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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May 15. 2017

프랑스남편과 함께 한 가정 출산기

프랑스식 결혼생활 中

나우리 나금 이야기


*나금: 제약영업을 거쳐 영어교육회사에서 영업교육을 담당했어요. 두 번의 결혼으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프랑스 남편과 딸을 두었고, 남프랑스 출신이자 프랑스학과 교수인 쟝과 서울에서 살고 있답니다.   



자연주의 가정 출산을 준비한 나금. 하지만 양수가 터지고 36시간이 지나도록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과연 출산은 어떻게 마무리되었을까요?





양수가 터지고 36시간이 지났다.


양수가 터지면 곧 아이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깜깜무소식이다. 결국 세 번째 항생제를 맞기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았다. 어제 아침과 저녁에 이어 오늘 아침까지.. 10시간 간격으로 항생제를 맞고 태동을 관찰했다. 가진통은 오가는데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할 기미가 없다. 아.. 기다리는 시간이 누적되자 피곤도 쌓이고 있다.


"음... 오늘 오후까지 기다려보고, 그래도 기미가 없으면 결정하는 게 좋겠어요."


원장님은 촉진제를 맞고 유도분만을 진행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산모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네."


어떻게 아셨나 싶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원장님의 촉은 예리했다.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만약 유도분만을 한다면 가정 출산을 포기해야 했다. 촉진제 주입은 병원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쟝은 불안한 눈치였다. 일단 판단을 미루고 항생제 주입과 태동을 체크하기 위해 출산센터로 이동했다.


나는 자연주의 출산을, 그것도 가정분만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첫아이 훈이도 자연주의 출산으로 낳았다. 너무나 황홀한 경험이었다. 진통제, 촉진제를 비롯해 굴욕 3종 세트인 제모, 회음부 절개, 관장을 거부하고 진통을 견뎌냈다. 그리고 따뜻한 물속에서 아이를 만났다. 막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몰려오는 행복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다. 오랜 시간 파도처럼 오가는 아픔을 견뎌내고 아이의 몸이 내 자궁을 빠져나오는 마지막 순간이 지나면 후련함과 기쁨만 남는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이뤄지는 출산은 고통을 쾌감으로 승화시켰다. 나는 둘째 애나도 자연주의로 출산하기로 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더 나아가서 이번에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출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양수가 터지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르자 가정분만을 확신했던 나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막 양수가 터졌을 때까지만 해도 여유가 넘쳤다. 밤 9시였다. 물이 새는 느낌이 났다. 엉덩이 아래쪽으로 손을 넣으니 옷이 흥건했다.


"Ça a commencé!(시작했어요!)"


옆에 앉아 있던 조슬린과 프랑스와에게 말했다. 쟝의 부모님이었다.

우리는 그때 7월 말의 무더위를 이기고자 한강공원을 찾았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바로 1분 전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한 상태였다. 편의점으로 물을 사러 간 쟝에게 전화를 해서 양수가 터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허겁지겁 달려온 쟝은 주문을 취소할까 고민했다.


"아냐. 짜장면, 탕수육 다 먹고 가서 낳자."


나는 조산사님에게도 전화를 걸어 상황을 공유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둘째 출산은 진통이 시작되면 순식간이라 잘못하면 길 위에서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셨다. 아직 진통은 시작되지 않았고 나는 조금 상기된 채로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곧 애나를 만날 거야!!'


카톡방이 난리가 났다. 우리는 배달 온 자장면을 다 비우고 탕수육까지 말끔히 먹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이럴수록 침착하고 느긋해야 해.'


마침 반포대교 아래에서 음악과 함께 분수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임신 7개월 즈음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며 욕조를 깨끗이 청소했다. 출산을 위해 몇 달간 발품을 팔아 준비한 욕조였다. 덩치 큰 쟝과 내가 함께 들어가서 앉아도 여유가 있을 만큼 넉넉한 사이즈의 새하얀 욕조. 출산준비는 즐겁고 조용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가로세로 120cm의 욕조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 아이는 기약이 없다. 밤새 잠도 못 자고 양수가 터지고 얼마나 기다릴 수 있을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촉진제를 맞고 유도분만을 시행한다. 하지만,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일주일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단지 늦어질 뿐이지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양수가 터지고 51시간 후에 아이를 낳았다는 사례도 찾았다. 그래 나도 조금 더 기다리자.


하지만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초조한 기색이다. 마망 조슬린도 촉진제 사용이 괜찮다고 이야기하시고, 게다가 의사이시니 그 말에 힘이 실리는 듯하다. 파파 프랑스와는 왜 빨리 안 하냐고 독촉하는 게 틀림이 없다. 내가 사투리 심한 파파의 프랑스어를 못 알아들어서 다행이지.. 다 이해했으면 이렇게까지 의연하지 못했을 거다. 못 알아들으니까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계속 버티는 셈이다. 하지만 상황을 전달하며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쟝은 점점 피곤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태동검사를 하면서 쟝이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집에서 하고 싶지..? 휴우... 그런데.. 난 오늘 오후가 지나면, 못 기다릴 것 같아."

"그러게... 하아...."


태동은 힘차게 느껴지는데 뱃속의 아이는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엄마 뱃속이 너무 편안한가 보다.


"자갸.. 51시간 기다린 사람도 있고... 일주일도 기다린대.. "

"그러다가 애기 잘못되면? 다 자기 책임이야!"


이 인간이!!!! 예민해진 쟝은 하면 안 되는 소리를 해버렸다. 지금 응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배신을 때려? 날 비난하려 하다니!! 서럽다. 아아 서러워. 울고 싶다. 아니, 이미 난 울고 있었다.


"자기야.. 아아.... 내가 실수했어. 미안해. 그런 마음, 아닌 거, 알잖아... 응? 울지 마... 애기한테 안 좋아.. 미안해.. 잘못했어. ㅠㅠ"


난 더 서럽게 울었다. '애기가 안 나오는 게 내 잘못이냐고..!! 내가 얼마나 간절히 가정 출산을 준비했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 응?'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공부는 첫 번째 출산에서 이미 충분히 했다. 산전 교실에도 참여했고 독서모임에도 나갔다. 출산은 물론 육아, 그리고 심리학 서적까지 분야를 확대해가며 많은 책을 읽었다. 출산의 경험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연구부터 제왕절개와 범죄율의 상관관계까지.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연구와 이론을 접하면서 나의 호기심을 채웠고, 전문가 수준에 가까워졌다. 출산 후에는 자연주의 출산 전도사가 되어 활동도 하고, 친구의 둘라가 되어서 출산을 돕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자연주의 '가정 출산'은 간절한 꿈이었다. 출산 계획서를 꼼꼼히 작성했고, 쟝과 공유하며 내가 원하는 출산을 명확히 알려주었다. 내 방에서 진통하고, 내 욕조에서 낳을 테니, 당신은 음악과 촛불을 준비해다오! 부모님은 집안 어딘가에 설렘이 가득 찬 담소를 나누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려 주시면 된다. 아, 훈이도 함께 동생의 탄생을 지켜봐야지. 내가 원하는 건 그게 다야. 그냥 기다려줘!


결국 내가 이겼다. 아니, 싸울 필요도 없었다. 오후가 되자 진진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후 5시 즈음해서 병원을 다시 찾았다. 진통의 강도가 전과 달랐다. 조산사님은 내진을 하더니 진진통이 맞음을 확인해주셨다. 마지막 항생제를 투여하고 우리와 함께 집으로 와서 출산을 준비하기 시작하셨다. 이제 언제 애나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의 출산을 준비 중이신 조산사님과 아들 훈이



(5월 말 출간 예정인 '프랑스식 결혼생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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