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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Sep 25. 2017

선물과 사과

프랑스 시누이 이야기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큰 시누이를 소개하자면 현직 변호사에 프랑스 노블과 결혼했다. 첫째는 줄(남, 10살), 둘째는 막심(남, 7살), 셋째는 쓰리즈(여, 4살)이고 마흔에 애가 셋인데도 여전히 예쁘날씬하다. 파리에서도 부유층 밀집지역인 16구에 비싼 땅 값을 조롱이라도 하는 듯 넓은 집은 내부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인테리로 장식했다. 같은 건물 다락방에 상주 도우미가 살고 있어서 집안일을 비롯한 아이를 돌보는 일을 도맡아 해준다. 10년 가까이 일을 봐준 도우미 덕에 바쁜 변호사 스케줄을 가지고도 애를 셋 씩이나 낳아 키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애 셋의 또 하나 일등 공신은 바로 우리 시부모님인데 큰 시누이는 짬만 나면 부모님께 아이 셋을 맡기고 여행을 가거나 모임에 나간다. 워낙 철두철미하게 계획하는 지라 3달 동안의 '부모님께 애 맡기기 스케줄'이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부모님 찬스를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실 프랑스에 오면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여행을 다니고 싶었던 계획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어서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뜬금없이 시누이의 소개를 하는 것은 바로 세 달 전 별장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이었다. 별장 거실에서 쓰리즈와 마고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작은 탁자 위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아무도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 다고 주말 내내 심통을 부리던 막심이 바깥에서 주어온 막대기를 흔들다가 그만 마고의 눈밑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사과하라고 다그치는 시누이에게 막심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투덜거리기 시작했고, 설사 그랬더라도 사과를 하라니  마지못해 '미안'하고 나가버렸다. 마고의 눈밑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눈 주위는 피부가 약해서 상처 나기 쉬운데..."


"아니야. 약 발라주면 금방 없어져. 걱정하지 마. 내 친구 아이도 눈가에 상처 났는데 크니까 없어지더라"


나의 걱정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둘러대고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간식을 먹고 있는 마고에게 막심이 스티커북을 내민다. 부모한테 혼났는지 뾰로통한 모습으로


"오늘 마고 생일 아닌데? 사과하는데 선물은 필요없.."


"고마워."

엄마의 마음도 모르는 마고는 스티커북을 받아 챙긴다.

'그래, 네가 좋으면 됐다...'

두 달 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는 마고의 상처를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없어지긴 개뿔! 시누이는 궁금하지도 않은가 봐, 마고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네!"


"안 되겠다.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자. 본인도 알고 있어야지."


-막심이 마고에게 만든 상처가 아무리 기다려도 없어지질 않네

-미안, 근데 막심이 가한 상처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남편의 언어 선택이 조금 거칠었는지 시누이는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한 달 후

일요일 점심, 시부모님 댁

시발점은 모르겠으나 남편이 시누이에 한 달 전에 보낸 문자 이야기가 나왔다.


"너 너무하는 거 아니야?  말이 심했잖아. 막심이 가한 상처라니? 내가 그 문자 받고 얼마나 놀랐는 줄 아니? 그동안 아무 얘기도 안 하다가 삼 개월 전 얘기를 그렇게 불쑥 꺼내서 얼마나 당황했는데"


"삼 개월 전 얘기라고? 우리는 매일 아침, 마고 얼굴 볼 때마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그럼 진작 얘기 하지 왜 이제야 그러는 건데?"


"없어질 줄 알았지. 하루하루 기다린 게 여기까지 온 거야!"


"애들 크면서 다 다치고 그래. 우리 애들도 얼굴 여기저기에 자국 있어. 다 크면서 없어져. 그래. 미인대회는 못 나가겠다."


언성은 점점 높아지고, 대화는 유치해진다. 어느 나라나 말싸움은 다 이렇구나...


"물론이야. 애들은 다 다쳐. 그 걸 가지고 그러는 게 아니야. 그동안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더라? 우린 진심 어린 관심과 사과가 받고 싶었다고."


"사과? 그 날 막심이 사과했잖아?"


"그래서 말인데 8유로짜리 스티커북 내미는 게 사과니?"


"뭐야? 고작 8유로 짜리라서 그러는 거야? 더 비싼 거 못 사줘서 미안하다."


"그 뜻이 아니잖아."


"그래 이나, 말해봐? 스티커북이 뭐가 문제야?"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한 거지 선물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사과하면서 주는 선물이 뭐가 문젠데?"


"그 날 막심이 정말 마고한테 미안해했다고 생각하니? 엄마 아빠한테 혼나고 기분 나쁘고, 부모가 쥐어준 선물 내민 게 다야."


"갠 7살 남자애야. 애들은 다 그래."


"아니. 3살 된 레오폴은 안 그래. 잘못한 거 없다고 버틸 때도 있지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설명해주면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그래~너희 참 훌륭한 부모다!"


진짜 문제는 사실 두 집 사이의 가치관과 교육관의 차이에서 생긴 것 같다.

선물을 주면서 하는 사과가 정말 나쁜가? 선물에 진심이 가려지나? 시누이를 이해해 보려고 아무리 반문을 해보아도 돈으로 뭐든 해결이 가능한 그녀의 가치관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사과하면서 주는 선물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 그녀를 보며, 그녀와 나 사이에 언어 그 이상의 높은 장벽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다행히도 나는 용서의 뜻으로 물질적인 선물을 해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자식들에게도 선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슈퍼를 가도 습관적으로 하나씩 사주는 일이 없었다. 이건 한번 망하면 길이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안 사주면 절대 조르지 않는다는 기적 같은 법칙이다. 적어도, 내 두 아이는 그랬다. 아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는 예외다. 교육은 그들의 몫이 아니니...

내가 다른 아이에게 줄 선물을 살 때는 그 집에 놀러 가거나, 그 아이 생일이거나 혹은 고마움의 증표였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선물이라.


 7살 아이에게 다친 아이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시간을 내어 설명을 해주는 것보다 스티커북을 고르게 하는 게 더 쉬웠던 그녀의 교육관도 참 마음에 들지는 않다. 종교 간섭 다음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남의 교육관임을 깨달은 지금은 입조심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바쁜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자기관리도 하고, 그 와중에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가면서 바쁘게 살지만 막상 아이들에게 돈을 제외한 다른 것은 투자할 수 없었던 시누이. 그녀의 인생도 너무 중요했기에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지 하면서도. 그녀의 잘못된 교육관으로 우리 아이들까지 영향을 받는 것 또한 참기 힘들다.

아이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실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남편과 나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사과를 한다고 해서 약자가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더 큰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해줬고, 피해자(?)의 입장을 설명해주거나 혹은 그 입장에 놓이게 해 주었다. 교육이란 게 사실 말이 더 쉽지만 어렸을 때 한 번 잘 잡아주고 일관성 있게 지켜 나가면 되는 것이니 이만큼 간단한 공식도 없다.

'사과'는 사실 친구 사이에도 중요한 장치이다. 특히나 아이가 어릴 때 또래 아이들과 같이 놀다가 다쳤는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면 엄마의 마음도 병이 들고 엄마의 친구 관계까지 망칠 수 있다. 경험담이다.


오늘 나는 프랑스에 온 지 4개월 만에 시누이와의 말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가뜩이나 언어적 장벽이 있는 데다 직업도 변호사인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지 못한 억울함으로 새벽 2시까지 잠을 못 이루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아름다운 시댁이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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