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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Apr 05. 2021

말은 참 어렵다.

이해도 오해도 말속에서 피어난다.

사서 : "이제 대출 가능하십니다"

남자 : "아 그럼 반납이 된 건가요?"

사서 : "아니요, 이제 이건 대출이 되는 책입니다."

남자 : "아니요, 제가 기계에 책을 올렸더니 반납 화면이 안 떠서 여쭤본 거예요"

사서 : "네 맞아요. 이제 대출 가능하십니다"

남자 : "아 그럼 반납처리가 다 된 거지요?"

사서 : "아니요, 이건 이제 대출이 가능하신 거예요"

남자 :  "제가 이걸 반납하러 왔는데 기계에 대었더니 아무 반응이 없더라고요.

           오류난 건 줄 알고 왔는데 그럼 반납처리가 된 거지요?"
사서 : "대출이 가능한 책들이에요. 그러니까 반납처리가 된 거겠지요? 정보 주시면 확인해볼게요"


서고에 보관된 책을 반납하러 1층 자료실을 찾아갔다가 들은 대화다. 직원이 한 명밖에 없어서 옆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엿들은 게 미안하긴 했지만 이런 대화는 생각보다 빈번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는 반납을 하러 왔는데 기계에서 반납이  되었다는 안내문구가 뜨지 않아 직원에게 문의한 것으로 보이고, 직원은 이 남자가 대출을 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렇게 서로 한참 대화한 끝에 남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사서에게 닿았고 둘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남자의 '반납이 안되네요'라는 말에서 '반납'이라는 주어가 빠졌던 걸까? 혹은 남자가 '반납이 안되네요'라고 했는데 사서가 듣지 못한 걸까? 아니면...?


요즘 나는 '나의 말이 상대에게 그대로 닿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또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량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요즘은 내가 나의 느낌과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우리는 대화 속에서 상대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는 늘 공유하고 싶은 감정과 생각들이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들이 줄어든다. 그래서 대화가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그 감정을 표출하거나 혹은 혼자서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법을 알아간다. 그럼에도 예전에 모든 것을 공유하던 사람을 만나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이 짧은 시간에 그동안 내가 느낀 것을 압축해서 공유하고 싶어 한다. 앞서가는 마음과 제한된 시간. 이 조건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확률을 높인다. 사실 가장 어쩔 수 없는 오해이기도 하다. 가까워서 오해를 빈 공간으로 놓아둘 수 있는 숙성된 관계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긴 하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나 자주 많은 말을 해서 오해를 쌓는 관계도 있다. 서로 알아간 시간은 은데 좋은 마음이 앞서는 상태. 이 상태에서 쌓이는 오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어봤다. 관계에서 마음만 앞서서 조금씩 어긋나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질 때, 내가 한 말을 주어 담을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후회'라는 것을 한다. 이렇게 생긴 오해는 어떻게 할까? 노력으로도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생기는 순간,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해서 오해할 무기를 많이 만들어준 경우에 '관계 회복'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때 우리가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시간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야속하지만 무언가 불편해질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간에 의지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들으라고 하나보다. 그 당연한 진리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에 매번 깨닫고 배운다. 관계는 둘의 합이고 조화다. 살다 보면 같은 행동이 누군가에겐 좋게 해석될 때도 있고,  좋은 의도가 좋은 의도로 닿지 않는 일도 있다. 그것을 인정하며 신중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상대에게 '마음이 닿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은 누구나 밥을 먹는다. 누구도 기억할 수 없겠지만 모두 지금처럼 밥을 먹기 위해 수천번의 숟가락질을 했다. 그리고 몇 천 개의 밥알을 흘렸겠지. 어떤 도구든 사용하려면 갈고닦아야 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가 보다. 말이라는 도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말이라는 도구로 오해보다는 이해를 돕는데 쓰고 싶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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