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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21. 2021

만학도의 깨달음 : 칭찬의 칼날

얼떨결에 시작한 공부에서 깨우친 칭찬의 기술

*만 25세 이상을 대학에서는 만학도라 한다.


얼떨결에 다시 대학엘 갔다. 유아교육학과 정교사 자격증을 따놓으면 좋겠다는 어머님과 이모님의 의견에서였다. 마침 아이도 5살, 3살로 유아이기도 하고 일도 그만두었기에 깊은 생각 없이 시작했다. 하고 잡이 열정 15년 차인 내가 이번만큼은 시작부터 열정이 식어있었다. 내 의지로 시작한 일도 아니고 때마침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시작한 공부였기에 시작부터 언제 3년이 끝날까?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나는 만학도 주말반이다. 보통 어린이집에 종사하고 있어 주말만 출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는데 나처럼 주중에 육아를 해야 해서 주말에 오시는 분들도 있다. 2주 차 수업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 교육을 듣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화순에 사는 언니가 그랬다. "OO 이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합리화를 잘한다고" 맞다. 나는 "피할 수 없다면 나를 설득하는 편"이다.


주말반은 몇 과목은 온라인으로, 몇 과목은 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 오프라인으로 수업하며 한 교시마다 한 마디씩 마음에 와 닿는 배움이 있다. 학습적인 부분 외에도 교수님들이 해주시는 말씀들이 참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유아교육과의 특성상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주옥같은 이야기가 많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계속 자극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3교시 유아 교육론 시간에는 총알 같은 에너지의 교수님이 수업을 하신다. 세련되고 강한 이미지의 교수님이다. 검은색 칼 단발, 아치형 눈썹과 눈매를 강조한 아이라인 화장, 작은 얼굴에 오뚝한 코 작은 입을 가지고 계셔서 도도해 보이나 말씀을 하는 순간 강의실을 향해 총알이 꽂힌다. 친절하지 않는 허스키한 목소리, 하지만 친절하고 정스러운 말들.


"여러분, 쪼꼬렛 가지고 가세요! 우리 남편이 학생들 주라고 사줬으니까 하나씩 먹으세요. 점심 먹고 나서는 쪼꼬렛 먹어야지 피곤해서 안된다."


강한 포스, 그리고 한국 아줌마의 정스러움이 합쳐진 교수님의 유쾌한 수업. 이렇게 유쾌할 수 있기에 오후 1시에 몰려오는 쓰나미 같은 졸음을 그나마 이겨낼 수 있었다. 대학 강의가 매력 있는 이유는 수업 중에 교수님들만의 삶의 철학을 들을 수 있어서다. 유아교육과에 큰 열정이 없던 나도 이 교수님의 커다란 열정 앞에서 불이 옮겨 버릴 것만 같다. 몇십 년을 이 분야에 종사했을 텐데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음이 부러웠다.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다. 나는 아주 넓고 얕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순간 이 얕은 흥미가 합쳐져 저렇게 빛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기에 내가 나를 믿어주기로 약속하며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유아교육의 목표를 설명하다가 교수님이 이야기하신다.


"여러분, 유아 아이들 앞에서 칭찬 잘하셔야 합니다. 미술 수업 후에 <이거 누가 만들었어? 이거 진짜 잘했다 100점!> 이런 말을 왜 합니까? 누가 만들었으면 뭐해요? 그럼 나머지 아이들은? 이거 100점이라고 말하면 나머지 아이들은? 100점 안 맞은 아이들은 어떡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까? 구체적으로 칭찬을 해주되 100점, 혹은 제일 잘했다는 말로 칭찬하지 마세요! 나머지 친구들 그때부터 100점 받으려고 할 거고 100점 받지 않으면 낙오자 된 느낌 받습니다"  (기억에 의해 조금 덧붙인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뎅- 머리를 울리고 마음을 울리고 가슴을 울렸다. 그동안 내가 했던 행동들이 필름처럼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첫째를 칭찬하던 순간 둘째의 행동. 둘째를 칭찬하던 순간의 첫째 시선. 나는 그동안 한쪽을 칭찬하면 상대를 찌르는 칭찬을 하고 있었구나. 과한 리액션으로 칭찬하는 것에 집중해 나머지 아이를 고려하지 못했구나.


그러면서 회사에서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리액션이 큰 편이다. 특히 긍정적인 상황에서의 리액션이 큰 편이라 중립의 리액션도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아마도 좋은 것에는 크게 칭찬하기에, 칭찬하지 않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라고 연결시키도록 했던 것 같다.  그동안의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특정 누군가를 칭찬하는 동안 칭찬하는 사람만을 보고 있었다. 주변에서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을 고려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솔직한 내 친구가 한 명 떠올랐다. 그 친구는 단체 채팅방에서 나의 칭찬이나 동의를 구하고서야 이슈를 마무리했다. 내가 대답이 없으면 "OOO 말해봐라! 왜 말 안 하니!"라고 말해서 대답을 듣곤 했다. 내가 "아 ㅋㅋㅋ굳이 왜!"라고 하면 "네가 동의 안 하면 허전하다"라고 말을 했는데 여기까지 들어보면 내가 얼마나 좋은 것에 리액션이 컸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 친구가 왜 이러나 했는데 내가 원인제공을 한 거였구나.


좋자고 한 칭찬이 양면의 칼날이 될 수 있다니 어쩌면 비판만큼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는 것이 칭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은 단 둘이 있을 때 큰 리액션과 즐거운 에너지로 해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크지 않은 리액션으로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칭찬은 무조건적인 긍정의 도구가 아니었다. 어떤 좋은 도구도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의도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니 매사에 조금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저녁 나는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칭찬했다. 톤부터가 잔잔해진다. 까랑까랑한 교수님의 목소리만큼 마음은 시원하게 맑아지고 우리 집 분위기는 왠지 더 차분해진 기분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시작하길 잘했다"


내 합리화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미래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만학도의 3월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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