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리 Aug 28. 2017

국적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

프랑스 남자랑 살기

국제결혼을 하고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서로 다른 문화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세요?"이다.

사실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에는 언어 문제로 대화가 원활하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해도 개의치 않았다.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게 이해되고 용서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길러진 사고방식을 확인할 기회가 더 많아지고, 갈등의 소지도 더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기 때문에 매 순간 긴장하지 않으면 싸움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반대로 '우린 다르다'를 전제로 살기 때문에 좋은 점도 많다는 생각을 한다. 늘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촉을 세우고 귀 기울여 듣기 때문이다. 판단하기 전에 대화를 먼저 시도하는 것을 습관화하지 않으면 싸움이 일상이 된다. 때론 정말 사소한 일 조차도 오해와 다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내 인내심과 아량을 키우는 것이 결혼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비교적 빨리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프랑스 여행 후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우리 부부는 매우 지쳐있었다. 20시간이 넘는 귀국길에 임신 중인 부인을 대신에 아이까지 챙겨야 했던 남편은 말 그대로 파김치 상태였다. 인천공항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내가 애정을 담아 말했다.
 
"자기,  피곤하지이~~좀 자~~."
"아냐, 나 괜찮아."
"그래도 피곤할 텐데. 조금이라도 자~, ?"
"자기, (째려보며) 왜 자꾸 명령해?"
"???"
 
남편은 나의 표현을 '명령'이라고 받아들였고,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안 자겠다는데 왜 자꾸 자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으며, 심지어 왜 명령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하는 남편의 모습이 낯설었다. 피곤한 남편을 위해 내가 아이를 챙기겠으니 마음 편히 눈을 붙이라는 의미였는데 말이다. 순간 이 인간이 배려해줘도 모르네.. 싶었고, 한국 사람 같으면 "어 고마워~ 한숨 잘게."라고 반응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대화를 나누면서 남편이 한국말의 뉘앙스를 화자의 의미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14년 살았고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남편이기에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마저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뉘앙스, 동일한 문화 속에서 느끼는 감성이라는 것이 이 프랑스 남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내가 익숙한 문화의 방식대로,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대화하며 살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는 계기였다. 반대의 경우로, 내가 서운했던 순간들을 기억해보니, 알고 보면 남편의 의도를 오해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실컷 화를 나거나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다가 남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화낼 일이 아닌데 민망해 죽겠네.'하며 얼굴을 붉혔었다. 그 뒤로는 어떤 일에든지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사실을 배웠다.
 
이런 경험들이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다른 점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선물에 대한 의미도, 아이의 양육방식도 우리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어느 순간 말하기 전에 한 템포 쉬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말로 서로에게 상처 주는 경우가 줄어들고 이해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여유가 생긴다.
물론 '인내심'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나란 인간이 지독히도 참을성이 없고 성질이 고약하다는 사실을 종종 깨닫고는 한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말이지!
 
사실 다른 생활방식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당히 크다. 프랑스식 파티는 좋지만, 헤어지는 인사를 30분씩이나 하는 프랑스인들을 이해하는 건 힘들었다. 그들은 '다음에 봐!'하는 말로 시작해서 30분 이상 헤어지는 인사를 나눈다. 지금이야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기다려주는 여유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전에 '이제 가자~'라고 미리 말을 꺼내놓는 지혜가 생겼지만 처음에는 가자고 하고서 왜 안 가는지 참 당황스러웠다. 특히 임신했을 때는 그 기다림이 어찌나 길던지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짜증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는 했다.
또한 프랑스 현지에서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자면 아직까지도 침대에 신발을 신고 눕는 건 용납할 수가 없고(비록 침대 밖으로 발이 나가 있어도!), 아이들이 옆에 있어도 개의치 않고 담배를 피우는 프랑스인들의 흡연 습관은 죽어도 이해가 안 된다. 그 밖에도 다른 생활방식이 얼마나 많은지! 순간 혈압이 솟아오르지만 화를 내면 내 손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 안의 부처님을 부르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워댈 수밖에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즉시 상대방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꼬집어 말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에 일단 참는다. 다만 그 자리를 피해 '이해가 안 되는데 말이야..'하면서 남편에게 내 생각을 말하고는 한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 못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하기보다는, 대화를 갖고 '서로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이해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사는 경우, '당연히'라는 부사를 앞에 붙이고 행동하고 말하는 게 더 쉽다. 이런 경우 이렇게 행동해야지, 이렇게 말해야지 등등 같은 문화권에서 의례 기대하는 행동방식이 있다(때론 도덕과 윤리라고 불리는). 사실 이미 우린 전혀 다른 각자, 개인이다. 삼십 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살아온 남녀의 생각이 동일할 리가 없다. 커플이 싸우는 경우, 가장 쉽게 느끼는 서운한 감정이 바로 "이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정말 이해 못하겠다."아닐까? 사실은, 우리는 늘 그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모르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국적이 다른 사람과 사는 경우, 늘 '우린 다르다'라는 사실을 상기해가며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조금 더 긴장하고 때론 더 싸우면서 조율해 나가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뿐이다. 결국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하려면, '우린 달라.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그러니 서로 더 많이 이해해야 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다시 얻는다. 그게 바로 국제결혼의 가장 큰 단점이자 장점 아닐까.



 
 

어울리는데 다른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