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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Apr 08. 2021

글을 쓴다는 것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어떤 감정을 덜어내고 싶어서였다. 해결되지 않는 감정을 글로 적어서 글자와 함께 감정의 덩어리를 흰 백지 위로 옮겨놓고 싶었다. 글로 정의된 감정은 더 이상 내 마음속에서 답답하게 맴돌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못난 마음을 깎고 깎아서 옮겨 적다 보니 편향된 생각을 가진 내가 어렴풋이 보였다. 편향된 생각을 비판하던 내가, 비판에 빠져 오히려 편향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내 모습을 마주 보고 덜어내고 털어서 가벼워지기 위해서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아래의 글은 내가 좋아하는 글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글이다.


귀를 기울이면, 당신이 걸어가는 길의
붉고 푸른 나뭇잎들이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자주 걸음을 멈추고 햇볕과 바람에 마음을 말린다.
강인하다는 것은 가벼울 대로 가벼워져서 투명해지는 것,
중력을 벗어나 날아오는 것이라는 것을 배울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상기한다.
의미로 가득 찬 칸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당신은 아득한 행복에 빠진다.

그 한순간에, 세계가 멎는다.
그리고 그 순간은 , 당신의 심장에, 영원으로 기록된다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황경신-

 


이 책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강인하다는 것은 가벼울 대로 가벼워져서 투명해지는 것'이라고 쓴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인해지기 위해 채운다. 경제력을 부풀리고, 어깨에 힘을 채우고, 목소리의 크기를 채우고, 더 커 보이기 위해 부피를 채우고, 기를 채운다. 나는 늘 그런 채움 이면에 겁쟁이 마음이 보았다. 선을 긋고, 누군가를 정의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부풀리며 강인해 보이려고 하는 모습이 오히려 그 사람의 약함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들을 비판하고 있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행동은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한 가시가 내 속에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나고 보니 결국 그 가시를 꺼내기 위해 만난 인연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속에 없는 것은 보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면에 있지 않는 것은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그것을 꺼내어 가벼워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수 없는 깨달음이 반복되어야 묵직한 깨달음에 닿는다. 굵은 나무를 베어내는 듯한 수천번의 도끼질로 나 자신을 깨야지 아주 조금씩 마주할 수 있는 게 '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도끼질은 혼자서는 어렵다. 중간중간 도끼질의 방향을 잡아 줄 '조언자'가 꼭 필요하다. 책과 대화가 그 조언자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만나자마자 대화를 시작했다. 만나자마자 근황부터 시작해 자연스럽게 깊은 이야기까지 진행되었다. 대화의 속도에 놀라면서도 재미있었다. 최근 나에게 있었던 일과 고민들 , 그리고 글을 쓰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모두 공유했다. 언니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먼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조언을 해주었다. 마치 호수에 조약돌을 던질 때 일어나는 물결처럼 천천히 마음에 와 닿았다. 뿌옇던 시야가 조금 더 맑아졌다. 희미하게 깨닫고 있었던, 내가 보려고 하지 않은 내 모습이 보였다. 언니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해주었다. 직설적이지 않게,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는데 강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글로써 그동안을 정리해놨기에 감정을 싣지 않고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비난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 설명 해준 조언이 고마웠다. 언니는 '판단하지 않는 너의 태도는 좋은 것이지만 스스로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의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다'라고 했다. 실전에서 나는 오판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신중해도 오판하는 마당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기존 관계 외 관계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시간에 기대 서로를 알아가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거슬러 억지로 친해지고 싶어 하는 관계는 불편했고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관계를 나의 시간을 기준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금 어리고 철없던 내가 카페에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대화를 하며 홀가분하게 고민하던 무언갈 덜어내었다. 아이 하원 시간이 되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오늘따라 날이 정말 좋다. 오랜만에 햇살이 정말 강하다. 16도의 포근한 날씨다. 한동안은 따뜻한 봄이 계속될 것 같다.


사진 - unsplash

      - 개인 소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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