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가 준 환기

by 말로이

'워커홀릭'과 '적당히 일하자' 중에 어떤 쪽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워커홀릭인 편입니다. 사주도 남자사주라 육아를 하고 있을 성격이 못되어서 한 번은 이혼을 할 거라고 했습니다. 초혼으로 계속 살려면 일을 해서 자리를 잡고 결혼을 늦게 해야 한다나요? 다행히 서른 초반부터 마음공부를 해서 그런지 남편과 꽤 사이가 좋아 이혼은 면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일을 하지 못하는 우울감이 조금은 있기는 합니다. 아동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도 심리사회 발달단계 40살 이후로 획득해야 하는 도전과제를 생산성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사람에게 생산성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생산성은 부모로서 자식을 잘 양육하거나, 소속된 공동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자신의 경험과 자원을 이용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나 후세대에 기여하는 것. 이런 생산성을 획득하기 못하면 침체기에 머문다고 합니다.


육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느껴져서 저에게는 생산성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 다른 행복감, 책임, 나의 역할이랄까요? 저는 사회에서 일을 하고, 소통하면서 에너지를 받는 편입니다. 확실히 일을 할 때는 E의 모습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요.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배우고, 실천하고 있지만 세상에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조직과는 또 다른 리그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불평도 할 수 없고, 탓이라고는 내 탓밖에 할 수 없습니다. 회사라는 공간은 누군가 탓할 사람이 많아서 참 좋았는데 말입니다. 구조욕, 재정욕, 사람욕 하고 나면 속은 시원했거든요. (아직도 직장동료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애정도 하지만요.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유치원학원에 일을 하러 갔습니다. 학원원장님이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우셨거든요. 헬프를 하셨습니다. 그날은 푸드아트를 하는 날이고 월말이라, 유난히 바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전부터 가끔 도우러 간 적이 있어서, 미술선생님과 수다도 떨며 즐겁게 일했습니다. 유치원학원에 가면 가장 신나는 건 아이들 이름을 모두 부르며 가방을 메어주고 소통하는 것이었는데요. 2025년이 되니 아이들이 완전히 바뀌어서 이름을 아는 아이들이 적더라고요.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줄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대신 눈을 쳐다보며 가까이 오는 아이들은 한 번씩 안아줄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집니다.


그날은 유치원 앞에 있는 건강한 빵집에서 생지를 미리 받아두셨더라고요. 위생장갑을 끼고 빠르게 아이들 수만큼 생지를 동그랗게 만듭니다. 학원 아이들 수만큼 생지와 모양틀, 앞치마, 위생장갑을 준비합니다. 선생님이 수업할 동안 여분의 쿠키를 더 만들어 놓습니다. 초콜릿쿠키, 버터쿠키 각각 한 개씩과 아이들이 만든 초콜릿쿠키와 버터쿠키를 넣어줄 예정이거든요. 그 와중에 전화가 오거나 아이들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줍니다. 카드를 보냈다고 전화 온 엄마들 결제카드를, 아이들 가방에서 찾아서 결제하고 다시 가방에 넣어둡니다. 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꼭 가방을 빠트리고 간 아이들이 있습니다. 유치원으로 부리나케 뛰어가서 가방이나 미술작품이나 잠바 등을 챙겨줍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퇴근할 시간이 되면 안 쓰던 근육들의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그만큼 평소에 앉아서 지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이렇게 밀도 있게 보낼 수 있구나를 느낍니다. 이 느낌이 좋습니다. 시간의 존재를 모르는 시간들이요.


그렇다면 정교사자격증도 있겠다 (2급) 유치원 보조교사로 취직해서 빠르게 시간을 보내면 될 텐데,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시간의 사치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시간을 보냈을 때 제 다짐이 다시 환기가 됩니다. 제대로 하자! 하고요. 일하는 느낌이 꽤 좋습니다. 아마 쉬다가 오랜만에 나가서 그렇기도 합니다. 간절할 때는 일 하는 것 자체나 너무나 행복하다가 조금 익숙해지면 배부른 투정을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배부른 투정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들이 커갑니다. 저에게 스스로 쥐어준 면책기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둘째가 저학년이 될 때까지가 제 면책기간이거든요. 그 시간까지 후회하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다시 다짐해 봅니다.


육아라는 본업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본업을 충실히 조율해 나가야겠습니다. 저에게는 둘 다 본업입니다. 제가 그렇게 정했으니까요. 면책기간까지 열심히 살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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