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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 Apr 17. 2017

우리 집을 지켜주세요

아이들에게 상상의 놀이터를

"쾅쾅쾅!"

"훈이야~~ 노올자아~~!!"


화창한 4월의 어느 날. 동네 꼬마 녀석들이 대문을 두드렸다.  


"이 녀석들! 문 부서지겠다. 그런데 어쩌지? 지금 훈이는 할머니 댁에 가고 없는데."

"괜찮아요~ 우리 아줌마 집에서 놀아도 돼요?"


어허 이런 염치없이 귀여운 녀석들을 봤나.


"그래그래. 그럼 너희 2층에 가서 놀래?"

"네에~~!!!"


1층 방에서 곤히 잠든 둘째를 깨우지 않으려는 심산으로 꼬마들을 2층으로 꾀어내었다. 세 명의 악동들은 신나게 계단을 뛰어오르더니 훈이의 방으로 돌진한다. 이내 온갖 장난감들을 거실로 꺼내어 들고 테라스까지 점령해버렸다.


"이 집은 너무 신기해요!"

"훈이 언제 와요? 우리 또 놀러 와도 돼요?"


아파트에서 사는 녀석들의 눈에는 우리 집이 신기한 놀이터다. 집안을 마구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있고, 2층에는 하늘이 보이는 테라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방은 제각기 다른 크기의 창문으로 개성을 표출하고 있다. 게다가 아무리 시끄럽게 뛰어놀아도 잔소리 한 번 듣지 않으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게 단독주택은 아이들을 사로잡는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매력적인 우리 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악동들이 뛰어노는 테라스
주말이면 아빠들은 바베큐를 하고 아이들은 놀이 삼매경



우리 가족은 1999년 겨울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아파트 생활이 답답했던 어머니는 늘 주택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 공무원 아버지의 쥐꼬리만 한 월급을 20년 가까이 모은 결과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셨지만 단독주택의 꿈은 버리지 않으셨다. 어느 날, 홀린 듯 들어간 부동산에서 이 집을 소개받았고 바로 다음날 덜컥 계약을 해버리셨다. IMF 직후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방배동의 단독주택을, 대신 융자를 잔뜩 끼고 사게 되신 거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 집은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


오르락 내리락 재미나는 계단



우리 가족은 살면 살수록 더욱 이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방배동 언덕 위의 조용한 단독주택은, 퇴근 한 아버지에게 더할 나위 없는 휴식공간이 되었고, 30년 이상 동네를 지켜온 동네 주민들과의 교류는 집에 대한 애착을 키워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집은 나와 내 동생을 교육시키고 결혼시키는데 보탬이 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60 평생을 사신 부모님이 평생을 걸쳐 이룬 꿈이자, 삶의 의미였으며 행복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나와 내 남편이 이 집에서 살고 있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은퇴하신 아버지는 서울을 떠나 시골의 전원생활을 원하셨고,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우리 부부에게 전세를 놓으셨다. 그렇게 집은 대를 이어 가족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프랑스인인 나의 남편은 나보다 우리 집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는 한국에서 13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아파트에 살아본 경험이 없다. 그에게 아파트란 개성과 여유가 없고, 프라이버시도 지켜지지 않는, 살고 싶지 않은 공간이다. 차라리 하늘 아래 옥탑방이 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재건축 조합이 설립되었다. 우리 집을 포함한 이 구역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세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날 이후로 안정적인 삶의 터전은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재건축을 반대한 우리 아버지 앞으로 명도소송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건설에 찬성하지 않으려면 집을 팔고 나가라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결사반대하던 20여 가구의 집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지치기 시작했다. 몇몇 이웃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대를 이어 살아온 집을 팔고 동네를 떠나버렸다. 방배동 마을 한편에서 조용히 여생을 마감하려 했던 아래 골목 아저씨도 30년 살아온 집을 팔고 결국 다른 터전을 찾아 떠나버렸다. 그리고 재건축을 희망하는 투기꾼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본의 논리는 마을을 분쟁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여전히 재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몇몇 굳건히 버티고 있지만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송의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없고, 집주인의 뜻과 상관없이 집을 조합에 내어주고 떠나야만 한다. 우리 동네 대다수 주민들에게는 단독 주택 한 채가 평생 모은 유일한 전재산이다. 그런데, 이젠 등 떠밀려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화창한 날이면,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한다.


동네 곳곳에 봄이 한창이다
멋드러진 소나무집
낮은 산이 보이는 골목


우리 집 담벼락의 고양이. 아파트가 들어서면 이 녀석은 어디로 가야할까



담벼락마다 우거진 나무 위에서 새가 지저귀고, 길 고양이가 오가며 인사를 하고, 꽃과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이 가득한 집들을 보노라면 일상의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동네를 왜 더러운 달동네라 칭하며 아파트로 대체하자고 하는 걸까. 깨끗하게 청소하고, 낡았다면 고쳐 쓰면 될 일이 아닐까? 유럽의 건물들이 100년이 지나도 아름다운 이유는 지속적으로 건물에 투자하고 정성을 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는 빌딩의 부수고 다시 짓기보다 재생을 고려해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 신화는 여전히 작동하면서 소박한 우리의 삶을 침범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작은 마당과 집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도 남편은 집안을 페인팅하고, 나무를 손질하고, 벽에 못질을 해가며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자기야.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집인데...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런 소리 마. 그래도 우리가 사는 집이야. 하루를 살아도 예쁘게 살자."


우리 아버지가 평생 땀 흘려 일궈 온 우리 집을, 이젠 남편이 정성을 다해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 부디 우리 동네를, 우리 집을 지켜주세요.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남편은 늘 익숙하게 고쳐댄다
오래 된 벽돌에 색을 입히자 분위기가 대변신
안방 침대에서 보이는 뷰. 한 가족의 소소한 행복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가치란 말인가.


목련이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인사하는 듯
우리 동네, 정원이 아름다운 집

by 나우리 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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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솔직한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여자, 엄마, 한국인, 프랑스남편을 둔 아내로서의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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