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뜰날 Oct 07. 2022

인간관계

오늘도 힘든 당신에게

84년생 동갑 엄마모임 있다. 15명으로 시작한 이 [84 동갑모임]의 인원이 이제 7년 차에 접어들면서 9명으로 굳어졌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단톡방 이름은 [8409 난로 친구들]이지만 애초에 이 모임은 나에게 난로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몇 년 동안의 여러 가지 서로의 크고 작은 갈등들도 있었고 단톡방을 나가는 친구, 마음이 껄끄러운 친구, 바빠서 연락이 끊긴 친구도 있다.


그런 친구들이 몇 명 나간 후, 코로나 시국을 함께 겪고 지나온 시간만큼 각자의 인생 서사들이 그 안에 농축되어 있어서 그런지 남은 9명의 친구들의 마음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끈끈하다.


친구들 임신과 아이들의 탄생을 함께 축하했고 아이들이 커가는 육아의 시간을 같이 나눴다. 코로나에 걸린 친구 가족에게 가까운 친구들이 문 앞에 음식을 배달해주기도 하고, 서로의 아이들의 연령을 알기에 작은 옷가지와 책을 물려주기도 한다.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마음과 고민에 귀 기울여주고, 개개인의  슬픔과 위로의 이야기가 7년의 기간만큼 공유되고 나눠졌다. 그 시간들이 축적되어 나름의 우리만의 연대감이 형성되어 지금은 어느 정도의 적당한 친밀함과 적절한 거리가 유지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난로친구들 모임의 시작이 나에겐 쉽진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시내에서 조금 동떨어진 외곽에 살고 운전 못하는 뚜벅이 엄마인 나는 시내에 사는 친구들의 교류에 비해 활동의 제약이 많았다. 기회가 되어 모임에 나가게 돼도 말하는 것보다 듣는 쪽에 있었고 내 안의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평범한 것 같지만 평범하지 않았던 나의 가족 관계로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있던 나는 육아를 시작하고 내면의 힘이 약해지면서 관계의 시작을 무서워했다. 거리를 두지 않으면 또 상처가 될까 봐 내 마음의 방어기제가 뾰족하게 날이 서있던 시기였다. 타인과의 관계가 형성될 때마다 미어캣이 되어 나를 공격하는지 안 하는지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어쩌면 나는 늘 건강한 나만의 울타리를 만드는 게 필요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관계 안에서 내 나름의 안전한 거리를 두는 게 동갑모임을 시작한 7년 아니, 그 이전부터도 미리 만들었어야 되는 거였는지도 모른다. 울타리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말이다.


내면의 힘이 약한 시기부터 나름 건강한 울타리가 쳐진 지금의 나의 모습까지 난로 친구들이 내 내면의 모습을 다 알지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10년, 15년이상의 따뜻한 친구들로 인연이 이어지길 바란다.




일상이 모든 일이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관계 안에서 상처받고 관계 안에서 감정이 무너지는 일이 많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관계 안에서 공감받고 치유받는 일도 많다.


결혼생활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에 남편과의 갈등이 깊어져 이혼을 생각하는 친구도 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와의 마음의 거리가 멀어져 도대체 사춘기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친구도 있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에 기분이 나쁘면서도 아이에게 괜한 불똥이 튈까 봐 속 시원하게 말 못 하는 친구도 있고, 잘 지내던 아이 친구 엄마의 말이 오늘 심기를 건드려 올라오는 감정을 참고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걱정하는 친구도 있다.


늘 모든 고민은 관계 안에서 싹튼다.


적당히 맺고 끊는 결단이 필요한 관계도 있고, 다듬고 다져져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계도 있다.


마흔을 바라보니 결국에 남을 사람은 남고 걸러질 사람은 걸러진다는 말을 어느 정도 믿 되는 것도 있다. 애써도 안될 인연은 안되고, 될 인연은 애를 쓰지않아도  계속 이어져 나간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칫 이 관망적인 말은 관계의 책임에서 나의 책임을 쏙 빼는 위험한 생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맺는 모든 관계는 나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게 8할 정도 되는 거 같다. 거기엔 나의 행동과 말도 포함된다.


인간관계에서는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행동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내면의 힘이 없는 시기에 나는 관계의 결정권을 타인에게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선택의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의 말이 미웠고 무례했으며, 그 사람의 행동이 아주 기분 나빴다고 탓했다. 그래서 관계의 마지막을 감당할 힘이 없어 그 관계를 끊고 싶어 했고, 그 사람을 안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이런 상처만 받았다고,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맞다. 그런 탓하는 시기가 길었던 만큼 내면의 힘이 아주 희미했던 시기가 짧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가장 좋은 조건은 내가 먼저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마음이 건강하면 사람의 마음을 왜곡해서 보기보다 사람의 말과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표면적인 사람의 말과 행동보다 그 말의 이면과 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일상에서는 그게 쉽지 않아 의도적으로 연습이 필요한데,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의 감정과 행동을 관찰하는 일이다.


최근에 읽은 책. 정우열의 [힘들어도 사람한테 너무 기대지 마세요]라는 책에는


[인간관계는 사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라는 말이 있다. 대충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관계라는 게 나와 타인과의 관계인데, 관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이 관계의 균형이 타인에게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그럴 땐 균형을 찾기 위해 내가 그 힘든 관계를 왜 힘들어하는지(자책하지 말고 전적으로 내편이 되어서) 나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수학공식의 핵심을 알면 답을 내는 게 쉬운 것처럼 나는 인간관계에도 그런 공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려받고 싶다면 타인에게 배려받기를 바라기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게 먼저다. 타인에게 맞추려 [노오오오력]을 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내 내면에 쏟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관계 공식을 갖다 붙이면 타인과의 관계는 심플하게 그 답이 나온다.


관계 속에서 힘들다면,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초점을 나에게로 맞춰 기꺼이 자신의 마음의 주체가 되어보길 바란다. 나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눈 또한 키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나를 괜히 자책하고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단 얘기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공식도 잊지 마시길.




결론.

자신을 들들 볶지 마요. 내 마음 먼저 챙겨요! 어차피 인간관계는 내 뜻대로 안 된답니다.(정신과 의사 선생님 말을 믿자고요)



작가의 이전글 분노 처방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