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리 May 17. 2017

장인어른의 사랑을 독차지한 프랑스 사위


"나금이 너.. 만나는 남자 생겼니?"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어느 날이었다. 쟝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데이트를 하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잠도 안 자고 나를 기다리신 게 틀림없다.


"이번엔 어느 놈이냐. 아무 남자나 만나고 다니지 말아. 네가 제대로 시집을 가야 우리도 마음 편히 두 다리 뻗고 잠을 잔다. 어휴..."

"..."


딸의 이혼 이후 부모님은 한숨을 달고 사셨다. 당사자인 나는 애써 괜찮은 척, 부모님 앞에서 웃음 지어 보였지만 두 분의 어두운 얼굴을 뵈면 죄인이 되어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내 방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쟝을 만났고 그 뒤로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미소를 띠고 집에 들어오는 내 표정을 보고 엄마는 뭔가 낌새를 채신 모양이었다.


"어.. 엄마. 괜찮은 사람을 만난 거 같아. 걱정하지 마."

"뭐 하는 놈인데?!!"

"그.. 어.. 음... 교수야 대학 교수. 불문과 교수."


일단 그놈의 학벌과 직업을 빌어 엄마를 안심시켰다. 부모님한테는 교수, 의사 등등 전문직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부터 들이밀어야 경계의 눈초리를 내려놓으실게 분명했다.


"몇 살인데? 아직도 장가를 안 갔어?"


속고만 사셨나... 아 그렇지..  내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기꾼으로 보이는 그 마음을 난 십분 이해했다. 부모님께 첫 사위는 아끼는 딸을 불행하게 만든 사기꾼 같은 존재와 다름없었다.


난 새로 만나는 남자가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만 빼고 있는 데로 사실을 말씀드렸다. 엄마는 딸에게 전해 들은 조건만으로 일단 안심하는 분위기다. 만남을 지속하라는 허락 비슷한 것을 받고 조금씩 쟝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훈이랑 벌써 만났는데, 훈이가 좋아해. 아저씨하고 따라다니고 참 좋아해."


쟝과 훈의 첫만남



엄마의 눈이 반짝였다. 손주를 아껴준다니 그보다 더한 게 어딨겠어. 그렇다면 만나보자.


"엄마... 그런데... 한국 사람이 아니야. 외.. 외국인. 프랑스 사람이야."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인내심이 지대하신 분들이셨다. 일단 딸을 아끼고, 훈이를 아낀다니 두고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쟝이 부모님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쟝은 그의 집이 위치한 빌라의 루프탑에서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생선 바비큐를 준비하고 프랑스에서 가져온 가장 아끼는 샴페인을 땄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내 아들이 함께 하는 낭만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우린 이만 가야겠네."


아빠는 생선 바비큐가 다 익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 비싼 샴페인도 바닥을 드러내지 못하고 첫 만남은 끝이 났다. 후에 엄마에게 듣기로는 그냥 불편하셨다고 한다. 코도 크고 키도 크고 눈은 갈색인 외국 남자와 저녁을 먹는다는 게 지극히 한국적인 두 분에게는 가시방석이었나 보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나. 이번에는 아빠가 쟝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셨다. 딸이 낯선 외국 남자와의 연애를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이고, 밝아진 표정을 짓고 다니는 걸 보니 다시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드신 모양이었다.


전통 한식 식당에서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첫 번째 만남과는 달리 아빠가 좀 더 수다스러워지셨다.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자이신 우리 아버지는 쟝에게 한국 역사를 이야기 하기 시작하셨다. 그것도 어려운 단어를 섞어가며... 쟝이 한국에서 13년 동안 살았고, 곧잘 한국어를 한다고 해도 역사와 관련한 단어는 알아듣기 힘들게 분명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서양세력과는 일체의 교역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고..."


듣는 내가 진땀이 났다. '저리 어려운 단어를 쟝이 어찌 알아들을까요. 아빠?' 나는 소리 없이 불만을 외치고 있었고, 쟝은 알아듣는 건지 마는 건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듣고 있었다. '쟝, 밥은 목으로 넘기고 있는 거야?'라고 묻고 싶은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발 질문을 던지셨다.


"자네, 아는가? 1866년에 한국땅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아빠!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하시면 어떡해요? 나도 모르는데!"


내가 원망하는 어투로 아빠를 질타하고 있는데 쟝이 말했다.


"네 알아요. 병인양요요."


헉. 이 남자 뭐지?  


"오 그렇지! 자네 잘 아는구먼!"

"프랑스 관련한 역사니까 알아요. 강화도에 프랑스 군대 들어왔어요."


아빠는 흥이 나기 시작하셨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 놈을 만났구먼!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려운 역사이야기와 질문을 쏟아내는 아버지와 그에 맞장구를 치는 이 괴물 같은 남자를 지켜보며 조용히 밥을 먹었다. 내가 애써 도와주지 않아도 두 남자 사이에 필이 통하기 시작했다.


"호호호"


엄마도 옆에서 좋아라 웃으셨다.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시니 같이 좋으신 게 틀림없었다. 어휴.. 일단 오늘은 합격. 그 날 이후로 아빠는 나보다 쟝을 더 찾기 시작하셨다. 한국인보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쟝이 기특하기도 하고, 그보다 쟝의 센스와 태도에 반하신 게 틀림없었다.


3대가 함께 한 주말농장




"나금이가 쟝 말을 잘 들어야 돼."

"나금이는 쟝이 하라는 데로 해."

"나금이가 쟝한테 잘해야 해."


때론 서운할 정도로 쟝의 편을 드시는 정도가 되셨다. 아무튼 쟝은 고지식한 학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주말이면 쟝과 나, 훈이를 데리고 헌인릉 구경도 가시고, 역사가 기록된 공원에도 가시고, 그때마다 평소에 다독을 통해 쌓아오신 지식을 자랑하듯 늘어놓으시며 쟝에게 한국 역사를 가르치시기 바쁘셨다. 그리고 나아가 쟝에게 된장, 간장에 김치 담그는 법까지 전수하시려 드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쟝은 장인어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위가 되었다. 오죽하면 쟝이 나에게 프러포즈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는 날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리기까지 하셨을까. 결혼식 날도 엄마와 함께 와인잔을 부딪치며 끝까지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심지어 사위와의 러브샷도 아빠의 제안이었다.


쟝은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가시는 날이면 꼬박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아버님, 어머님, 잘 주무세요!!"


그의 한국말은 여전히 조금씩 어색하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사랑을 받기에는 완벽하다. 그렇게 나의 든든한 프랑스 남자는 정에 넘치는 장인어른의 완벽한 사위가 되었다.


프랑스 사위의 김장 담그기!



by 나우리 나금


여자이자 엄마, 한국인이자 프랑스 남편을 둔 아내로서의 삶을 이야기 한 책, '프랑스식 결혼생활'의 예약판매가 진행 중입니다. 제멋대로 섹시하게 그리고 행복해진 세 여자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책만 판매하는 주소: https://goo.gl/LgJCxj

- 작가와의 만남까지: https://goo.gl/j3ZBj5


매거진의 이전글 희망으로 가득했던 어린이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