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엄마가 아니라 내가 네 엄마인데...
나는 엄마가 두 명이다.
나를 낳아준 엄마, 그리고 내가 낳은 엄마.
누구나 엄마가 세상에 전부인 시절이 있다.
초등학교 때 엄마랑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 "엄마 회사 안 다니면 안 돼?"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고,
엄마 무릎에 누워서 TV를 보는 게 참 행복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엄마와 딸은 친구가 되기 시작한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엄마한테 이야기하는 게 좋았고, 엄마의 하루가 어땠는지도 들을 기회가 많았다. 고 3 때 내가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엄마는 완전한 퇴근을 할 수가 없었고, 집에 가서 그냥 자면 될 것을 굳이 더 공부를 하겠다고 조금 있다가 깨워달라고 하면 기다렸다 깨워주던 사람도 엄마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도 엄마가 되었다.
인생에서 부모가 되는 것보다 더 큰 변화가 있을까? 처음 해보는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느라 하루하루 고군분투였다. 어렵게 구한 아주머니가 사실은 성실히 아이를 돌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닥치는 대로 면접을 보던 때 엄마한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던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있다.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로가 그땐 어찌나 야속하게 느껴지던지.. 매일 상처 받고 아픈 청춘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 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워킹맘으로 살면서 내 모습에서 종종 엄마가 보인다.
유난히 껌딱지였던 아이 덕분에 한 시도 혼자일 수가 없었고, 눈이 저절로 떠질 때까지 늦잠 자보는 게 소원이던 날이 많았다.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던 '내 차'에서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르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었다. 우리 엄마의 하루도 나와 비슷했겠지?
딸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엄마 껌딱지였다.
뭐든 엄마랑 하고 싶고,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했다. 숙제를 하든, 밥을 먹든, TV를 보든 몸의 어디 한 곳은 붙어 있어야 좋다고 했던 아이였다. 농담으로 "누가 보면 우리 샴쌍둥이인 줄 알겠다."라고 할 정도로.
최근 몇 달 사이 나는 엄마가 한 명 더 생겼다.
분명히 엄마 껌딱지였던 딸이 갑자기 나의 엄마로 변신했다. 내가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으면 마치 수험생 간식 챙겨주는 엄마처럼 과일도 물도 가져다준다.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 하면 누구도 방해할 수 없게 집안 식구들을 단속하는 건 물론이고 슬그머니 와서 "고생했어."라고 한다. 엄마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했더니 "쉬엄쉬엄 해. 엄마는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야." 한다. 네가 내 엄마가 아니라 내가 네 엄마인데...
갑자기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든다.
언제 이렇게 컸나 대견함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딸은 계속 딸이었으면 좋겠다. 오마이걸에 열광하고, 짜장면을 먹을 땐 입가에 묻히는 게 당연하고,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하면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그저 '아이'로 조금만 더 있어주면 좋겠다. 코주름이 생기도록 활짝 웃는 모습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
"엄마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다시 딸로 돌아와. 우리 더 많이 안아 주고, 매일매일 행복하게 지내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