오늘은 내 맘이 편치가 않다. 남편의 원형 탈모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놀이터 앞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원형탈모에 대해 검색해봤다. 수두룩하게 나오는 원형탈모의 경험담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까 전화가 되지 않았던 병원 언니의 전화다.


남편의 반짝이는 두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탈모에 전문가인 언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원형탈모가 생겼을 때, 처음에 원형의 지름을 매일, 혹은 이틀에 한번 재보라고 했다. 원형이 넓어지는지 작아지는지, 혹은 그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름이 길어졌다면 병원에 빨리 가는 게 좋다고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무조건 줄이라고 했다.

급격하게 받은 스트레스가 있어서  생기기도 하지만 누적된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방치하다가 병원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원인이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말할 수 없이 동그라미 크기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냐고 물었다. 지금은 그게 가장 궁금했다.


탈모방지 전용 샴푸도 있긴 한데 가격이 사악하고 탈모 마사지도 좋긴 하지만 시간과 비용을 무시 못한다고 했다. 자기가 병원에 근무하긴 해도 쉽게 권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흔히 하는 게 두피에 맞는 스테로이드 주사라고 했다. 그것도 시기를 놓쳐 너무 늦어버리면 원형탈모 구역이 머리 전체로 20군데까지 번지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빨리 발견하고 최대한 빨리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일단 주사를 먼저 맞고 지켜보라고 하며 언니가 한마디 덧붙였다


" 바가지 긁지 말고 남편 맘 편하게 해 줘. 지금은 긴급상황이니까, "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한참을 생각했다.


바가지와 긴급상황.

이 두 단어가 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릴 때부터 불안을 안고 살았던 나는 어느 정도 불안에 내성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불안하지만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름의 계획이라는 것을 짜면서 나의 불안을 조금씩 완화시킨다.


명상도 하고 꾸준히 일기도 쓴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불안을 갖고 살아가는 방법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남편은 나로 인해 사람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처음 느껴보는 거라고 했다. 시어머님이 갱년기 우울증을 겪을 때에도 자기가 느낀 불안감은 이것의 반도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자신의 불안감은 아마 아버님도 비슷할 거 같다고 말했다.

처음보다 점점 심해지는 어머님의 우울증을 옆에서 지켜봤던 아버님을 보며, 어머님이 우울증이 회복된 뒤에도 조심스럽게 대하는 아버님의 모습이 자기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고 했다.


남편이 느끼는 아버님은 예전보다 더 어머님께  할 말을 못 하고 참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아마 자칫하다 어머님이 우울증을 겪었을 때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화가 나고 불편해도 맘속으로 삭히는 게 낫다고 아버님 스스로 생각했을 거라고 했다.


아버님의 속내가 진짜 그러한지는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님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보면, 남편이 대입한 아버님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머님이 갱년기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시기. 그때를 떠올려 봤다. 

처음에는 온 가족이 어머님의 운동방법과 병원 치료, 우울에 관련된 심리상담에 몰두하고 지속적으로 치료 방법을 찾았었다. 치료를 병행하면서도 어머님이 차도가 더디고 우울증의 시기가 해를 지나 길어지면서 가족들의 걱정이 색을 달리 할 때가 있었다.


어머님보다 어머님의 보호자. 아버님에 대한 걱정이었다.


아버님은 매일 운동을 다니시는 분이다. 시니어 체육대회에서 받아 온 메달이 걸을 데가 없어 그냥 한 군데 다 통째로 몰아넣어 둘 정도로 퇴직 후에 운동에 더 열심히 셨다. 우리 가족이 가끔 내려갈 때에도 끔찍하게 아끼는 손주들을 뒤로하고 어김없이 운동을 다녀오셨다.


운동이 왜 그렇게 좋냐고 묻는 며느리의 질문에 아버님은  운동이 지금의 당신 삶에서 유일한 재미라고 말씀하셨다.


그랬던 아버님은 어머님의 심리적 변화로 사는 재미를 잃고 하루 종일 어머님 옆에서 지내시는 날이 많아졌다. 우울증으로 변해가는 어머님의 말과 행동들을 견뎌내는 아버님의 생활을 보며 걱정을 하는 자식들에게, 아버님은  본인이 당연히 감당해야 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는 시기가 길어지며 아버님의 마음에 당신도 모르는 사이 우울이 오면 어쩌나 하는, 또 다른 걱정을 마음 한편에 자식 내외들은 하고 있었다.


맞다. 나는 지금 아버님과 어머님을 이야기를 하며 남편의 원형 탈모보다 남편 마음의 우울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탈모의 원인이 명확하진 않지만 남편이 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말할때 느껴진 남편의 울적한 마음이 내 마음에서 떨쳐지지 않는다.


남편이 걱정됐다. 탈모든 심리적 우울이든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게 예방할 수 있다면 예방하는 게 좋다.


그리고 지금이 어쩌면 남편 마음의 긴급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처럼 남편의 사는 재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매주 금요일 풋살을 하는 것과 캠핑. 그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캠핑도 우리 가족과 함께니까 오롯이 남편 혼자 즐길 수 있는 건 풋살이 유일했다. 그마저 가끔 야근으로 못 갈 때가 있다.


풋살을 못 가는 날엔 남편의 얼굴색이 달라진다. 생각해보니 그땐 속으로 다음 주에 가면 되지 뭐 그렇게 세상 잃은 모습을 하고 있나 의아해 했는데...


남편은 일주일의 딱 한번 있는 유일한 재미를 잃은 느낌이었나 보다.


남편에게 사는 재미를 더 해주고 싶었다. 야근으로 못 가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재미를 위해 주중에 다른 운동을 시작해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원형탈모에도 체념한듯한 남편은 운동을 알아보라는 말에도 싱거운 반응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굳이 우리 사정에 돈 들여가며 운동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그게 원형탈모에 무슨 효과가 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면에는 남편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은연중에 느껴졌다.


풋살을 시작할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아마 육아로 매일이 힘들다고 하는 나에게 집에 오자마자 운동하러 나가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다녀온 후에 내가 더 힘들어할까 봐 걱정됐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니 병원 언니가 말한 바가지 긁지 말라는 말이 떠오른다. 남편에게 잔소리로 바가지를 심하게 긁진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물론 전적으로 내생각이다), 남편은 나의 눈치로 소리 없는 바가지를 이미 많이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적극적으로 체육관을 알아봤다. 주저하는 남편에게 한 달만 다녀보자고 했다. 그나마 남편이 평소 배우고 싶었던 주짓수가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체육관이 있기를 바랐다.


남편은 나에게 거의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체육관을 알아보고 며칠 뒤, 퇴근길에 체육관에 갔다.


체육관에 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배우고 싶던 주짓수는 맞는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오늘 구경할겸 체육관에 왔으니 한 달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퇴근시간에 맞는 운동을 등록해 보겠다고 했고 난 그러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물었다.


나 : "무슨 운동을 등록한 거야?"


남편 :"MMA(Mixed martial arts)"


나 : "응? MMA가 뭐야? 무슨 운동이야? "


남편 : "종합격투기라고 킥복싱도 배우고 스파링도 하고 레슬링도 배우고 그런 거~"


나 : "괜찮겠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남편 : "한 달만 할 거니까. 그냥 해보다 못하겠으면 말지 뭐."


심드렁하게 말하는 거 같은 얼굴과 목소리지만 남편은 지금 열심히 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아내인 나는 다.


말과 목소리와는 다르게 남편의 눈빛에서 풋살을 처음 다녀왔을때와 같은, 반짝이는 눈빛을 봤 때문이다.


그 눈빛을 확인하고 남편의 또 다른 돌파구가 생긴 것 같아 내 마음이 안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그렇게 나의 눈치라는 소리 없는 바가지를 벗어나, 주 4회 MMA(종합격투기)를 시작했다.


사는 재미를 느끼며 남편 뒤통수의 반짝이는 두피와 동그라미 모양이 다시 까맣고 튼튼한 머리카락으로 채워지게 될 날을 희망했다.


그런 날이 오면 남편의 마음에 있는 나에 대한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들과도 이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4개월 전, 남편의 충격적인 탈모이야기를 적어봤다. 결과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서 현재의 남편의 반짝이는 두피에 대한 근황을 말해야겠다.


주사는 탈모 초반 언니의 추천으로 2번 맞았다. 연고도 매일 저녁 바르라고 처방해줬지만 바른 게 채 열 번도 안 되는 것 같다.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 후부터 작은 잔머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점점 머리카락이 굵어지더니 지금은 반짝이는 두피와 완전한 이별을 상태이다.


초반에 맞은 스테로이드 주사가 초기대응으로 적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원형 탈모가 사라진 지금.

나의 기대처럼 남편의 마음속에 나에 대한 불안이 완전히 없어진 건지도 사실 알 길이 없다.

 

한 가지 내가 확실하게 알게 된 점은  가정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암묵적 스트레스는, 그게 애들이건 어른이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음의 쥐약 같은 것임이 분명하다는 것. 그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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