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서 난 더 섹시해
앞으로 사흘 후면 무대에 선다. 2년 만에 노래를 한다니 설렘 반 걱정 반이다. 사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빠서 공연을 마주하는 감정상태가 어떤지 느낄 겨를조차 없다. 아이는 네 발로 기다가 의자나 책상을 잡고 일어서서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상태다. 잠시 한 눈 팔면 이마와 뒤통수를 콩 찍고 앙앙 울어댄다. 하지만 바쁜 육아 가운데에도 연습은 놓칠 수 없다. 무대에 오르면 완벽에 가깝게 공연을 해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나는 2015년 봄 공연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밴드 활동을 쉬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밴드 라온은 공연 뒤 해체하기로 결정되었고, 때맞추어 쟝을 만나 연예를 시작했었다. 그 뒤로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사실 이쯤 되면 다시 음악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헝클어진 머리에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애를 돌보며 밥 하는 아줌마가 되면 외출이 낯설어진다. 홍대라는 가장 힙한 장소 자체가 어색하기도 하다. 그런데 출산 후 3개월 되던 어느 날인가부터 남편은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자기. 나랑 약속했어. 약속 지켜. 아니면 사기 결혼이야. 사기꾼. 자기꾸운~♥"
"뭐... 뭐라고?"
결혼 전에 나는 쟝과 약속을 했다. 중단했던 밴드 활동을 아이를 낳고 재개하기로. 사실 마음속에는 '뭐 가짓꺼. 약속이야 뭘 못하겠어. 막상 아이 낳고 기르다 보면 정신없을걸?' 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애를 안 길러봐서 저런 소릴 하지..'하고 남편을 얕잡아 보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이 프랑스 남자란 인간은 자신의 철학대로 살아야만 하는 놈이었다.
프랑스식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아이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삶도 중요해.'이다. 남편은 이 원칙을 누누이 강조한다. 부모가 아이의 노예가 되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고 힘을 주어 말하고는 한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모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고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와 대화를 하면서 "맞는 소리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이렇게 쿨하고 멋진 부모가 되는 게 프랑스식이야?"하면서 맞장구를 치곤 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일도 막상 실천하려면 쉽지가 않다. 때문에 남편이 나에게 밴드 활동을 다시 하라고 했을 때, 정작 기쁘기보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자기야. 오고 가는 시간까지 하면 적어도 4시간이야. 그것도 매주. 그동안 젖먹이 감당할 수 있어?"
"애나 울 거야. 그시간 동안 난 지옥이겠지. 자기가 다녀오자마자 바로 젖 물리면 되잖아. 괜찮아. 시작해. 대신 즐겁게 하고 와. 알았지?"
부인의 흥에 겨운 삶을 위해서 3-4시간 정도 힘든 것쯤이야, 내가 감당할 수 있어! 이게 진정한 남자다운 모습이렸다. 난 그 모습에 잔뜩 감동하기도 하고, 아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나를 옭아매는 건 스스로 육아라는 감옥에 갇혀버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밴드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홍대 연습실로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다시 시작할까 봐. 팀 만들어야 될 거 같아."
"그래? 알아볼게."
"하나도 안 급해. 겨울 지나고 시작해도 돼."
그런데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멤버는 구성되었다. 결국 지난 11월, 애나 출생 후 4개월. 애 젖도 못 떼고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반년이 흐르고 연습한 곡들을 무대에 올릴 시간이 코 앞에 다가왔다. 비록 처음 쟝을 만났을 때의 쭉빵 몸매는 아니지만... 나름 집에만 처박혀 있는 우울한 엄마가 아닌, 자신감에 넘치는 보컬리스트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매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연습을 하러 홍대를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를 떼어 놓고 외출하는 그 순간은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집을 나서기 직전 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남편에게 아이를 던지듯이 내맡긴 채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고는 했다. 연습을 마친 후에는 혹시 아이가 배를 곯을까 싶어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전쟁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이 또한 우리의 일상이 되고, 나와 남편은 손발을 아주 잘 맞추고 있다.
내가 노래를 다시 시작하자, 집 안에는 더 많은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는 엄마 덕분인지 아이는 일찌감치 흥이란 걸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 음악이 나오면 표정이 밝아지고 음악을 들으며 한참 혼자 놀기도 하며 공연곡의 멜로디를 따라 허밍 하기도 한다. 아직 옹알이 수준이지만 리듬과 코드가 정확해서 놀랍다.
늘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남편. 때론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가 옳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협박 덕분에 나는 또다시 무대에 오른다.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내가 어느 때보다 더 섹시하고 멋진 보컬리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공연도 잘해보자! 락앤롤~~~ 베이베!!
by 나우리 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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