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적응 기간에 생긴 일
애나 생후 10개월. 드디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감격 또 감격!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적응 프로그램은 5주에 걸쳐서 이뤄진다. 1-3주는 양육자와 함께 20분, 40분, 1시간으로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4주 차부터는 양육자 없이 친구, 선생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지금은 2주 차, 40분 적응 기간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친구들,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조금 구석에 앉아 애나를 지켜보았다.
"어머니, 애나에게 잠시 화장실 간다고 하시고 나갔다 오시겠어요?"
"아, 네. 애나야. 엄마 잠시 나갔다 올게. 잘 놀고 있어. 금방 만나~"
선생님은 나에게 애나가 혼자 있는 연습을 하도록 20분 정도 자리를 비워 달라고 하셨다. 난 갑작스러운 요청에 조금 놀라서 구석에 무릎 꿇고 앉은 자세로 애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크크큭 어머니 갑자기 왜 이렇게 사무적으로 인사하세요. 갑자기 애 두고 나가라고 하니까 놀라셨나 봐요. 굳으셨네요."
"그.. 그러게요. 갑자기 화장실을 가라고 하셔서 당황했어요. ㅋㅋ"
그렇게 갑작스럽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쟝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인사를 하고 나가도 울지 않는 애나가 기특하다며 자랑을 하고 사진도 보내주고 한바탕 소란을 떤 다음에, 무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은행일을 보기로 했다.
20여분 뒤 어린이집에 다시 돌아와 보니, 애나는 여전히 방긋거리며 잘 놀고 있다. 이 순간 아이가 어찌나 기특한지 모른다. 아이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 사회로 나가는 첫걸음을 떼고 있었다.
"어머니 내일은 좀 더 오래 나갔다 오세요. 애나한테 병원 간다던가 어디 다녀온다고 하고 나갔다 오세요."
그런데, 잠깐. 난 아프지도 않고, 화장실도 가고 싶지 않은데? 사실이 아닌 거짓 변명을 만들어내라는 말이 순간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럼 엄마가 잠시 커피 마시고 온다고 할게요~"
이번엔 선생님이 당황하셨다.
"어머니 커피 드시고 온다고 하신다고요? 어머~^^;;"
"왜요? 뭐가 잘못 되었나요? 엄마가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
나는 부모들이, 특히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도 부모가 아이를 떼어 놓는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서 변명거리를 만드는데 익숙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굳이 거짓 변명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일을 하거나 아프거나, 뭔가 중대한 사유가 있어야만 아이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걸까? 엄마도 자신을 돌볼 자유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잠시 떨어질 수도 있는거다. 아이에게 그 의사를 전달하는 게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으며, 아이도 그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는 내 생각을 전달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매우 성격이 좋으신 분이고 우린 웃으면서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와 싸움이 있을 때마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표현이 생각났다.
"어휴 내가 그렇게 널 키웠는데 고작 이 대접이냐."
처음으로 엄마가 불만을 표출하셨던 건 내가 대학생이 된 이후의 어느 날이었다.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셨던 건지 키울 만큼 키웠다는 생각이 드셨던 건지 난생 처음 이 말을 뱉으셨다. 하지만 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이 꽤 컸다. '대접'이라는 단어 안에는 보상받기 바라는 심리가 숨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키웠던 지난 세월과 희생에 대한 보상. 그 마음을 대학생은 되었지만 아직 어른도 아니고 애도 아닌 상태인 나에게 요구하는 모습이 몹시나 낯설었다. 그건 내가 엄마를 대접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처음 인지했기 때문이다. 늘 자식을 돌보기만 하는 엄마의 모습이 익숙한 나에게는 일종의 폭탄선언 같았고, 그때부터 자식으로서 갖는 불효에 대한 죄의식이란 것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방법밖에 없으셨을까? 왜 진작 나에게 부모도 여유가 필요하고 즐거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심어주지 않으셨을까? 엄마도 무조건 희생하기보다 당신의 즐거움을 함께 추구하셨다면 지금에 와서 이런 보상심리는 발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식인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넘게 나와 내 동생을 길들여 놓은 건 엄마인데, 이제 와서 우리에게 대접을 요구하시다니. 엄마는 한순간에 독립성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 내 눈 앞에 서계셨고 동시에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못난 딸이 되어버렸다.
애나에게 엄마가 커피를 마시러 간다고, 또 매주 목요일 밤은 밴드 연습을 하러 나갈 거라고, 때론 친구와 수다를 떠는 시간이 필요하니 잠시 혼자 놀아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건강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포장한 말과 표현은 진실을 왜곡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의 욕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또한 부모의 책임이 아닐까.
애나는 고작 10개월에 불과한 갓난아이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휴식을 갖길 원하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이 된 애나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엄마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지 않을까? 아니 그전에 이미 '엄마 가서 쉬고 와'라고 이야기해주는 마음 넉넉한 딸이 되어있겠지.
by 나우리 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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