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Gaming Monthly

1 - 한가함과 함께 하기

주변부의 한가함으로부터

by 이선인



2025년부터는 매 달 1~2편 비디오 게임에 관해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 2024년 11월이다. 한창 어떤 글을 쓸까 생각하던 와중에 예상외의 국가적 사태가 벌어지고, 안타까운 재난이 발생했다. 그리고 올해 초에는 개인적으로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경험까지 가져야 했다. 비디오 게임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는 이 때 잠깐 정지했다. 비디오 게임 평론가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간 내내 ‘이런 한가한 글을 써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것 같다. 물론 비디오 게임을 두고 문화 계급론 따위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시국’에 대해 과연 비디오 게임을 거쳐서 무엇인가를 쓰는 것이 어떤 뉘앙스로 다가올까에 대한 궁금증이다. 요컨데 지도자의 정치성에 대해 말하기 위해 ‘「트로피코」라는 시리즈가 있는데…’라는 말을 하는 것이, 과연 시국이라는 것과 올바르게 조응하는 텍스트가 될 것인가? (「트로피코」 시리즈에 대한 가치 폄훼는 아니고) 시국의 주변부를 서성이는 듯한 느낌을 줄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물론 「트로피코」의 흥미로움을 텍스트로 설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트로피코」는 (해당 장르가 다 그렇듯) 선택의 연속이고, 사실상 ‘독재 행위’라는 것에 들어가는 복잡한 코스트의 부담을 체감시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아마도 글을 쓴다면 이러한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과 ‘플레이하는 사람’이 상호 매개하는 방식, 아니 정확히는 시간에 대한, 조금은 불손한 생각이 끼어든다. 그래, 「트로피코」로부터 그런 것들을 배울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그리고 ‘많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까.


사실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비디오 게임에는 결국 일정량의 ‘한가함’이 포함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건설 시뮬레이션이라면 자원이 모이기까지의 한가한 시간, RPG라면 이동 또는 레벨링이라는 한가한 시간. 대전 액션 게임이라면 단기간에 꽤나 치열한 공방을 주겠으나 이 장르는 본질적으로 개별적 게임의 ‘사이사이’에 한가함을 줄 수 밖에 없는 구성이다. (뭐 매칭이 빠르게 잘 되면 다르겠으나.) 단순히 쉬는 시간의 문제라기 보다는 각 게임이 담지하는 어떤 심급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의 와중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한가함들’을 계속 감내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게인스트 더 스톰」의 경우 게임이 가진 복잡한 메터들(지도자의 강력한 압력, 자연으로부터 오는 반동적 분노, 노동자들로부터 오는 불만들)을 이해하는 것이 게임이 담지한 궁극적 가치와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메터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모일 때까지나, 다음 빈터가 열릴 때 까지의 한가한 시간이 잔뜩 발생한다.


어게인스트 더 스톰


그런데 플레이어는 사실, 이러한 한가로움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사실상 ‘게임 경험’이라는 것을 복기해보면 대부분의 부피를, 이 한가함이 공기처럼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지나치게 내러티브 중심의 게임, 쉽게 말해 ‘문예적 방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게임에서는 더 도드라진다. 예를 들면 「파이널 판타지 7」에서, 이 게임을 통해 무엇인가 ‘체득’한다면, 그 방법론은 오직 수많은 텍스트와 컷 씬, 미술 등의 시각적 매개가 이루는 묶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풀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황폐한 월드맵, 행성의 힘을 뽑아 쓴다는 마황로의 설정, 클라이맥스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흐르는 라이프 스트림의 비주얼 등등… (사실 이런 묶음이 생성하는 ‘주제’가 과연 이 게임의 심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는 다른 주제가 되겠지만, 일단은 밀어붙이는 것으로 하자.) 하지만 게임의 플레이가 지속적으로 내뱉는 것은 (자연과 문명의 충돌따위가 아니라) 적을 쓰러뜨리고-AP를 모아-마테리아를 강화하고… 의 연속에 가깝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행위성의 대부분은 사실상 ‘한가로운 시간’으로 구성되지 않는가. 정작 플레이어들은 대공동에서 수많은 톤베리의 생명을 AP로 바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관점이 있다. 브라이언 업튼은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 행동을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게임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바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플레이의 미학》, 브라이언 업튼) 업튼에 의하면 이 시간에는 전략적 오류의 수정, 상황의 인지, 목표와 현황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판단의 시간이 비디오 게임의 일정한 정수를 이룬다는 것이다. 업튼의 논리에 동의하는 바이긴 하나, 때로는 이러한 전략적 사고의 시간에서마저도 탈각되어버리는 정말 ‘아무 생각 없는 시간’이 존재한다. 레벨링을 위해 (특정한 전략적 고려 없이) 적들을 무수히 살육하는 시간에 어찌 업튼적 개념에서의 ‘기다림’이 있을 수 있을까. 사실상 이런 것들을 고려하자면 한가로움은 단순히 ‘가만히 있음’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정말 그 자체로 한가로운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결국 비디오 게임이란 한가로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숙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그런 따분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GG 21호의 강지웅의 글은 흥미롭지 않은가. ‘쿨타임을 두고 치킨을 먹는 것은 치킨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인 것처럼 게임에서의 쿨타임도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일 필요가 있다.’ 한가로움은 어떤 면에서 비디오 게임이라는 행위의 내측에 위치하는 상수와도 같다. 비디오 게임의 ‘지위’를 격상시키기 위해 구태여 이것을 ‘없는 척’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오히려 이 한가로움을 어떻게 흥미롭게 바라볼 것인가, 한가로움을 담지한 채로도 동시대의 주변부에만 머무르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따위를 생각해보는 게 더 즐거운 일인듯 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 - 게이밍 먼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