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Gaming Monthly

2 - 리스트를 만든다는 것

by 이선인



매년 연말이 되면 연례 행사처럼 KMDB의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를 찾아본다. 물론 리스트를 하나의 강고한 지표로 여기기 위함은 아니다. 그냥 그 해에 관심을 집중시킨 주요 작품들과 얼마나 접촉했는지를 체크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사실 그냥 리스트를 보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느슨한' 정전을 앞에 두고, 내가 얼마나 클리어했는지 체크하는 경험에 특별함이 없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매년 이러한 게임의 리스트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빈번히 실패한다. 나의 관심은 항상 ‘당면의’ 게임을 향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무엇을 보든) 시간의 랜드마크들, 정전의 역사를 구성하는 개별적 구성물들에 관심을 두는 편이다. 근 10년 출시를 앞둔 게임의 정보를 두고 출시일만을 기다리며 발을 구른 기억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도 그 해 발매된 게임을 5개도 클리어 하지 못했다.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은 건 30년 전 게임들인 「파이널 판타지 VIII」과 「파이널 판타지 IX」였으니.


이런 개인적인 소명의 문제는 넘겨보자. 사실 비디오 게임의 정전이 될 리스트를 세우겠다는 계획은 지나치게 장대해 보인다. 물론 많은 이들의 경험을 모아 하나의 집대성을 이룬 군집 정도야 만들 수 있겠지만, 그 뒤에 타인의 ‘제안’을 검토할 만큼의 '물리적 여유'상상할 수 있을까? 이제와서 블랙 아일의 「아이스 윈드 데일」 1, 2를 판단할 수 있을 만큼 플레이 해야 한다고?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항복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비디오 게임과 리스트라는 조합에서 언제나 걸리는 것은 이러한 물리적 시간이라는 한계지점이다. 물론 리스트라는 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지나치게 공고한 신격화 및 유사한 부정적 기능에 대한 반감을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오히려 나는 어느 정도 이러한 의견을 옹호하는 편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선주가 《시네필의 시대》에서 ‘1990년대 키노에서의 리스트는 어떠한 교육적 효과’를 위해서라고 적고 있듯, '비디오 게임에서의 일반 교양'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가능성을 만드는 것은 또 나름의 멋진 일 아니겠는가?


문제는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선 그것이 꼭 필요한지의 논의보다, 그것이 가능하겠느냐의 논의가 더 우선시 되겠다. 그러니까 그것의 필요 여부보다는 가능 여부가 더 실존적으로 중요한 상황인 셈이다. 지나친 신격화라는 부정적 평가를 듣더라도 하나쯤 만들어보고 싶은 것, 면밀한 검증을 거친 또는 거칠 수 있는 리스트를 손에 넣어보고 싶은 것이다.


「천지를 먹다 II : 제갈공명전」

물론 세상에는 《죽기전에 꼭 해봐야 할 비디오 게임 1001》도 있고, 얼마전에는 EDGE의 30주년 기념으로 나온 EDGE 생애 주기의 최고의 게임 리스트 100도 있다. 이러한 리스트의 신뢰성을 받아들이기 앞서, 과연 이 모든 리스트에서도 꼽히는 작품들을 할 시간적 여유가 얼마나 나겠는가. 이것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좁힌다고 하더라도 영 미래를 가늠할 수 없긴 매한가지다. 요컨데 ‘역대 최고의 JRPG 30’ 따위를 만들고 싶어도, 과연 과거에 플레이했던 「천지를 먹다 II : 제갈공명전」이 지금도 좋은 작품인지 언제 검토하고 있을지… 리스트에 올라갈 30개의 작품을 다시 플레이하는 것도 힘든 일일진데, 그 리스트에 포함될 가능성을 가진 다른 게임들도 해야 한다면… 리스트가 완성되기도 전에 리스트에 포함될 다른 게임이 나와버리는 무한한 연쇄가 만들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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