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전 관계를 돌아보니 내 주변에 많은 사람은 없지만 소수의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떠올린다. 늘 내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면서, 이 관계가 고마운 관계라는 걸 알아챈 나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건강한 관계를 통해 건강한 관계를 알아보는 눈이 생겼는데 한 명만 생겨도 순환구조를 이루는 것 같다. 건강한 관계 자체가 나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건강한 관계란 내가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고 상대의 상태도 그대로 인정하며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관계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쁜 아이 구별법'에 대한 과도기에 있다. 으른처럼 대처하진 못하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나쁜 아이'가 상호존중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아이 마음이 있다. 누구와도 관계를 끊기 싫고 누구와도 잘 지내고 싶은 착한 아이 증후군은 나쁜 아이를 구별하는 눈을 흐려지게 한다.
가끔 관계를 하다 보면 유쾌함과 털털함이 무례함과 동의어가 될 때가 있다. 그때 나쁜 아이 센서를 발동시켜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유쾌함과 털털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무례함은 그런 것들의 탈을 쓰고 오는데 그럴 때 참 애매해진다. 그것이 비집고 들어와 나를 정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정의된다가 생각보다 답답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집단에서 내 이미지가 형성되면 그것은 되돌리기가 어렵다. 서서히 내가 정의되기도 하지만 어딜 가나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고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를 컨트롤하고 싶은 성향이 반영된다. '누구도 정의하지 않는 친구들'과 만나보니 반대되는 그 집단의 분위기가 더 확대되어 내게 다가왔다. 뒤돌아 보니 내가 많이 정의된 곳에서는 나도 상대를 끝도 없이 정의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사회의 동물이다. 나는 이미 사회에 적응한 사람이었다. 싫어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닮아가고 있었다. 사람은 이렇게 모순적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는 사물을 즉자 존재라고 말했다. 그 자체로서 충족된 존재다. 하지만 인간은 대자 존재다.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붙잡아 정의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누군가 나를 즉자 존재로 정의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감옥에 갇혀버리고 만다. 그게 명사든, 형용사를 나와 대체되는 문장으로 정의되는 순간 그 공간에서의 내 행동은 정의된 명사, 형용사, 문장의 필터를 거치고 해석된다. 우리는 스스로가 대자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타인에게는 내 존재는 객체다. 내 가능성은 타인에 의해 제한되고 순간을 붙잡힌다. 마치 메두사와 눈을 마주친 것처럼 그 순간이 돌처럼 굳어버린다. 타인과의 관계는 늘 이런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어디에도 정도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 정도가 극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글을 읽고 쓰는 이유라 생각한다.
즉자 존재와 대자 존재에 대한 사르트르의 철학은 '닫힌 방'이라는 희곡에 가장 잘 담겨있다. '닫힌 방'에서는 급사라는 인물을 통해 세 사람이 어느 방으로 안내되고 이 세명의 고백과 갈등을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담았다. 가르생은 극의 마지막에 <아 정말 웃기는 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라는 말을 남긴다. 즉 닫힌 방이라는 지옥에서는 타인의 시선이 형벌 도구이다. 우리는 타인에 의해 정의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대타 존재로서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은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에 개의치 않아야 할 근육이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오해하고 오해받는다. 오해 좀 받는 게 뭐 어때?라고 말할 수 있다. 맞다. 하지만 그냥 넘겨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게 남의 일이면 쪼잔해 보여도 내 일이 되면 짜증 나는 게 삶의 진리다. 누군가를 쉼 없이 정의하고 정의되었던 나도, 앞으로 누군가를 쉽게 정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누가 뭐라든 나를 믿는 근육을 더 많이 키워야지.
명심할 것. 우리는 누구나 대자 존대다. 누가 뭐래도 누구도 나를 정의할 수없다. 나의 가능성은 오직 나만 믿어줄 수 있다. 나를 믿는 것에서부터 건강한 관계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