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인 Jan 08. 2024

우리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다.

잇선 <이상징후>

잇선은 꽤 독특한 히스토리를 가진 작가다. 그는 2015년, 여전히 대표적인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 웹툰에서 <우바우>로 데뷔한다. 연필을 베이스로하는 독특하고 귀여운 화풍, 한편 그와 충돌하는 작품의 신랄하면서도 우울한 무드는 많은 이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우바우>는 201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끝으로 종료되었고, 네이버에서 잇선의 차기작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이후 특별한 플랫폼을 두지 않고 블로그, SNS를 중심으로 연재하고 메일링 서비스나 출판을 위해 온라인 후원 서비스를 이용해 작품을 이어나갔다. 이 시기의 작품인 <뚜리빼>(총 2권), <모지리>(총 4권)는 천만원 단위의 후원금 모집에 성공하였으나 그 사이사이 진행한 굿즈들은 애석하게도 실패를 겪었고, <이상한 다이어리> 2권에 이르러서는 600만원 정도의 후원에 그치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신작 <이상징후>가 카카오 웹툰이라는 플랫폼에 연재된 것은 오히려 신선한 일이다. 당대의 가장 메이저한 플랫폼에서 자생 만화가 시기를 거쳐 다시금 플랫폼으로 귀환한 것이다. 이 변곡이 잇선이라는 작가의 작품과 그렇게 유리되지 않는 지점이 재미있다. 가장 밝은 혹은 두드러지는 지점과 눈에 띄지 않는 지점간의 널뛰기, 가장 자본주의적인 세계와 그로부터 탈피하려는 대안적 움직임 충돌할 때의 에너지가 바로 잇선 만화의 독특한 성질이며 이는 그의 히스토리와도 연결된다. 


잇선은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상징후> 1권의 부록에서 보이듯, 그가 그러한 작동을 회피하려 할 때 조차 지나치게 당연히 드러나버린다. 이 때 반영되는 것은 단순히 그가 겪어온 역사 자체가 아니라 생을 통해 감지한 어떤 분열성 쪽이다. 잇선 만화는 언제나 유사한 테마를 담지한다. 그의 만화는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적응능력이 부재한 존재들이 행복이라는 목표선을 갈망할 때 생기는 불협화음을 그린다. 이 존재들은 언제나 동일한 딜레마에 봉착한다. 그것은 바로 ‘돈이 없어 불행’하면서 동시에 ‘돈을 버는 행위 역시 불행’하다는 것이다. 불행하기 때문에 돈을 원하지만, 돈을 원하는 동안 또 다시 불행에 빠지는 그 하강곡선이 끝없이 반복된다.


여기서 언제나 거론되는 것은 관계의 문제, 그로부터 형성되는 소소한 행복이라는 또 다른 목표지점이다. 잇선 만화의 주체들은 언제나 이러한 도달에 이끌리고, 실제로 그로부터 대안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다시금 자본주의의 문제와 접촉할 때, 이 ‘소소한 행복’이라는 것의 성질, 즉 ‘소소함’을 지나치게 맛본다. 따라서 이들은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며 분열한다. 돈을 벌 능력이 없는 존재가 끝도없이 괴로워하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며 소소한 행복라는 대안과 접촉한다. 이때 잇선은 이 접촉에서 질문을 끝내지 않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게 진짜로 부재와 불안을 덮을 정도의 행복감인가? 돈의 부재가 그러한 행복감의 숨통을 끊어놓지 않을까? 잇선 주체들이 가지는 진짜 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소소한 행복이라는 전제를 믿기만 한다면 현실의 문제들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음에도 도저히 그것을 믿지 못한다. 이러한 불신은 자기자신을 향해 총구를 돌리고, 인물들은 무능과 부덕의 사이에서 자기혐오를 겪는다. 그가 항상 동화를 방불케하는 환상적인 톤을 사용하는 것 역시 이러한 분열과 연결된다. 토실토실하고 앙증맞고 귀여운 의성어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이 등장해 지나치게 신랄하고 염세적인 말을 욕설과 함께 내뱉을 때, 작품의 톤앤매너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겅충겅충 넘어다닌다.


하지만 그가 언제나 캐릭터를 귀여운 존재로 묘사한다는 사실을 지워서는 안된다. 잇선은 자주 다수의 주인공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작품을 전개시키는데, 결국 이들이 마주하는 문제지점은 언제나 동일한 형태로 수렴된다. 이 모든 주인공들은 마치 하나의 원점(작가 자신)을 중심으로 떨어져나온 파편들처럼 보인다. 그리고 원점에 의해 귀여운 외피를 입는다. 잇선은 이들, 자신의 삶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이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의 시련을 내리지만 동시에 이들이 귀여워 견딜 수 없는 것 같다. 몽상적 행복과 현실의 문제, 고통과 귀여움의 반복과 같은 갭이야말로 잇선 만화를 상징하는 지형도다.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만화규장각 홈페이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공지능은 정말 만화를 그리고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