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가장 싱그러웠던 나의 스물일곱 여름날이었나 보다. 휴가지의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귀여운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이 셋의 엄마가 되고 싶다.'
그렇게 꿈을 꾸었다.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세 명의 아이들을 품에 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었다. 나의 20대는 가장 아름다웠지만, 마음 속은 늘 풍랑이 일었다. '무언가'에 '도달'하기 위해서 언제나 바삐 살았지만, 마음은 허무했고 난 늘 목마름을 느꼈다. 반에서 1등을 해야 했고,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 했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좋은 학점을 따야 했으며, 입사 후에는 좋은 평가를 받아 적당히 승진을 해야 했다. 목표한 바를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등바등했지만 이상하게도 늘 목표량을 채울 수가 없었다. 조금 부족한 상태로 다음으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삶을 산다는 불안감을 안고 지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적당한 대학에 가고, 적당히 만족할만한 회사에 입사했지만, 바쁜 회사생활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스물일곱 살의 나는 그 다음 단계인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에 집중할 때였다. '무미건조한 삶을 빨리 보내고, 넉넉한 마음과 여유에 넘치는 엄마가 되어야지'하는 마음으로 나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따뜻한 30대, 40대를 꿈꾸고는 했다. 그때는 그 꿈이 지금 삶을 도피하기 위해 꾸는 '몽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첫 번째 결혼으로 아들 훈이를 품에 안았지만, 품기가 무섭게 아이와 헤어졌다. 양육권과 친권을 전남편에게 주고 홀로서기를 하면서 '아이 셋 엄마'라는 꿈은 자연스레 인생에서 지웠다.
엄마가 된다는 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갑작스럽게 배워버렸다. 자연스레 더 이상의 아이는 내 인생의 사치이자 부담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나의 꿈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소녀감성으로 가득차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한 우리 집'을 그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무섭게 현실적으로 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껏 꿈만 좇다가 이렇게 되지 않았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 시절의 내 인생은 쓰디썼다. 인생을 반추하고 잘못된 삶을 고쳐 봐야지 하고 지나간 시간을 끄집어내어 되짚어보려 했지만 감히 지레 겁을 먹고 장롱 속 한편에 처박아 버렸다. 그리고 내 의식 또한 함께 집어넣고 한동안 꺼내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우울'이 자리를 차지했다. 빛도 스미지 않는 심연-깊고 깊은 우울의 바닷속에 웅크리고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다행히 걱정해주는 친구 한 둘은 곁에 있었다. 가장 우울했던 어느 날들 가운데, 나를 안쓰럽게 지켜보던 한 친구가 할머니 신이 든 용한 점쟁이가 있으니 한 번 만나보라고 권했다. 갈 길을 알려줄지도 모른다면서.
"예전에 점쟁이가 내 인생에 이혼은 없다고 그랬거든? 나 안 믿어."
"아냐, 그래도 가봐. 용하다니까. 너 지금 답답하잖아."
"시간 낭비 돈 낭비 아니고? 내 고집 알잖아. 들어도 한 귀로 흘린다니까."
어찌나 등을 떠밀던지, 우정을 핑계 삼아 결국 한 번은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쯧쯧쯧... 어휴. 내가 다 답답하네. 아이고 가슴이야! 어휴"
사람을 앞에 두고 이렇게 한숨을 쉬어대는 건 예의가 아닌데, 아니 이 할머니 신이 노망이 났나 보다 싶었다. 60대로 보이는 점쟁이는 날 보자마자 한숨을 푹푹 쉬어대더니 이어서 하는 말이 내 인생이 답답하단다. 사주에 남자가 없으니 남자를 기대하지도 말고 그저 첩살이하며 사는 게 마음 편한 인생이란다. 그렇다고 술장사를 하기에는 정신이 고고하니 커피 장사를 하라는 말이 1시간 동안 들은 말 중에 가장 건설적인 해답이었다.
노망 난 신이 괘씸하여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다. 당장에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싶은 마음에 끝까지 자리를 잡고 해주는 말을 다 들었다. 그리고 점집을 나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억울했다. 내 인생을 이렇게 재단하고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
비록 이혼을 했지만 그래도 아직 내 인생의 꿈은 남아있었다. 이혼이란 이별의 한 방식일 뿐, 이별하지 않으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다만 힘들 뿐이었다. 거기에 얽매일 내가 아니었다. 상처가 아물면 다시 일어서서 내 일도 하고 다시 사랑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그 날 하루는 눈물로 망쳐버렸다. 내 인생도 분명 장점이 있을 텐데, 점쟁이의 말대로라면 나는 하류 인생으로 쓸쓸하게 생을 마친다는 이야기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절망적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난 아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
"이렇게 예의 없는 점쟁이는 처음이야! 내 생전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어!"
하루 종일 씩씩거리며 화를 내다가 문득 이혼 전에 점을 보러 가면 내 팔자가 좋다고만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이렇게 안 좋아진 거지? 사주팔자도 변하나?' 점쟁이가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사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뀐 것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느 순간 '아마도 내가 불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울한 기운을 뿜어냈기 때문일 거야'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정말 그랬다. 거울 속 내 얼굴은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예리한 친구 하나는 나에게 웃어도 슬퍼 보인다고 말했었다. 지치고 두렵고 피해의식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이런 얼굴이라면 다시 사랑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일도 성공하지 못할게 틀림없었다. 내가 봐도 못난 표정인데 누가 날 사랑하고 신뢰하고 존중하겠는가. 아들에게도 부끄러웠다.
갑자기 "네 인생 비극이야!"라고 솔직히 말해 준 점쟁이 할머니가 고맙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용케도 내 안의 반항심을 건드리는 법을 알았던 게다. "할머니가 말 한대로 되도록 내 인생을 그냥 두지 않겠어!!" 호되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정말 점쟁이의 말대로 되고 말 거라는 두려움도 앞섰다.
아무튼 나는 상처입은 자존심을 변화의 힘으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들을 되짚어보고 단점을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성격과 행동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인생은 반복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일단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도전이자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 성격의 어떤 점 때문에 잘못된 결혼과 이혼을 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 황소고집. 주변에서 모두 말려도 내가 옳다고 믿으면 고집을 꺾지 않는다. 조언을 얻기도 하지만 결국 내 확신을 굳히기 위해서였다.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하셨지만 내가 좋다며 밀어붙였다. 분명 반대하신 이유가 있으셨는데 그때는 들리지도 않았다.
두 번째 이유, 추진력이 로켓포 같다. 오래된 친구가 나에게 늘 하는 말이 주변에 나보다 추진력이 좋은 사람은 못 보았다고 한다. 그만큼 집중하고 실행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문제는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추진력이 붙으면 개박살 난다는 사실이었다.
세 번째 이유, 책임감이 강하다. 내 선택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책임을 져보려고 애쓴다. 남편이 능력이 없으면 내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겠다고 나선다. 지나치게 미련할 정도로.
네 번째 이유, 순진하다. 나름 순진 무구한 면이 있다. 그래서 사람을 잘 믿는다. 잔정이 많아서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지 못한다. 문제는 세상은 냉정하다는 것. 결국 되돌아오는 상처는 내 차지다.
단점을 분석하고 보니 그동안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이 이해가 되었다. '아, 내가 이래서 그 당시 이런 선택을 했구나..'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물론 환경적인 요인들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것이 내 운명을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내 안에서 문제를 찾다보니 세상을 향한 원망을 줄일 수 있었다. 사람이란 게 단번에 변화할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다 보면 서서히 운명의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하는 믿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1년, 2년 세월이 흐르고 난 후의 나의 모습은 점쟁이 할머니를 만났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일단 밝아졌고, 고집보다 경청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자연스레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추진력은 유지하되 정확한 판단과 선택을 했는지 심사숙고하는 습관이 생겼다. 책임감은 일단 버리지 않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미련하게 나를 희생하는 삶까지는 가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순진함 대신 순수한 마음만 가져가기로. 나이 먹고 세상살이 거칠게 하다 보면 자연스레 버려지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변화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종종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는 한다. 하지만 섬찟 놀라 뒤돌아 본다. 그러면 어김없이 과거의 내가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세상 혼자 잘난 줄 알고 호기로움에 넘치고 예민하기 짝이 없는 고집불통. 그녀가 다시 나와서 지금 가진 행복마저 망가뜨릴까 봐 아찔하다. 그녀를 버리기 위해 난 또다시 나를 내려놓는다. 스스로에게 냉정해지는 작업, 자기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가까스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새로워진 나를 만난다.
'운명이란 정해져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로 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생이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명이란 그렇게 될 법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맞지만 내가 마음먹는 순간 얼마든지 변화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물론 이 평범한 진리를 죽어도 깨닫지 못하고 한평생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격이 바뀌면 내 마음이 바뀌고 주변이 변화한다. 인맥이 달라지고 행운과 기회가 찾아오고 그렇게 행복이란 게 찾아온다. 명예와 재물을 바란다면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 인생은,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정해진 대로 사는 게 맞다.
그래서 지금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예뻐진 나는 친구로부터 프랑스 남자 쟝을 소개받았고, 그와 사랑에 빠졌으며 결혼을 하고, 둘째를 낳았고, 작가가 되었다.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첫째 훈이도 여유를 갖고 마음껏 사랑해주는 엄마가 되었고, 가장 설레는 일은 내년 봄이면 세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서른 일곱이 되어있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10년 전 꿈이 현실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날 미치도록 화나게 만들었던 노망 든 점쟁이 할머니가 생각난다.
'당시의 지치고 우울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그날은 당신이 맞았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미래는 철저히 틀렸답니다. 대신 내 운명을 내가 개척하는 힘을 내도록 자극을 주었다는 사실은 인정할게요!'
그렇게 나는 내 운명을 바꾸었고 새롭게 쓰고 있다. 어쩌면 나는 정해진 방향에서 단 1도를 비틀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것들이 변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비결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이다.
살아보니 인생이라는 게 참 어렵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 들 때도 있고, 미물로 태어나 감정 없이 살다가 사라졌으면 할 때도 있다. 이미 쓰인 팔자대로 사는 것도 힘겨운데 이걸 바꾸려 애쓰고 있으니 매일을 고전 분투하는 건 더 힘들다. 그런데 정해진 데로만 사는 건 재미없고 억울하지 않나. 이왕 한번 사는 인생, 내가 원하는 데로 살아봐야지. 힘겨워도, 변화한 인생의 루트 위해 한 번 올라서면 그 기분도 참 아찔하니 즐겁다.
뒤돌아보건대, 지난 10년은 정해진 내 운명을 파악하고 받아들이고 훌쩍 성장하라고 보내온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제대로 내 인생을 개척해 볼 시간이다. 나에게 남은 생애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게 죽는 거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 작가로서, 아내로서, 세 아이의 엄마로서의 새롭게 쓰고 있는 내 인생의 다음 10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