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회색빛으로 둬도 되지 않을까요?

중립에 대하여...

by 말로이

20대 때 영어회화를 자유롭게 하는 카페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보통 영어학원과는 다르게 목표나 진도 없이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날도 오후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2번 룸으로 들어가 7명에서 8명 남짓한 사람들이 영어 선생님을 중심으로 책상에 앉아있었습니다. 짧은 영어인사가 끝나고 선생님이 주제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선생님 (스페인사람) : 자, 오늘은 원자력(nuclear energe)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원자력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국인들은 저마다 찬성과 반대의 포지션을 잡고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물론 완벽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모두가 완벽하게 한쪽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요. 한참 떠듬떠듬 영어, 그리고 영어 단어들의 나열이 계속되었는데 그걸 조용히 지켜보던 외국인 선생님이 이야기했습니다.


외국인 선생님 (스페인 사람) : 여러분, 물론 찬성과 반대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지금 더 나은 해결책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원자력발전에 대해 완전히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곳에 의견을 내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지요. 흑과 백으로 머물지 마세요. 우리는 회색지대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흑과 백 중에 하나를 골라 논리를 세워가던 제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나도 모르는 새에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이 시간을 계기로 의견을 나눌 때 함께 생각해 보는 것 , 더 나은 의견을 도출해 보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끔, 매끄러운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맞고 틀리고의 공식에 빠져있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내가 스스로 그 판단대 위에 올라가지 않으면 나는 판단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상대의 의견이구나 하고 쉽게 넘겨버립니다.


맞다 틀리다의 공식에 빠져있을 때 오히려 내가 판단대위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판단대에서 내려오면 됩니다. 대화가 편안해집니다.


외국인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언어를 회색의 영역으로 가는데 쓰면 됩니다. 맞다, 틀렸다가 아닌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말이지요.



이것 아니면 저것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느끼며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회색빛도 괜찮습니다. 내가 늘 옳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당장 옳아 보이기 위해, 진짜 옳은 길을 선택할 기회를 놓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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