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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18. 2021

직장, 입장 차이를 배우는 공간

일 외에도 배울 건 많다.

20대 때는 영업조직에서 스텝으로 일했다. 일을 구하는 사이트에서 검색하니 직책은 주임이고 퇴근 시간이 일정했다. 경기도 본사에서 면접을 봤기에 사무직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 오니 주임은 잡일 담당자였다.

 

본사에서 면접을 마치고 현장에 첫 출근을 한 날은 본사와 다른 분위기에 얼떨떨했다. 공간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다시 이동을 하고 자리를 잡은 순간 상사가 처음 나에게 한 일은 쓰레기통의 위치와 집기들의 위치를 안내해주는 것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때는 어렸고 6개월 만에 구한 직업이 쓰레기통 청소와 집기 관리자가 된 것 같아 억울했다. 영업조직 스텝의 특성상 전국에 나와 같은 직책의 동료들이 있다. 매일 함께 일하지 않지만 매일 사내 채팅 창을 통해 소통한다. 그래서 다른 사업단에서는 뭐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안다. 모든 사업단이 내 사무실의 분위기 같지는 않았다. 조금 억울했지만 관행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계약직이었다. 내 예상과는 업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도 본사에 가서 회의를 하면 제법 회사원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것에 취해 당장 그만둘 수는 없고 일단 다녀보기로 했다.  


내가 일하는 구조를 설명하자면 상사가 두 군데로 나누어진다. 본사로 가면 내가 사원이 된다. 그리고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상무직위를 가진 상사가 있었다. 본사의 사업단 최종 보스는 상무보의 직위를 가진 본부장이었다. 현장에서 내 직책은 주임이였다. ( 서류상 팀장과 사원 사이 쩜오의 역할 같다) 나는 단장님과 지점장님 업무를 돕는 역할을 했다. 현장에서는 단장이 내 상사였다. 나는 본사에 있는 상사와 단장의 입장 차이 사이에서 살았다. 드라마 미생에서도 현장과 본사의 입장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영업 조직에서 이 문제는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두 입장 차이를 경험하며 일했다.


그런데 입장 차이가 상사들 사이에서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가장 입장 차이가 적은 사람은 같은 직책을 가진 주임들이었고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팀장과 지점장님과도 입장 차이가 있었다. 전국에 7개 사업단이 있고 본사에 인원이 있으니 그만큼의 입장 차이가 존재했다. 기획팀과 소통할 때, 운영팀과 소통할 때, 교육 팀과 소통할 때마다 언어는 달라졌고 개인마다 이해하고 있는 정보가 달랐다.


입장 차이


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몇 년을 일하면서 가까이서 얘기하다 보니 '정말 말도 못 하게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거다. 그냥 회사라는 공간이 구조적으로 그렇더라.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사방이 적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기싸움을 한다. '이걸 왜 이렇게 일하지?' '너무 비효율적이야'라고 생각했던 일도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면  상황적으로 끄덕여질 때가 가끔 있다. 그리고 이유는 대부분 예산이다.


입장 차이를 이해하게 된 건 결론적으로 좋은 사람들 덕분이다. 예를 들어 상사들이 많은 만큼 배울 점도 다. 그나마의 부조리함을 억누를 수 있었던 건 사정을 이야기하며 업무를 설명해주는 상사덕분이었다. 억울한 책임이 어떤 한 사람의 설명으로 입장 차이 이해되기도 했다. 나에게 집기의 위치를 알려준 상사에게서도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다른 회사를 다니며 모든 걸 설명해주는 상사는 생각보다 드물다는 걸 알았다. 



결론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일수록 많은 입장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건 대부분 사람이 나빠서도 못돼서도 아니다. (못된 사람도 있) 그런데 기본적으로 입장이 다르다는 건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소통이 가능하다. 입장 차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도돌이표 대화로 서로의 기만 뺏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니 이슈가 생기면 각각의 입장에서 소통해보려 노력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당신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이해시켜야 해결되는 일도 많았다. 사람마다 경험치와 이해도가 달랐기에 언어를 달리해야 했는데 번번이 실패하며 깨우쳤다. 상대의 언어로 대화한다는 건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번번이 실패해서 깨우친 게 '입장 차이'다.


그걸 '섬세한'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웬만하면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 웬만하면 해결해주고자 하는 이들도 못하는 일이 생길 때 여기까지는 선의로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섬세하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썼다. '저 사람이 엄청 나쁘다기보다 그런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라고...   


적고 보니 '입장 차이' 이 말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도 어떡해. 이해해야 내가 편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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